'그것'의 처소
<온다>
정지혜 / Choice / 2020-04-07

예언은 이미 도래했다. 어린 시절, 히데키(쓰마부키 사토시)는 “언젠가 너도 ‘그것’에 불리게 될 것”이라는 찜찜하고 뜻 모를 말을 들은 적 있다. 시간이 흘러 제과회사의 우수사원이 된 히데키. 그는 카나(구로키 하루)와 결혼해 딸 치사까지 얻은, 누구나 부러워 할 인생의 주인공이다. 기쁨과 충만의 시간은 그러나 오래지 않는다. 이름 모르는 여자의 방문 뒤에 갑자기 히데키의 동료가 사망하고, 히데키 또한 “(어딘가로) 가자”는 의문의 전화에 시달린다. 불안에 시달리던 히데키는 수소문 끝에 오컬트 작가 노자키(오카다 준이치)를 찾아 도움을 청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노자키의 옛 애인이자 영매인 마코토(고마쓰 나나)와 그녀의 친언니이자 일본에서 가장 이름 높은 영매인 코토코(마쓰 다카코)까지 문제 해결에 나선다.

<온다>는 불길하고 끔찍한 예언의 발동 앞에서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의 버둥거림을 근접 묘사한다. 극 중에서 저주의 말에 직면한 이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보호하지 못했거나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 어른들처럼 보인다. ‘그것’이 히데키에게 점점 다가갈 때, 히데키는 남들 눈을 의식하며 좋은 아빠이자 남편인 양 행동한다. 반면, 현실의 카나는 부정한 남편 히데키를 향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혼자서 딸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아이를 잃은 적이 있는 마코토는 빈껍데기와 같은 부모로부터 어떻게든 어린 치사를 구해야 한다며 일종의 윤리적 책임감을 발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점점 존재를 드러내며 위력을 과시할수록 이들의 관계는 산산이 조각나고 모조리 파괴될 것이다.

<온다>
<온다>

세상은 비참하고 끔찍한 지옥이다.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라면 이 말에 흔쾌히 동의하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아비규환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명백한 증거라고. 그가 이제껏 만들어 온 인물들은 상식과 관례로 점철된 일상이 뒤집어지고, 도덕과 윤리라는 암묵의 합의가 붕괴할 때에야 세상에 눈을 뜬다. 참혹하고 치명적인 고통 속에서만 존재의 속살을 어렴풋이 실감하고, 존재의 심연을 어렴풋이 조감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데쓰야의 ‘문제적’ 인간들이 단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휘말렸는지, 아니면 본디 구제 불가능한 기질을 지녔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비애로 가득한, 파탄으로 종결될 수난의 굴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에서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최후를 떠올려보자. <고백>(2010)에서 유코(마쓰 다카코>의 복수를 곱씹어보자. 사라진 딸을 찾는 <갈증>(2014)의 아버지는 무엇을 발견하는가. <온다> 역시 ‘그것’의 실체를 추궁하기보다 ‘그것’으로 드러난 양상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다만, 감독이 즐겨 써 온 형식 즉 복수의 시점 화자가 비선형적으로 동시에 등장하는 방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황한 대사, 강렬한 비주얼, 충격적 사운드로 본능에 이끌리는 인물들의 격한 감정에 접근하지만, 원작소설인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의 구성을 채택하고 오컬트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결합하는 식으로 절충한다. 극단적 쾌락주의자의 배설물이라는 비난이 없지 않았으나, 그 과잉의 에너지야말로 나카시마 데쓰야의 영화가 지닌 아찔한 표식이었는데, <온다>는 어정쩡한 타협에 그친 느낌이다.

<온다>
<온다>

온다 来る(It Comes)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 출연 쓰마부키 사토시, 구로키 하루, 고마쓰 나나, 마쓰 다카코, 오카다 준이치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트리플픽쳐스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3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0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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