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소성리.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작은 사운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일까. 알 수 없는 음을 이어받듯 다음 음들이 하나씩 덧붙여지는데, 그 소리가 수상쩍다.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전조인가. 밤하늘을 공명하는 여러가지 소리. 그 밤을 가르며 <소성리>의 오프닝 타이틀이 뜨고, 훤한 대낮의 마을을 멀찍이 조망하며 영화가 시작한다. 오프닝에서 들었던 소리들은 이후 영화의 중요한 장면마다 들려올 것이다. 하나의 음에서 다음 음으로 진전하듯, <소성리>는 개별 인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엮어가며 전개된다. 그것은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소성리>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농민, 그 가운데서도 여성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과 함께 카메라는 여성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마을회관에 모여 소일거리 하는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한동안 충실하다. 이 예열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영화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리는 한 여성 농민의 목소리.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중 6.25 전쟁이 터졌고, 살던 마을로 피난민과 미군이 들어왔다는 기억이다. 그녀의 전언은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소성리의 풀숲과 계곡, 버려진 의자만이 덩그러니 있는 냇가를 비추는 화면과 더불어 앞서 들었던 기이한 음들 위를 가른다.
다시 농민들의 일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던 영화는 이번엔 ‘빨갱이’에 대한 여성 농민의 말을 옮기기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 말로만 들었던 ‘빨갱이’를 실제로 봤는데 얼굴이 빨게 ‘빨갱이’인가 했으나 그렇지 않았으며, 그 ‘빨갱이’들이 도망치다 붙잡혀 잔혹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 전언은 소성리 마을에 걸린 ‘사드 배치 반대’ 플래카드와 그 염원을 담은 돌탑을 비추는 화면 위로 흐른다. 비로소 우리는 이곳 소성리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구호를 외치는, 그 소성리라는 걸 눈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된 지 29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다.

한편, 농민 운동을 하며 얼마 전 남편을 잃은 또 다른 여성 농민은 귀신과 환영을 본 이야기를 전한다. 그때, 그녀 뒤를 줄기차게 쫓는 카메라는 마치 그녀가 말한 귀신이거나 환영처럼 느껴진다. 저 혼자 인적 없는 소성리의 산자락을 휘적휘적 오르고, 산 정상에 이르러서는 현기증을 일으키듯 휘청거리다가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훑는 카메라. 그 정체불명의 움직임 위로 또 다른 여성 농민이 들려주는 이상한 꿈 이야기가 더해진다. 평온해 보이던 농촌 마을 소성리는 그렇게 서서히 귀기 어린 말들과 알 수 없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포위된다.
<소성리>는 개별 여성 농민들의 기억과 경험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려 애쓴다.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녀들의 말을 더듬어 보자. 전쟁, 빨갱이, 죽음, 망자, 망령. 숨 쉬고, 농사짓고, 노래하고, 밥 먹는 소성리의 평범한 일상에 아주 오래전부터 틈입해 들어온 말들이다. 으스스하고 불길하며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다. <소성리>는 이러한 개별 인물의 기억과 경험에서 출발해 점차 현재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 현장에 대한 감각으로 뻗어 나간다. 영화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날 선 투쟁의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데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과거의 전쟁에서부터 현재의 사드 배치까지 계속되는 전쟁과 죽음의 두려움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이것이야말로 <소성리>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소성리를 둘러싼 공동의 기억과 경험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개인의 기억을 ‘과거사’라는 말로 한정짓지 않고 지금, 여기의 소성리를 재감각하게 만들려는 방편이기도 하다.
<소성리>가 기술적으로 혹은 영화적으로 선택한 것들, 예컨대 앞서 말한 몇몇 장면에서의 카메라의 의식적인 움직임이나 항공 촬영과 화면 색의 변환, 귀기어린 음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음악 사용 등은 두려움의 감정을 감각화하려는 연출자의 고심의 흔적이다. 박배일 감독은 부산 지역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잔인한 계절>(2010), 밀양 송전탑 투쟁사인 <밀양전>(2013), <밀양 아리랑>(2014), 부산의 생탁 노조 운동에 관한 영화 <깨어난 침묵>(2016) 등을 거치며 현장에 기반한 작업을 줄기차게 이어 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투쟁 현장을 체감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것 같다. <소성리>는 그의 잠정적인 답변인 셈이다.

소성리 Soseongri 제작 오지필름 감독 박배일 출연 도금연, 임순분, 김의선 배급 시네마달 상영시간 87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8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