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독립영화 비평상’ 수상자로 강소정 씨가 선정됐다. ‘독립영화 비평상’은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발간하는 비평 전문지 『독립영화』가 2018년부터 주관하는 행사로, 문서 비평과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두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번 공모에서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부문에 <홍상수의 카메라>를 응모해 당선된 강 씨는 “사진 이미지 또는 카메라가 등장하는 순간들을 중심으로 홍상수 감독의 14편의 작품들을 관통하면서, 그 장면들 사이의 의미론적 유사성과 일관성에 대한 비평적 해석을 보다 안정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홍상수 영화세계에 들어가는 새로운 입구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상을 활용해 영화를 비평하는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은 아직 대중에겐 생소하지만, 2015년부터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열리는 이론-제작 수업에는 많은 수강생이 몰릴 정도로 점차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강 씨의 <홍상수의 카메라>를 두고 “비평적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이라는 형식이 얼마나 더 효율적일 뿐 아니라 생산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말과 글,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와 만나고 영화에 대해 발언하길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강소정 씨를 만났다.
축하한다. 독립영화 비평상은 올해로 2회째인데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부문에선 첫 당선이다.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랐고 기뻤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고 일단 완성해서 제출하자는 작은 목표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이렇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이론을 전공했다고.
학부 전공은 의류학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영화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서 시네마테크 부산에 영화를 보러 다니다가 영화에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술문화영상학과로 전과를 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미학, 공연예술 등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재밌게 지냈다.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작품도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 큰 작업을 하는 게 나와는 잘 맞지 않더라. 이후에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진학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셈인데, 내 곁에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주로 어떤 영화에 관심이 있었나.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다. 꾸준히 좋아했던 감독은 딱 두 명, 차이밍량과 홍상수다. 20살에 처음 가봤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별다른 정보도 없이 차이밍량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2006)를 보게 됐는데, ‘아, 이런 영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좋더라. 졸업논문도 차이밍량 영화의 인물-배우 복합체에 관해 썼다.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나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써서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그 이후 10년간 다시 다뤄보질 않아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더라. 그걸 다시 배우고 만져보고 싶기도 했고,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에 대한 관심도 있었는데, 마침 여유가 생겨서 미디액트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수강했다. 제시된 10편의 영화 중 한 편을 골라 최종과제를 하게 됐는데 그중에 <클레어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난 이걸로 만들겠구나 했지. (웃음)
글을 쓰는 작업과는 어떻게 다르던가.
내 눈에 띄는 자료들, 궁금하고 흥미가 생기는 재료들을 뽑아 배치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쓴 글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웃음)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가져와서 계속 돌려보는 데에 이상한 즐거움이 있더라.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고. 기본적으로는 영화의 언어로 영화를 비평하는 작업이라 이해하고 있다.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작업을 하는 해외 비평가들이 꽤 있고, 비평적인 비디오에세이를 만드는 영화감독들도 있다. 그중 특히 좋아하는 작업이 있다면.
마크 라파포트의 작업을 좋아한다. <진 세버그의 일기>(1995) 같은 것을 보면 배우의 가시적 존재를 중심으로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 속 오디오비주얼이 또 하나의 픽션-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코고나다의 <Ozu//Passageways>(https://vimeo.com/55956937) 같은 작품이 시각적으로 유사한 장면들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걸 보며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리듬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느꼈다.
<클레어의 카메라>를 중심으로 사진과 카메라를 통해 홍상수의 영화 세계를 비평하는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을 만들었다.
일단은 수업의 마지막 과제 대상이었던 <클레어의 카메라>에 사진 찍는 행위나 사진에 관한 대사가 많았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최근에 보았던 홍상수의 다른 영화에서도 사진 찍는 장면들이 다 굉장히 이상하더라. 예를 들면, <풀잎들>(2017)에 한복 입은 커플이 골목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에 아름(김민희)이 뒤를 돌아보고서 옆에 있던 동생과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있지 않나. 하나의 행위로 영화의 시간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면서 그 장면이 주는 독특하고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장면들이 많다는 호기심에 장면들을 모으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 작업에 <풀잎들>을 넣지는 못했지만. (웃음) 과제로 만든 영상은 훨씬 짧았고, 그 이후에 배치도 바꾸고 수정해서 공모에 제출했다.
챕터를 나누어 홍상수의 영화 속 사진, 카메라, 카메라를 든 사람을 차례로 보여주고, 감독 인터뷰도 활용했다.
장면을 모으다 보니 그럼 차근차근 들어가 보자 싶어서 그런 순서로 진행하게 됐다. 사실 카메라와 카메라를 든 사람이 명확하게 나뉘는 건 아니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이 특이하게 프레임 바깥에서 침입하거나 사진 찍는 행위로 프레임 바깥을 열어버린다는 게 눈에 띄어 장을 나눴다. 그렇게 분류하고 편집을 하면서 감독 인터뷰를 찾아봤다. 압축적이고 짧고 쉬운데도 눈을 확 트이게 하는 주옥같은 말들이 많았는데, 그 자체로는 너무 좋은 말들이었지만 그걸 인용하면 빤하지 않을까 싶더라. 사진이 영화 안에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경우를 떠올린 것도 그래서다. <옥희의 영화>(2010) 포스터에 관한 일화나 <하하하>(2009)의 이순신 장면 같은. 균형이 안 맞겠다 싶기도 했지만 붙여놓고 나니 재밌었다. 마무리도 고민이었는데. (웃음) 중심이 되는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클레어가 사진을 찍는 순간을 나눠보니 튀는 장면이 있었다. 마지막에 카페에 가서 개를 찍을 때만 클레어가 정면을 향해 있는데 그 장면이 정말 이상했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는 한쪽 눈을 감는데 두 눈을 다 뜨고 있으니까. 처음에 극장에서 봤을 땐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가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가, 했다. (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분명히 그건 디렉팅이겠더라. 거기다 <하하하>에서 너무 좋아했던 이순신 장면도 가져오면서 맨눈으로 본다는 마지막 장을 구성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짜임새이고, 꼼꼼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감에 의지하기보다는 구조를 만들고 재료도 성실하게 모으는 타입인데.
그렇게 하는 게 맞았던 것 같다. 내게 예술적인 감각이 있고 그런 건 아니라서. (웃음) 다른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 작품을 보면 비슷한 행위나 시각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리듬감 있게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따로 설명이 들어가지 않도록 만들기도 하고. 그런데 홍상수 영화의 사진과 카메라를 가지고 그렇게 하기는 좀 어려웠다. 상황이나 설정의 유사성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그냥 보여주기보다는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작업의 묘미는 아무래도 맥락에서 요소들을 떼어 다르게 배열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효과를 그대로 설명하는 데 그친 것 같아 아쉽다. 다만 너무 어렵지 않은 친숙한 언어로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사진 이미지에 관한 이론이나 홍상수 영화에 대한 기존의 비평들에 기대지 않고, 영화의 맥락 속에서 비평작업을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지막 챕터 제목처럼 자신의 눈으로 보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웃음)
감사하다. 만들면서 느끼기도 했지만, 특히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에는 이론이 들어가면 좀 걸리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더라. 수업용으로는 좋을지 모르겠는데 재미는 없지 않을까. (웃음) ‘어 이거 되게 이상하네, 이상한 걸 붙여놓으니까 이런 걸 발견하네.’ 그런 데서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다음엔 닮음이라는 주제로 홍상수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을 만들고 싶다. 보통 닮음이라고 하면 차이와 반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결국엔 들뢰즈의 이론으로 들어가는데, 인물과 배우에 집중해서 조금 더 쉽게 접근하고 싶다.
등단제도가 이미 자리 잡은 문서비평과 달리,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미디액트에서 수업을 들으신 분들이 이후에도 꾸준히 작업하셔서 영화제에 출품하시는 경우가 있더라. 그래서 나도 일단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특하지 않나. 비평인데 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것이. 요새는 책이나 잡지보다 웹으로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으니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은 확실히 사람들이 비평에 접근하기 좋은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학교를 졸업하고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영상비평 전문지 『오큘로』의 온라인 콘텐츠 편집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엔 홈페이지에 마리아노 이나스의 <라 플로르>(2018) 비평을 올렸다. 큐레이터로 영화를 해설하면서, 영화에 대해 너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이론과에서 공부했으니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해서 글을 쓰게 되기도 하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관객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홍상수의 영화로 두 번째 오디오비주얼필름 크리틱을 만드는 것? 어렵지 않고 재밌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