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를 해야겠어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강말금
글 손시내 사진 소동성 / Interview / 2020-03-07

일자리를 잃었다. 사랑도 멀었다. 슬픔에 잠겨있어야 맞는데, 그녀는 그렇지가 않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찬실은 진지하면 진지한 대로 웃기면 웃긴 대로, 귀 기울여 찬찬히 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오래도록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으나 함께 작업하던 감독이 죽자 졸지에 백수가 된 찬실. 그녀는 “망했다”, “미쳤다”고 자꾸 중얼거리면서도 힘을 내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귀엽고도 강인한 사람이다. 괴로움과 외로움에 자꾸만 서글퍼지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헤매지만, 얼굴엔 언제나 맑고 굳센 기운이 서려 있다. 착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의 존재를 잊지 않으면서도, 결국 스스로 용기내야 함을 잊지 않는 찬실을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개봉을 계기로 배우 강말금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단편 <자유연기>에서 그가 보여준 표정과 감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얼굴과는 또 다른 모습의 찬실을 만나고 나면,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강말금의 고향은 부산,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을 것 같은 ‘말금’이란 이름은 시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의 예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늦게 시작한 연기는 이제 평생을 품고 갈 동아줄이 되었다. 찬실과 말금. 왠지 동네에서 유명한 절친 사이일 것 같지 않은가.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를 떠올리듯이 ‘말금이’는 ‘찬실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놨다.

 

 

개봉에 맞춰 여러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영화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느껴지는 익숙함 혹은 새로움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감독님과 처음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날은 감독님께 받았던 첫 메일을 다시 열어봤다. 처음 그 메일을 읽었을 때 간곡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간곡한 편지가 왔다는 느낌. 그게 정말 좋았다. 그걸 간곡하다고만 표현하다가 도대체 그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메일을 다시 열어보니, 아 이런 느낌이었지 싶더라. 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 촬영 기간, 지원금, 현재까지 캐스팅된 배우 그리고 어떤 계기로 나를 알게 되었는지까지가 그 메일에 전부 다 적혀있다. 그렇게 모든 정보가 나한테 전해진다는 사실이 감동을 주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줬고, 그 안에 간곡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김초희 감독이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자유연기>를 보고 그 메일을 보냈다고 알고 있다. 다시 물어보니, <자유연기>를 봤을 때 이미 강말금 배우가 찬실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하더라.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구력, 얼굴에 남은 흔적이 느껴졌다고. 당시는 어떤 상황이었나.

그렇게 말하니 잘못 살았던 세월이 떠오른다. (웃음) 그동안 연극을 열심히 주업으로 해오다가 영화 쪽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생각했던 게 2017년이었다. 그래서 2월부터 매달 한편씩 단편 작업을 했고 7월에 <자유연기>를 찍었다. 그다음엔 다시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자유연기>가 관객들을 만난 거다. 그리고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문)도 받아봤다. 그게 2018년 7월이다. 나로서는 그런 좋은 시기에 김초희 감독님의 메일까지 받게 된 거지. 누군가가 나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전화를 달라고 할 때나 통화를 할 때, 메일을 받을 때가 배우로서 제일 기쁘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너무 재밌더라. 또 내가 모르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 주변의 대학 선후배 중엔 찬실이처럼, 나처럼, 감독님처럼 그렇게 결혼하지 않고 사는 여성들이 많은데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도 했고.

<자유연기>(연출 김도영, 2018)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느꼈던 찬실이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엉뚱하다, 생명력이 넘친다. 그 두 가지를 느꼈다. 그다음엔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고. 하지만 꼭 해야겠다 싶은 큰 역할인 데다, 내가 자신이 없더라도 저분이 나한테서 본 게 있다면 그게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막상 하겠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 사람이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 있더라. 처음에는 표면만 보았지만, 점차 찬실이가 힘든 상황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작업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거치는 과정이 있나.

예전부터 연극 대본을 받으면 필사를 했다. 손으로는 아니고 컴퓨터로 대본 전체를 베끼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내 부분만 보게 되거나 선택적으로 보게 되어서, 여러 차례 봤는데도 못 본 단어가 있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더라. 그리고 자꾸 나만의 생각을 하게 되고. 사실 제일 첫 독서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어야 하지 않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장면이 어느 위치에 있고, 그때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알려면 필사밖에 길이 없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필사를 계속했는데, 너무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싶으면 공책에 신 넘버를 순서대로 적어서 좀 멀리서 위치를 가늠하고, 그러다가 ‘대사는 언제 외우지?’ 싶으면 대사 암기도 하고 그랬다. (웃음)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찬실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김초희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감독님 메일을 받고 처음 만났던 게 8월 30일 즈음이었고, 실제론 11월에 찍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크랭크인은 10월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던 거지. 그러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 급하게 알아야 했다. 우리가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었고, 그러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이 감정이 찬실이의 무엇과 닮아있을까, 저런 감정은 어느 장면에 넣을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실은 되게 급했던 거다. (웃음) 또 찬실이는 영화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몸에 밴 사람이다 보니, 프로듀서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그걸 감독님께 여러 차례 물어봤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촬영 현장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꽤 다양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과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 있으면서도 서러움, 슬픔, 고독함 등의 감정을 폭넓게 보여준다. 김초희 감독은 ‘강인하고 맑고 굳센 기운을 주는 독특한 캐릭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찬실이를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쓰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반으로 나눴다. 그걸 기점으로 감정의 성질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찬실이가 장국영(김영민)에게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깊이깊이 생각해보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이 사람이 이성적으로 된다. 그전까지는 좀 더 감정적이고 좌절에 빠져있는 상태인 거고. 그렇게 크게 나누고 보니까 그 좌절에 빠진 감정을 어떻게 쪼개느냐가 어려웠다. 지금은 좌절하고 있지만 본래는 굉장히 씩씩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찾아지진 않았다. 물론 조금씩 미리 알 것 같은 부분들은 있었다. 성곽길에서 영(배유람)에게 안아달라고 할 때나 영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좋아한다고 하자 화를 낼 때, 영을 대하는 솔직한 마음 같은 것들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알 수 있겠더라. 그러다가 촬영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굉장히 긴장했다. 소피(윤승아) 집에서 둘이 이야기하다가 “돈이 너무 없다!” 하는 게 첫 촬영이었거든. 그때 소피 식탁 위에 놓여있는 ‘일곱 색깔 공작새’라는 대본을 가지고 영화엔 쓰이지 않은 어떤 테이크에서 장난을 한 번 쳐봤다. ‘일~곱 색~깔 공작새!’(독특한 억양을 넣어 읽는다) 하고. 그때 ‘아, 찬실이가 이런 사람인가?’ 하는 느낌이 왔다. 가만히 있어도 딴 짓을 하는 사람. 그렇게 시작됐던 게 기억난다.

 

찬실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본질적인 모습을 찾는 게 중요했던 셈이다.

맞다. 그 본질적인 성격이 좀 죽어있는 시기이다 보니 나는 좌절이 제대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두운 면을 많이 갖고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조절을 잘 해주셨다. 귀여워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웃음)

 

그러고 보면 활짝 웃을 때와 무표정할 때 인상이 정말 다르다. 스스로 느끼는 인상의 변화는 어떤가.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텐데.

사실 연극을 할 때는 몰랐다. 내가 나를 모니터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단편도 찍고 하면서 나한테 그런, 배우로서 좋은 점이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키도 작고 부산 출신이고 또 순발력도 없어서 배우가 되겠나 싶어 자조를 많이 했거든. 이번에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내 장점으로 피부 톤 애기나 웃는 얼굴이 너무 좋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활짝 웃으면 주변도 환해진다고, 무기를 알려주셨지. 나에게도 영화배우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었구나 싶어서 행복하다. 말하고 보니 부끄럽네. (웃음)

ⓒ소동성

또 다른 특징을 생각해보자면 차분한 어조가 아닐까 싶다. 어딘가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느낌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와 연락이 되어서 통화한 적이 있다. 신나서 떠들다가 그 친구가 “너 왜 이렇게 변했니, 왜 이렇게 얌전해졌어?” 하더라. 고등학교 때는 엄청 별났던 것 같다. 모범생이라고 불리는 쪽이긴 했는데, 약간 낭만과 흥이 있었달까. 막 설치고 다니면서 춤도 추고. (웃음) 그러다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하고 싶은 연극을 못 하고 직장생활을 꾸역꾸역하던 20대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에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순탄치는 않았다. 언어학자 친구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서울말은 낮은음과 높은음의 폭이 크다. 부산말은 오히려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한다고. 내가 서울말을 배울 때 쑥스러워서 큰 진폭을 제대로 못 따라 했나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 성격적인 측면도 있겠지. 그런데 사실 차분한 톤으로는 많은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요즘은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큰 감정의 폭을 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차분함이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지 않나.

한때는 말의 표현보다 내용을 더 크게 할 수 없을까를 궁리했던 적이 있다. <자유연기>의 후반부 독백은 한참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의 좋은 결과물이다. 예를 들면 캐릭터가 쓰는 말속에 있는 고유 명사들을 찾고 그 단어에 대한 인물의 심상이나 개인적인 추억 같은 것들을 찾는 작업인 거다. 연극에는 연습이라는 과정이 있어서, 그것을 오늘 생각하면 내일 표현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게 관념으로만 끝나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

 

연기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말 자체의 길이나 높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배우의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찍을 때도 감독님께서 말의 리듬을 굉장히 신경 쓰셨다. “지금은 세 마디의 어미 처리가 똑같은데, 그렇게 되면 듣기에 좋지 않다”고 하신 적도 있고. 그것은 리얼함과는 또 다른 오디오적인 작업이지 않나. 그래서 유튜브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찾아 들으며 따라 해보기도 한다. 사실 배우들이 평소에 뭘 하면서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조곤조곤한 나의 기본에서 조금 더 확장할 수 있는 기술적인 연습을 하려고 한다.

ⓒ소동성

찬실이는 부산 사투리를 쓴다. 고향 말이다 보니 확실히 더 편했을 텐데.

복합적인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편했다. 깍쟁이 같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찬실이의 성격이 부산 사투리와 어울리기도 했고. 처음에 받았던 시나리오는 부산말이 아니었고, 우리가 만난 다음에 감독님이 고치면서 사투리로 옮기셨다.

 

찬실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외롭지만 각자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그들이 찬실과 빚어내는 합이 좋고, 거기서 온기도 느껴진다.

아마 그중에 제일 선명한 사람은 영인 것 같다. 영은 찬실이에게 설렘을 주는 존재니까. 소피는 형제처럼 무던하면서도 제일 친한 사이다. 또 다른 배역들과는 극 속에서 우정이 시작되는데 소피와는 이미 친한 사이에서 우정이 진행되지 않나. 그런 면을 표현하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집 할머니는 윤여정 선생님께서 맡는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걱정했다. 자꾸 할머니로 안 보이고 선생님으로 보이고. (웃음) 그러다 어느 날은 친구와 버스를 탔는데, 어떤 할머니가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돈을 안 내고 버스에 오르셔서 기사님과 싸우다가 결국엔 지고 내리시는 걸 보게 됐다. 그때 저분이 우리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의 오리지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많은 것을 잃은 찬실이가 여전히 나눌 것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면서, 점차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찬실이와 장국영이 만나는 장면들은 현장에서도 굉장히 자유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장국영은 찬실이에게 제일 편한 존재다. 찬실이가 솔직하고 스스럼없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조심하기도 하고 말 못 할 일도 있는데, 그 둘은 말 못 할 게 없는 사이인 거지. (웃음) (김)영민 선배님이 연극을 하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더 편하게 느꼈던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선배님이 장국영 연기하시는 걸 너무 좋아하고 신나하셨다. 사실 어떻게 해도 되는 케미였다. 모방할 대상도 없고 정답도 없는 장면들이었으니까. 나 역시 시나리오에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가 장국영이어서 재밌게 찍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곳곳에 유머가 있다. 사소한 장면들에서도 웃음이 터지는데, 영과 악수하며 정전기가 오를 때나 “모기가 있네요” 하는 장면, 성곽길에서 안아달라고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찍을 때는 어땠나. 원래 유머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유머는 초희 감독님이지. (웃음) 그게 다 시나리오에 있었다. 또 말해준 장면들이 다 내가 재밌게 찍은 것들이다. 아, “모기가 있네요”는 애드립이었던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유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웃을 때가 있는데, 찬실이도 뭐 웃기려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웃음) 그런 부분은 닮은 것 같다. 

 

캐릭터가 배우와 만나면서 생겨나는 설정과 장면이 있다. 부산 사투리도 그렇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코디언도 그렇다. (아코디언 연주는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지만, 김초희 감독이 강말금 배우의 아코디언 연주를 보고 넣은 것이다) <자유연기>에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는 연극무대에서 연주하기 위해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고.

배우로 공연하며 살고 싶은데, 1인 1악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친구한테 돈을 빌려 아코디언을 샀다. 그걸 딱 놔두고 소주를 마시면서, “나는 너를 가구로 만들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고. (웃음) 그걸 메고 안양까지 배우러 다니다가, 그다음부터는 혼자 연습했다. 어떤 기타리스트가 악기를 케이스에 넣어두지 말고, 일주일에 세 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30분씩 연습하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렇게 매일, 내가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피아노 잘 치는 친구한테 악보 써달라고 해서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도 아코디언을 쓸 수 있는 자리가 계속 생기더라. ‘사랑의 슬픔’이라는 바이올린곡을 좋아해서 유튜브로 틀어두고 연주해보곤 했는데, 어느 날은 연극 연습을 하다가 정말 그 곡을 바이올리니스트랑 협연하기도 했다. 아코디언을 몸에 붙이고 사는 여성 국극단 출신의 남장 여배우 역할을 맡기도 했고. 사실 내가 ‘사랑의 슬픔’ 다음으로 맹렬히 연습했던 곡이 <집시의 시간> 주제곡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나리오에 <집시의 시간>이 언급되지 않나. 감독님께 이거 연주할 수 있다고 하니까 감독님이 “갖고 와 보이소” 해서 연주도 해봤다. 그런데 저작권 문제로 결국 쓰지는 못했고, 지금처럼 ‘희망가’를 연주하게 된 거지.

ⓒ소동성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면이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다.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라고 장국영이 일러주지만, 찬실 입장에선 많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런 찬실이 마음을 다잡는 장면인데, 위로의 감정이 잘 느껴졌다. 롱테이크로 촬영하느라 신경 쓸 것도 많았다던데. 밤을 꼬박 새워 찍었다고. 

사랑과 일에 대한 직접적인 대사가 있는 장면이다 보니 걱정을 좀 했다. 찍으면서도 감독님이 지금은 글 같다고 지적하셨고. 그리고 그 장면에서는 어쩌면 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반복하다 보니까 그때는 찬실이가 가장 정신이 선명하고 맑을 때라는 게 느껴지더라. 현장에서 그 장면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어 좋았다. 물론 롱테이크는 중간에 소리가 난다든지 하는 변수가 많으니까 걱정도 됐고 여전히 자신이 없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감독님이 오케이를 하셨고 딱 돌아서니까 비가 왔다. 그 장면이 끝난 거지. (웃음)

 

유독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음...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너무 사랑했던 장면들은 있었다. 주인집 할머니가 시 쓰는 장면 같은 건 읽으면서 울었다. 그런데 촬영할 때 눈물이 안 나와서 혼났다. (웃음) 아마 내가 애착을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는 감독님이 신이 내려서 쓴 시가 아닐까 싶다. 사실 지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찬실이가 감독님에 대한 그리움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지 않나. 그런데 그 시가 그것까지 다 감싸 안는 느낌이거든. 이 사람이 이렇게 힘들어했던 데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고 하는, 어쩌면 빈 이야기까지 다 감싸는 그런 느낌이 있다. 또 할머니가 따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찬실이가 갑자기 떠올리게 되면서 울 수도 있는 거고. 정말로 영화를 안아주는 시다. 그런데 너무 애착을 가져서 현장에선 잘 안 됐다. 그래서 아, 다 공평하게 생각해야겠다 싶더라. 그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질문에는 특별히 대답할 수 없는 것 같다.

 

아까 아코디언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 새롭게 배우고 싶거나 배우고 있는 게 있나.

지금 너무 재밌게 하는 건 요가다. 1년 정도 했는데 순환이 되는 느낌이 참 좋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쿠버 다이빙에도 한 때 빠졌다. 오픈 워터 자격증을 따고 그다음에 40미터까지 들어가는 코스가 있는데 그때 깊이 들어가 봤다. 그런데 돈이 들어서 계속하진 못했다. (웃음)

 

그렇게 깊게 들어가면 느껴지는 자유로움 같은 것이 있겠다.

맞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때 내 성격을 좀 알았다. 40미터 정도 가면 색깔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파란색뿐인데, 거기 절벽 같은 게 있고 또 그 너머가 있었거든. 그런데, 가보고 싶더라. 그만큼 내려갔는데도 더 가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아 나한테 이런 호기심이 있구나, 했다. 평소에는 호기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거든. (웃음)

ⓒ소동성

예전에 연극을 주로 할 때 한 인터뷰에서 “모르는 세계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했던데. 

그때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스무 살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고 그걸 열심히 하고 있어서 지금은 행복하다, 이런 이야기가 되려고 하더라. 사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고 점점 약해지고 또 수명이란 게 있지 않나. 그런데 스무 살 때 하고 싶었던 것을 어떻게 50대나 60대에도 같은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나는 변모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모르는 세계로 가고 싶다는 게, 꼭 큰 변화라기보다도 어제 했던 고민을 오늘도 하고 싶진 않은 거다. 30대를 돌이켜봤을 때 원도 없이 너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연극과 연기를 시도해서가 아니라 내가 계속 변모해서일 것이다. 

 

찬실이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가장 좋아하고,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1989)을 보고서는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찬실이처럼 애정을 가진 감독이나 영화가 있다면.

계속 변해갔던 나한테는 그런 게 없다. (웃음) 20대 때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좋아했고,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 이해준, 2006)라는 영화에 빠져서 여러 차례 극장을 갔던 적도 있는데, 지금도 그만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셀린 시아마, 2019)을 정말 행복하게 봤다. 극장을 나서는 내가 모르는 미래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갈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할까. 삶에서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연인과 헤어짐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에 어떤 감정과 접속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모습으로 영화가 끝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정말로 삶을 긍정하는 영화 같다고 느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른에 연극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계속 배우로서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

처음 연극을 할 땐 무대에 오르지 못해 힘들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지. 아르바이트하면 연습을 못 하고, 연습하면 아르바이트를 못 하고. 빚지면 눈물 나고 그런 세월이었다. 그래서 귀농한 선배님 집에 내려가서 함께 살면서 연극을 만들고 공연한 적도 있다. 멋진 분들과 재밌는 작업을 했는데, 두 달 정도 지낸 후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되더라. 결국 다시 서울로 왔다. 다시 황무지에 선 거다. 그때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면서 연극을 하려고 하느냐고 누가 물었는데, 장기공연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연기가 늘 것 같았다. 한 달 반 동안 어렵게 연습해서 3일 공연을 하고 몸이 좀 풀리려고 하면 끝나버리니까. 오래전부터 배우로서 잘 하고 잘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데 그걸 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석 달짜리 장기공연을 하게 됐다. 할머니 역이나 남장 여배우 역을 하다가 사랑도 하는 여자 역할을 해보고 싶으면 그런 기회가 또 오고.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씩 풀려갔다. 그다음에는 주인공이 하고 싶었는데, (웃음) 기회가 잘 없어서 낭독 공연만 했다. <박열>(이준익, 2017)에서 최희서 씨가 연기한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를 읽는 공연이었다. 

<욕창>(연출 심혜정, 2019)
<끝에서부터>(연출 황예리, 2011)

연기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력을 느끼나.

어려운 질문이다. 예전에 친구 아버님께서, 너는 죽을 때까지 잡고 있을 동아줄을 갖고 있구나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게 나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말씀이었다. 살면서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나만 알 수 있는 동아줄이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걸로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지루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그게 연기냐고 물어보면? 그건 잘 모르겠다. (웃음)

 

김초희 감독에게 두 사람의 인연에 관해 물었더니 운명 같다고 하더라.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처지이고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이렇게 만나 버팀목이 되는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인생에서 정말 값지고 든든한 일이라면서. 참 귀한 인연인 것 같다.

나는 감독님의 차기작을 너무너무 바란다. (웃음)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시나리오에는 마지막 찬실이의 한 마디와 그다음 엔딩이 없었다. 그런데 그 한 마디를 감독님이 촬영 전날에 써주셨고 엔딩도 멋지게 완성하셨다. 그걸 보면서, 이렇게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예술영화가 있을 수 있나 싶더라.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독님 덕분에 내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너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배우는 이래야 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으니 안 된다고 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그런 기준들 자체가 바뀌는 것 같다. 

 

올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나.

찬실만큼의 분량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엄마로 출연했던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애비규환>이라는 영화는 편집 중이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는 촬영 중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은 마치 예전에 장기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것처럼, 하고 나면 과제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는 경험이 중요하다. 현장에 많이 가고 싶다.

ⓒ소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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