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마음을 부를 때
<작은 빛> <기억의 전쟁> 음악 이민휘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0-03-07

“음악 이민휘” 언제부터인가 극장에서 엔딩 크레디트를 마주할 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음악과 연결할 수 있는 이민휘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기타를 치는 만수와 구장구장(장구를 개조한 타악기)을 연주하는 무키로 이루어진 2인조 밴드 무키무키만만수에서 이민휘는 만수였다. 2011년에 등장한 이 ‘탈개념’ 밴드를 두고 반응은 극과 극으로 엇갈렸는데, 어느 쪽이든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음악’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무키무키만만수로 1집을 내고 홀연히 사라지는 줄 알았더니, 이민휘는 2016년에 솔로 앨범 <빌린 입>을 발표했다. “그대 입과 귀는 그대 것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로 가득한 이 앨범은 이민휘가 떠나온 곳과 새로 도착한 곳에 대해 차분히 들려주었고, 음악적 성취를 인정받으며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이민휘는 전혀 다른 창구에서도 음악을 지속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연출 장건재, 2014), <나의 연기 워크샵>(연출 안선경, 2016), <버블 패밀리>(연출 마민지, 2017) 등 주목받은 독립영화에 음악으로 참여했고, 최근에는 <기억의 전쟁>(연출 이길보라, 2018)과 <당신의 사월>(연출 주현숙, 2019)에도 자신만의 색을 덧칠했다. 이민휘를 만나서 음악과 영화, 그리고 영화음악에 관해 물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검은 화면에 흰 글자로 수많은 이름이 떠오르는 동안에도 이민휘의 음악은 흐른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집과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산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안일 하다가 왔다. (웃음)

 

시기와 상황에 따라 이민휘라는 이름에 붙는 수식도,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도 달라졌을 듯하다. 이제 음악감독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나.

밖에서는 그냥 음악 한다고 말한다. 내 음악도 하고 남의 음악도 하는 사람이라고.

 

밴드 무키무키만만수로 데뷔하여 2012년에 1집을 냈고, 2016년에는 솔로 앨범 <빌린 입>을 발표했다. 영화음악은 그사이인 2013년 무렵 <주님의 학교>와 <파스카> 등을 통해 시작한 거로 안다. 당시 개인적으로 혹은 음악가로서 어떤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나.

시작한 때는 훨씬 오래전이다. 2008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영상원 친구들이 알음알음 부탁해오면 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만들어주었고, 몇 년 지나자 포트폴리오가 꽤 쌓였다. 그때 달파란 선생님과 만나서 내 작업을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고, 그 계기로 2011년에 <고지전>(연출 장훈) 음악 팀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 작품을 데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큰 영화에 들어갔지. (웃음)

<파스카>(연출 안선경, 2013)

꾸준히 영화음악에 관심을 두었나 보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입한 동아리도 ‘돌곶이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영화 모임이었다. 우리끼리는 ‘돌비’라고 불렀는데, 일주일에 하루 모여서 영화를 감상하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면 그때 경험이 이 일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데 많은 영향과 도움을 준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영화 보고 나서 같이 술 마시는 동아리에 가깝긴 했지만. (웃음)

 

당시 동아리에서는 어떤 영화를 봤나.

혼자서는 보기 힘들 것 같은 영화들. 고전 영화도 많이 보고 괴상한 영화도 많이 봤다. 어째선지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존 워터스의 <핑크 플라밍고>(1972)다.

 

학창 시절에는 뭐하며 놀았나. 친구들과 했던 ‘작당 모의’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대부분 비슷할 것 같은데, 영화 보고 책 읽고 술 마시면서 놀았다. 아, 학보 신문사에서도 활동했다. 그러고 보니 무키를 거기서 만났네. 그때 나도 이렇게 인터뷰하러 다니곤 했는데. (웃음)

 

인터뷰이는 어떤 사람들이었나.

‘별들에게 물어봐’라는 코너를 기획해서 학우들에게 희망 인터뷰이를 신청받았다.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어르신’격인 선배를 섭외하고 함께 만나는 거지. 음악 쪽에서는 정원영, 김광진 씨 등을 만났고 한유주 소설가도 찾아간 적이 있다. 1기 졸업생인 이선균 배우를 만나기도 했다.

『빌린 입』(2016)

무키무키만만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모습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2008년 석관동’이나 ‘식물원’의 경우, 다시 들으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흐르는 음악 같다는 느낌도 든다. 어쩌면 스피커가 달라졌을 뿐 ‘이민휘의 음악’은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어떤 특별한 생각이나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다기보다는, 때마다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여기까지 흘러온 느낌이다. 영화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영화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어쩌다 보니 무대에 섰다가 무키랑 밴드 무키무키만만수로 활동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애들끼리 어울리면서 이것저것 해봤던 것 같다.

 

친구이자 동료인 창작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과 전시에도 음악으로 참여했더라.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나.

난 정과 의리가 있는 편이다. 즉 마감을 지킨다는 뜻이지. (웃음) 사실 지난 5년 동안 외국에서 살았는데, 끊임없이 한국에 있는 연출자들과 작업해왔다. 얼굴 보며 대화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본인 영화에 들어갈 음악을 맡긴다는 건, 그만큼 내가 마감에 정확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은 실제 무대와 공연을 봐야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선 작업할 수 없었고, 영화와 영상 전시의 경우에는 마음이 동하면 참여했다. 작업마다 사람도 다르고 일의 성격도 달라지니 새롭고 재밌더라.

 

외국에서는 무얼 했나.

영화음악을 배우기 위해 유학했다. 처음에 뉴욕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이 생겨서 덜컥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지원했다. 면접 보고 합격할 때까지 아무도, 심지어 부모님도 몰랐지. (웃음) 불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여서 정말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준비했다. 뉴욕과 파리에서 각각 2년 반씩 살았고, 지금 귀국한 지 5개월밖에 안 됐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연출 장건재, 2014)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분기점이 되는 작품처럼 보인다. 장건재 감독과는 어떻게 만났나.

장건재 감독이 <파스카>를 보고 인상 깊게 들었다며 연락했다. 대개 그런 식으로 작업이 이어진다. 항상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웃음)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일어 가사를 쓴 것은 누구 아이디어였나.

일어 가사는 내 아이디어였던 것 같은데,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사를 써달라고 했다. 감독과 김새벽 배우가 함께 썼다더라. 가사 유무나 노래 제목은 내 재량으로 결정하는 편이다.

 

영화 제작과정을 놓고 보면 어느 시점에 작품에 결합하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의뢰하기도 하고, 촬영하며 연락이 올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가편집본이 나온 상황에서 작업에 들어가는 편을 선호한다. 음악을 만들고 장면과 딱 맞췄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거든.

 의상 최경주 ⓒ이영진

보통 연출자와 어떤 식으로 협업하는지 궁금하다. 음악은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해당 장면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작업이 가능하겠더라.

우선 연출자가 원하는 것을 듣는다. 이해하고 공감하면 그대로 진행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물어본다. 감독이 제의한 내용과 다른 의견이 있거나 따로 제안할 것이 있으면 의논하며 합을 맞춰나간다. 레퍼런스 음악을 처음부터 듣는 것은 매우 좋아하지 않는데 귀가 익숙해지면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과 감을 믿는 감독과 작업하기를 선호하고 이제까지는 그래왔던 것 같다. 모든 협업이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일을 진행하는 본인만의 순서가 있다면.

우선 방을 깨끗하게 치운다. 정말 먼지 한 톨도 없이 쓸고 닦고, 책상도 각 맞춰서 정리하고. (웃음) 그다음에는 파일을 만든다. 나는 프로젝트 별로 클리어파일을 하나씩 갖는데, 거기에 라벨을 붙이면서 일이 시작된다. 파일 안에 시나리오, 감독과 주고받은 코멘트, 레퍼런스, 작업료 등 일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저장한다. 일할 때 눈앞에 그 파일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다음엔 파일 옆에 오선지를 놓고 콩나물을 좀 그려보는 거지.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처음 편집본을 보고 나서 손으로 작곡할 때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 일이 끝나면 파일을 비우고 '끝난 일'이라고 이름 붙인 박스에 넣는다. 거기에 내가 10년 동안 작업해온 결과물과 그 과정이 쫙 모여 있는 거다. 일을 진행하는 나만의 방식이자 유용한 도구이다. 시간이 지나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어주기도 한다.

<히치하이크>(연출 정희재, 2017)

완벽주의자 같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아닌가. 다 까먹었다고 해도 다시 그 파일을 펼쳐 들면 당시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뭐가 좋았고 뭘 주의해야 하는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작곡 과정에 관해 좀 더 듣고 싶다. 어디서 영감을 얻나.

무조건 음악 없는 영상을 보며 작업한다. 편집본에 종종 가안으로 음악을 붙여놓은 경우도 있는데, 전부 제거하고 달라고 요청한다. 아무래도 반복해서 영화를 보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 구상할 때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피아노를 치면 손에 익숙한 흐름대로 음을 연결하는 경우가 생겨서 악보를 먼저 그리려고 노력한다. 작업이 안 풀릴 때는 감독과 연락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일이 버거운 순간도 있을 텐데.

이상하게 없다. 좋아하는 것 같다. 약간 ‘덕후’ 기질이 있다. (웃음) 좋은 작품을 만나면 창작자로서 욕심이 나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도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왔다. 작업복(福)이 있는 것 같다.

<버블 패밀리>(연출 마민지, 2017)

어떻게 보면 영화음악은 일종의 맞춤형 제작이다. 결과적으로 타인을 위해, 혹은 타인의 것을 창작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서 어떤 갈등을 느낀다기보다는 가능한 한 같이 가져가려고 한다. 남의 것을 만들 때도 내 색깔이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결국 그런 방향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언제 비로소 일이 끝났다는 생각이 드나.

마지막에 사운드 믹싱까지 마쳤을 때 '아, 끝났구나!' 한다.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니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장르 구별 없이 폭넓게 작업해왔더라. 경험이 쌓이면서 작품을 선택하는 자신만의 기준도 생겼을 듯하다.

나름 철저한 원칙이 있다. (웃음) 첫째는 역시 사람이다. 대화했을 때 너무 거리가 느껴지는 사람, 뭔가를 함께하기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드는 사람과는 작업하지 않는다. 또 생각보다 단편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단편은 무조건 친구 작품일 때만 수락한다. 누군가가 말하길 어떤 일이든 돈과 명예, 재미 셋 중에 적어도 둘은 충족해야 한다는데, 단편 작업은 사실 셋 다 기대하기 쉽지 않다. 정말 정과 의리로 하는 일이다. (웃음)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단편인데, 음악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 작품이 정말 예외였다. 물론 이나연 감독도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작품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직 공개된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에 이나연 감독과 한 편 더 같이 작업했다. 조민재 감독과 공동연출한 <실>이라는 단편이다.

<작은 빛>(연출 조민재, 2018)

조민재 감독과는 이미 <작은 빛>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음악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작품인데, 음악이 흐르는 구간은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 진무와 가족들이 아버지를 이장하고 함께 산을 내려오는 엔딩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음악이 인물과 공간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이나연 감독을 통해서 처음 작품을 접했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바로 작업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작은 빛>은 천천히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고 합쳐지는지 따라가면서 점차 영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제목 그대로 ‘작은 빛’들이 모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음악도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최근에는 <기억의 전쟁>과 <당신의 사월>까지 연이어 다큐 작업에 참여했더라. 장르에서 기인하는 차이가 있을까.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대사로 주요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음악을 숨길 때도 많다. 극에서는 음악을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불어 이야기하거나 감정을 끌고 가며 시너지를 내기도 하는데,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런 부분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다. 사실 자체가 주는 감정을 방해하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기억의 전쟁>의 경우, 베트남어 음성에 묻어나는 고유의 리듬을 고려했다는 인상이다.

사실 리듬보다는 워낙 이야기가 지닌 무게감이 대단한 영화여서 감정을 절제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이길보라 감독도 앰비언스처럼 들어가는 음악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나도 동의하는 방향이었다. 그런 식으로 작업한 게 거의 처음이었다.

<기억의 전쟁>(연출 이길보라, 2018)

출연자들이 한국에 와서 시민 모의법정에 참석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잔잔하면서도 멜로디를 반복하며 점점 고조되는 느낌이더라. 그때 음악이 완전히 다른 무드였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말하자면 더욱 힘차고 경쾌한 느낌으로 넣어보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다.

되게 많은 감정이 섞이는 장면이지 않나. 우리는 이제 말할 수 있고 상황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두렵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느껴진다. 한국 방문이 어떻게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기에 떨리는 순간이고, 최대한 그 감정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 참사가 남긴 기억과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품이다. 음악에서 가급적 담담한 정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데, 작업하며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 듣고 싶다.

그것도 역시나 참 커다란 이야기여서…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 이 일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지 이미 알고, 거기에 내가 나서서 어떤 감정을 강요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영화에 한 곡 정도는 떠난 사람들에게 전하는 노래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주현숙 감독이 가사를 쓰느라 고생했다. 글을 쓰기까지 굉장히 힘들어했고, 나 역시 노래 부를 때 계속 감정이 북받치더라. 설상가상으로 시간도 너무 부족한 상황이라 믹싱을 이틀 앞두고 정말 정신없이 작업했다.

 

영화음악은 영화에서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본인 기준에서 좋은 영화음악이란?

아직도 풀고 있는 숙제다. 생각할수록 어렵다. 아마 내 개인 작업에서 그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영화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음악이 필요한가 하면, 음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묻어가며 이야기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당신의 사월>(연출 주현숙, 2019)

음악으로 기억하는 영화가 있나?

토루 타케미츠를 좋아한다. <모래의 여자>(연출 테시가하라 히로시, 1964)를 혹시 안 보셨다면 꼭 보시면 좋겠다. 듣고 영상이랑 음악이 너무 잘 붙어서 깜짝 놀랐다. 고다르 영화에 많이 참여했던 앙뚜안 두하멜도 좋아한다. 그의 음악이 고다르의 과감한 편집과 만나면 음악이 중간에 뚝 끊겨도 너무 잘 어울린다.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다. 영화는 시기마다 주제나 만듦새에서 어떤 경향을 띠기도 하는데, 영화음악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나.

물론이다. 상업영화 쪽은 드럼 소스에도 유행이 있는 식이라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작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트렌드를 안 따르는 사람들과 작업했던 거지. (웃음)

 

직접 만들고도 ‘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곡은?

아까 말한 <실>에 들어간 노래. 만들면서도 ‘이거 너무 잘 나오는데?’라고 생각했다. (웃음) 감독이 괜찮다고 허락해주면 개인 앨범에 넣고 싶을 정도다.

 

이 분야에 접어들며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점은 무엇인가.

영화와 음악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편이 잘 맞는다. 그래야 생활도 유지하고. (웃음) 지금도 영화음악을 포함해서 몇 가지 작업을 진행 중이고, 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물론 주업은 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화음악 일이 부업이란 뜻은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계속 솔로 앨범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연출 이나연, 2018)

현재 작업 중인 음악은 어떤 것들인가.

장건재/김종관 감독 옴니버스 프로젝트에서 장건재 감독 파트 음악을 맡았다. 연극 <동시대인>(연출 윤한솔 극본 전성현)과 몇 가지 미술 영상에 들어가는 음악도 만들고 있다.

 

워커홀릭이라는 소리도 들어봤을 것 같다.

약간? (웃음)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출근하는 날도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평일에만 작업실에 가려고 노력한다. 집에서 일할 때는 일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고양이와 놀다가 하는 패턴을 반복했는데, 작업실이 생기고 나서는 좀 달라졌다. 그 공간에 갔을 때는 뭔가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력이 높아지기도 하고, 어쨌거나 일과 생활을 분리해야 작업에도 더 충실할 수 있겠더라.

 

일을 떠나서 평소에 즐겨듣는 노래도 궁금하다.

요즘에는 지미 헨드릭스를 많이 듣는다.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하는데, 음악은 한 시기에 꽂히는 걸 질릴 때까지 계속 듣는다.

 

계속해서 ‘음악 하는 사람’일 수 있는 원동력은?

나 자신을 믿기. 내가 날 믿지 않으면 누가 날 믿겠나.

 

얼마 전 유튜브에서 7년 전 무키무키만만수의 라이브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꼭 밴드가 아니더라도 새 음반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언제쯤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5년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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