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남자>
김선명 / Choice / 2020-02-20

태욱(박혁권)은 목사다. 성도가 다섯 뿐인, 이름 없는 개척교회 목사다. 지하의 좁은 예배당조차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 수중에 몇십만 원이 없어 밤새 대리운전을 하는 그에게 아내 정인(류현경)은 엄마(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로 5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태욱은 “우리를 항상 불안과 방황의 길로 유혹하는” 부정한 시대와 혹독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영화감독의 삶과 개척교회 목사의 삶은 비슷하다”는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기도하는 남자>는 물질적 가치 이상의 것(종교와 예술)을 향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물질적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교회와 영화)에서 끊임없이 시험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주목한다.

죄짓지 않았으니 벌 받지 않을 것이라는 가난한 목자의 신심을 막아서는 건 ‘가난이 곧 죄’라는 지상의 계율이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태욱에게 사람들은 하나 같이 “무슨 수로 갚을 거냐”고 조롱하고 힐난한다. 뭐라도 해봐야 한다고,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고 안간힘을 쓰는 태욱은 하는 수 없이 신학교 후배이자 대형교회 목사 아들인 동현(김준원)과 얽히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더더욱 꼬인다. <기도하는 남자>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지경에 다다르는 구약성서 속 선지자들의 행로를 고스란히 되밟는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던 정인 또한 태욱과 마찬가지로 험난한 수렁에 빠져든다. 고등학교 동창인 부동산 회사 대표 수호(오동민)의 은밀한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기도하는 남자>
<기도하는 남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극중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면서 영화는 상투적인 설정에 적잖이 기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락한 현실과 숭고한 이상의 대립을 통해 비참한 인간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애초의 의도가 희석되는 것 같진 않다. 이주노동 청년의 울부짖음과 마주한 뒤 태욱은 무엇을 하는가. 비통해하는 딸을 두고 엄마는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저버리고 믿음을 단념하자, 뜻밖의 기적(?)이 그들에게 찾아든다. 얼핏 보면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인물의 결심과 행동이지만, 외재하던 신이 어느 순간 그들 곁에, 아니 그들 안에 거했다는 점에서만큼은 동일하다.

“주의 계획이 사람의 눈으로는 광야를 걷는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그 속은 가나안 땅과 같이 젖과 꿀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꺼내놓은 태욱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엔 응답받고 완성된 것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태욱을 다시 한 번 비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발가벗겨진 채 내버려졌던 사내는 뒤늦게 찾아온 더없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말끔한 양복을 걸쳐 입고 있다. 이제 정말 끝난 것인가. 연신 헛구역질하는 태욱의 모습 뒤로 멀리 십자가가 보인다. 카메라가 성스러운 표징에 다가설수록 태욱의 신음 소리는 더욱 커진다. 기도하는 남자가 토해내는 격한 파열음은 신에 대한 경멸일까, 신을 향한 경외일까. 신이 그를 품었는지 그가 신을 삼켰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느 쪽이든, 그의 눈에 십자가는 더 이상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도하는 남자>
<기도하는 남자>

기도하는 남자 Pray 제작 영화사 연, 스튜디오 호호 감독 강동헌 출연 박혁권, 류현경, 남기애, 김준원, 오동민 배급 ㈜랠리버튼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95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0년 2월 20일

 

 

Choice
지금, 우리는
<해야 할 일>
손시내
2024-09-26
Choice
가족의 조건
<장손>
손시내
2024-09-14
Choice
투정이 아니라고
<한국이 싫어서>
차한비
2024-08-30
Choice
거울 없이도
<러브 달바>
차한비
202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