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에서 온 편지
<사마에게>
김선명 / Choice / 2020-01-27

2017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라스트맨 인 알레포>(페라스 파이야드, 2017)는 시리아 민방위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얀 헬멧을 쓰고 활동하기 때문에 ‘화이트 헬멧’으로 알려진 이들은 내전의 포화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구조하며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리아 정부군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군에게 포위된 반군의 거점 도시 알레포. 영화 속에서 한 화이트 헬멧 대원은 비행 중인 폭격기를 올려다보며 기종을 알아맞힌다. 맨눈으로 폭격기 기종을 구별하게 될 정도로 기습 공격이 일상이 된 알레포에서 <사마에게>의 감독 와드 알-카팁 또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그녀의 카메라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21세기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내전.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서는 현재까지 약 40만 명이 사망 및 실종됐고, 12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아랍의 봄’ 물결에 힘입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항한 시민들의 승리 드라마는 잊힌지 오래다. 러시아라는 오랜 우방이 위기에 처한 알아사드 정권의 버팀목이던 상황에서 무기 지원에 목말랐던 반군은 그들에게 다가온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와 손잡았다. 덕분에 파죽지세로 점령지를 넓혀갈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성장한 무장단체는 반군과 갈라서며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IS(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IS 퇴치라는 국제적 명분 아래 러시아는 정부군을, 미국은 반군을 지원하며 시리아 내전은 미·러 두 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됐고, 시리아에서 탈출한 수백만의 피난민들은 전 세계에 난민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사마에게>

2012년 알레포 대학 재학 시절 시리아의 민주화운동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을 때부터 와드는 한 순간도 카메라를 놓은 적이 없었다.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민주화운동이 내전으로 번지고, 군의 공격이 더 거세졌을 때도 그녀는 알레포를 떠나지 않았다. 무정부 상태의 도시에서 동료이자 후에 남편이 될 함자 알-카팁과 함께 병원을 세우고, 정부군의 폭격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려야 했다. 그녀가 포위된 알레포에서 출산한 딸에게 ‘사마’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또한 동료들의 염원이 담긴 새로운 고향이자 딸이 앞으로 살아갈 알레포의 하늘을 전쟁으로부터 지키려는 마음에서였다. “공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 태양과 구름이 떠 있고 새가 지저귀는 하늘”을 꿈꾸며 시리아어로 하늘을 의미하는 사마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포위된 알레포에서의 마지막 6개월을 갓 태어난 딸과 함께 살아낸 그녀는 알레포 함락 직전 가족과 함께 탈출한 뒤 영국에서 자신이 2012년부터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했다.

<사마에게>

완성된 영화 <사마에게>가 딸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을 띠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 기록은 태어나서 본 것이라고는 전쟁밖에 없는 딸 사마에게 왜 엄마, 아빠가 알레포를 떠나지 않았으며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를 말해준다. 영화에서 함자와 와드의 이웃인 살렘은 화염에 그을린 버스를 아이들과 함께 페인트칠 하며 희망을 되살리려고 애쓴다. 지하에 마련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살렘의 아내 아프라, 봉쇄된 길을 뚫고 다시 알레포로 돌아온 함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억압에 저항해 정의를 세우려면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이들의 열망에 힘입어 <사마에게>는 잔학한 폭력을 고발하는 참상의 기록, 혹은 고향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난 패퇴의 기록을 넘어선다.

알레포가 포위된 2016년 7월, 프롤로그 후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하는 사마의 얼굴이 사실상 이 모든 저항의 이유를 웅변한다. 자장가를 부르는 와드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흐르는 가운데 와드의 카메라는 갓난아기인 사마를 촬영 중이다. 이때 평온을 뒤흔드는 폭격소리가 두 모녀를 순식간에 내전의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친다. 딸을 동료에게 맡겨 먼저 피신시킨 와드는 다급하게 카메라를 움직인다. 바깥에서 터지는 폭탄과 스며드는 연기. 이를 피해 지하로 내려가는 와드의 카메라에 담긴 처참한 모습들. 아비규환을 헤치고 다시 만난 사마는 다행히 동료들의 보살핌 속에 분유를 마시고 있다. <사마에게>는 영화 내내 이와 같은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침대에 누워 미소 짓는 사마의 얼굴과 그 평화를 깨뜨리는 폭격의 굉음. 새 집을 구한 와드와 함자의 행복한 한때와 공습에 목숨을 잃은 동생의 시체를 껴안고 슬피 우는 어린 두 소년. 영화는 둘의 간극을 계속해서 오가며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행복을 전한다.

<사마에게>

 

사마에게 FOR SAMA 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출연 와드 알-카팁, 사마 알-카팁, 함자 알-카팁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공동제공 왓챠 제작연도 2019년 상영시간 95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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