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영화관
<라스트 씬> 박배일·정진아
글 정지혜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19-12-26

12월 20일 서울역. <라스트 씬>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과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부산 국도예술관의 정진아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12월 12일 <라스트 씬>이 개봉한 이후, 두 사람은 ‘라스트 씬 무브 무브’를 기획해 서울, 전주, 대전, 대구, 강릉, 목포, 광주 등에 있는 독립예술극장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극장 상영 활동가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듣고 관객의 능동성을 끌어낼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날 행선지는 강원도 강릉의 독립·예술 극장 신영. 강릉 행 기차에 오르기 전, 두 사람에게 <라스트 씬> 이야기를 잠시 청해 들었다.

<라스트 씬>은 2018년 1월 31일 잠정 휴관에 들어간 국도예술관이 마지막 상영을 준비하는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극장을 마음의 터로 삼은 활동가와 관객이 국도의 오랜 사연을 들려주는 사이, 카메라는 강릉 신영, 광주극장, 서울의 인디스페이스 등 전국 독립·예술 극장의 사정과 공간도 둘러본다. 두 사람에게 <라스트 씬>은 이제는 과거가 돼버린 공간을 추억하는 애틋한 회고가 아니다. 언제 또다시 문을 닫을지 모르는 독립·예술 극장의 미래를 고민해보자는 절박한 제안이다. 이들이 말하고 꿈꾸는 '커뮤니티 시네마'는 과연 무엇일까.

 

 

어제 부산에서 <라스트 씬>을 상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국도예술관이 문을 닫게 된 상황에서 시작된 영화인만큼 부산의 상영 활동가, 관객들과 나눈 대화가 남달랐을 것 같다.

정진아_ 다른 지역 극장에서는 극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들었다면 어제는 관객들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국도의 관객들이 많이 오셨고 국도를 많이 그리워하시더라.

박배일_ ‘라스트 씬 무브 무브’는 운동과 캠페인의 차원에서 준비한 기획이어서 관객보다는 극장 상영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데 더 큰 의미를 뒀는데. 어제 관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 기획의 한 꼭지 정도는 관객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 관객 저마다 극장 경험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극장이 사라진 뒤, 위기에 처한 극장 현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관객은 극장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어떤 방식으로 동참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함께 얘기하고 기록으로 남길 필요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더라.

<라스트 씬>

<라스트 씬>은 상영 활동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객의 적극성과 각성을 요청하는 영화다. ‘라스트 씬 무브 무브’를 통해 극장-관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를 말해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정진아_ 애초에는 (국도예술관이 재개관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극장이 만들어지면 그때 <라스트 씬>을 개봉하려고 했다. 영화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극장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지만, 이 영화를 방편 삼아 극장의 미래를 상상하는 게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그래서 영화 개봉에 앞서 국도와 접점이 있는 각 지역 독립영화관들을 찾아가 지역별로 극장이 처한 상황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역 극장은 성격도, 상황도 정말 다르다. 그런 걸 다 고려해 극장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게 시작이겠다 싶었다. 기획의 제목이 ‘무브 무브’인 건 ‘move’ 즉, 우리가 움직이고 찾아가겠다는 뜻도 있지만 같은 단어를 연달아 붙여놓음으로써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여 보자는 의지도 포함됐다. 어쩌면 그동안은 극장과 관련된 일들이 벌어졌을 때 너무 뒤늦게 움직였던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속도를 내 앞을 내다보려 한다.

박배일_ GV 등을 통해서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았다. 그에 비하면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일은 흔치 않았다. 많은 경우 상영 활동가나 극장 노동자들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우리가 극장을 하나의 공동체 공간이라고 본다면 관객 못지않게 중요한 구성원이 바로 이들 상영 활동가들이다. 관객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했고, 이를 통해 극장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정진아_ 여러 기관이 준비한 간담회나 토론회 등은 많았지만 상영 활동가들의 목소리만을 경청할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직접 만나면서 이분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토록 많았구나, 하고 느낀다.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박배일_ 지역 극장의 프로그래머가 그러더라.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물어봐 주지 않았다”고.

<라스트 씬>
<라스트 씬>

대개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운영의 어려움을 말할 때면 정부 기관이나 제도를 문제 삼곤 하는데 <라스트 씬>은 그런 게 없다. 오히려 “수동적인 관객”의 무관심을 더 꼬집고 싶어 한다.

박배일_ 안 그래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 꼭 묻더라. 어째서 시스템의 문제를 말하지 않느냐고. 시스템이 잘 돼 있든 그렇지 않든 독립영화관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시스템을 바꾸는 첫걸음도 그 마지막도 역시 관객이다. 이런 생각을 <라스트 씬>은 직접적으로 다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자꾸만 외부 시스템을 말하라고 하나. 좋은 정책이 있다고 관객이 극장에 올까? 이전에는 (카페 창 너머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관객이라고 생각했고 저렇게나 많은 사람이 극장에 오지 않는 걸 두고 비판했다. 익명의 누군가를 향해 나 혼자 극장에 오라고 또 오지 않는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화를 냈던 거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관객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사람이더라. <라스트 씬>을 개봉하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박배일 감독은 10년 넘게 국도를 찾은 열정적인 관객이었다. 감독이 속한 오지필름은 독립다큐멘터리 정기 상영회 ‘다큐, 싶다’도 국도와 함께 진행해왔고. 국도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이었겠다.

박배일_ 2016년 초였다.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올해는 국도예술관이 10년이 되는 해다. 이 자리에서 얼마나 더 극장을 운영해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관객과 추억을 나눌 영상을 제작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내가 사랑하는 영화관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데 화가 났고, 어떻게든 이곳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영화뿐이니까. 게다가 국도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후인 2016년 2월 29일에 강릉 신영극장이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강릉으로 향해 그곳을 찍었다. 영화가 지금의 형태로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12월 말이었다. 2018년 1월 31일을 끝으로 국도가 정말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큰일 났다!’ 싶더라. 문을 닫는 게 현실이 됐는데 내가 찍어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 <라스트 씬>이 국도의 마지막 상영작이 될 수 있게끔. 이번 개봉한 작품은 그걸 버전업 한 것이다.

정진아_ 극장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국도의 10주년인 그 해, 건물주와의 갈등이 계속됐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국도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어쨌든 기록이 필요했다. 박배일 감독은 내가 가장 믿는 감독이다. 나로서는 기록물이 완성만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박배일 감독에게 미안했다. 연출자로서 자기 색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상황이나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도 정말 잘 만들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정진아 ⓒ이영진

언제부터 어떻게 국도와 인연을 맺게 됐나.

정진아_ 남포동 시절부터 국도 관객이었다. 2008년 국도가 대연동으로 옮길 때만 해도 관객들이 직접 극장 공간도 알아보고 이사도 같이할 만큼 에너지가 있었다. 그때 나는 디자이너로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틈틈이 극장에 디자인과 관련해 도울 게 있으면 일을 맡아 했다. 극장이 대연동으로 이사한 뒤로는 극장 온라인 커뮤니티 관리자가 됐다. 그때 실질적으로 극장을 운영할 수 있는 분이 사장님과 티켓 부스에서 일하는 분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께서 내게 상영 시간표를 만들어서 커뮤니티에 올리라고 하시더라.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배급사 리스트를 주며 ‘여기에 전화하면 된다’고 했다. (웃음) 직장에서 점심시간마다 배급사에 연락해서 ‘국도에 영화 주세요’ 그랬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게 다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이었다. 점점 회사에서 극장 일을 더 많이 하게 돼 2008년 아예 회사를 관두고 본격적으로 극장 일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영화진흥위원회 회의에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웃음) 다들 영화에 빠삭한 분들이어서, 왠지 나를 배척하는 것 같고 관찰하는 것 같고. ‘쟤가 언제까지 하려나 어디 한번 보자’는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은 대전아트시네마의 장승미 프로그래머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지역에서 여성이 프로그래머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지역 극장 대부분이 사장님이나 대표님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하는 식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주눅 들기보다는 나 역시 국도의 한 명의 관객으로서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박배일_ 나 역시 남포동 시절부터 국도의 관객이었다.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현재의 부산독립영화제)’에 단편 <제제에게 가는 길>을 출품했던 해에는 영화제 자원 활동가로,영화제 상영관인 국도의 필름 영사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국도의 열성 관객이던 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됐나.

정진아_ 2008년이었다. 어느 영화 관련 모임에서 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배일 감독은 미디어 활동을 하던 평상필름에서 막 나오려던 때였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감독들 대부분이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배일 감독은 부산에서 활동한다고 하더라. 내가 영화를 만들면 극장에서 상영해줄 테니 언제든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작품을 들고 왔다. 내가 감독들에게 그런 말을 해도 실제로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배일 감독이 부산에서 오지필름을 만들더니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영화 개봉도 하더라. 국도에서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도 어찌나 적극적인지.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미디어 활동가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거듭할수록 작가적 면모가 보였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국도에 잘 안 오는데, 배일 감독은 국도에 와서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웬만한 영화들을 다 챙겨봤다. 자신은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분야를 더 공부하려는 사람이었다. 이렇게나 열정적인 친구에게 국도의 영화를 다 보여주고 싶더라. 그 정도로 자주 극장에 왔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정회원 카드를 줬다. 원래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데 카드에 무기한으로 적었다. ‘국도의 평생 회원이니 극장에 와서 영화 열심히 보시라’라는 의미였다.

<라스트 씬>
<라스트 씬>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관객에게 느끼는 복잡한 마음, 애증의 감정이 영화에 드러난다.

정진아_ 내가 심적으로 힘들 때 찍은 것이라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이 터지곤 했다. 영화는 국도가 문을 닫기 약 한 달 전부터의 기록이 많이 들어갔는데. 그때 나는 매일 울고 있었지. (웃음)

박배일_ 국도를 촬영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런 분들에게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어찌 보면 조금은 까칠해 보일 정도로 거리를 뒀다.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관객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우면 오히려 일할 때 방해가 되니까 그랬을 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워낙 관계가 오래됐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고.

 

국도가 문을 닫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정진아_ 12월 11일에 국도의 관객들만 따로 모시고 <라스트 씬>의 상영회를 했다. 나는 그동안 ‘국도는 관객의 힘으로 운영된다’고 얘기를 참 많이도 했는데 정작 내가 관객의 힘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자리였다. 관객의 힘이 극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으로 그 힘을 아낄 수 있을 때까지 아껴뒀다가 쓰고 싶었다. ‘이번은 아니야’라고 하면서 억눌렀다. 내가 극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운동적 성격이 강한 일을 할 때 혹시라도 관객에게 부담이 될까 오히려 걱정이 되더라. 관객분들 중에는 그냥 영화만 보고 즐기고 싶을 수도 있을 테니까. 괜히 어떤 강요로 받아들여질까 봐. 또 ‘오셔서 힘이 돼주세요’라는 말도 조심스러웠다. 그 말이 계속되면 관객이 쉬이 지쳐 되레 극장에서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날 관객분들과 만나면서는 ‘아, 이분들의 힘을 더 많이 써야겠구나!’ 싶더라. (웃음)

 

어떤 에너지를 받았기에 그런 마음이 들었나.

정진아_ 그날 오신 분들 가운데는 국도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해도 좀처럼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국도의 올드 멤버라고 할 만한 관객들도 있었다. 국도를 잊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오히려 나 혼자 걱정하면서 정작 관객들께 “당신들, 힘을 내야 해요. 당신들의 힘이 필요해요”라는 말을 안 했더라. 물론 능동적인 관객 운동이 영 어색한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을 조금씩 움직이게끔 해야 하는 게 내 몫이다.

박배일_ 극장 활동가들이나 정책 입안자들 가운데 관객을 서비스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런 의미의 관객을 믿지 않는다. ‘극장의 힘은 관객’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국 극장을 돌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대부분의 관객은 수동적이고 영화 관람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며 자신이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객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극장을 지키거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극장을 만들고 싶어서 열의를 갖고 뭔가를 해보려는 이들도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예컨대 올해 초에 대전아트시네마를 처음 찾았다는 한 관객은 그 뒤로 계속 극장에 오고 있다고 하더라. 열렬한 시네필은 아니지만, 극장 공간이 사라질까 봐 불안하다고 하고. 또 어떤 관객은 “이런 극장이 잘 돼야 내가 영화를 볼 수 있다. 100명이 한 번 보는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할 테니 그쪽은 알아서 하게 놔두고, 한 명이 100번 보는 영화를 상영하는 이런 극장이 존재할 수 있게끔 관객을 더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동안 이처럼 능동적인 관객들과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었나 싶더라. 어떻게 해야 이분들을 계속 극장에 머물게 할지, 극장에서 자신만의 극장 경험과 역사를 쌓게 할지. 좀 더 수동적인 관객을 좀 더 능동적인 관객 쪽으로 가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게 된다.

박배일 ⓒ이영진

관객 스코어가 저조하다. 멀티플렉스 상영은 아예 하지 않았고 지역의 독립극장을 중심으로 상영하는 길을 택했다.

박배일_ 국도의 관객이던 내가 국도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니 성공했는데…. 스코어를 생각하면 이게 진짜 성공인가 싶다. (웃음)

정진아_ 우리가 스코어를 바란 건 아니니까. 물론 아쉽지만, 상영관 수와 상영 회차를 알고 있으니까 이 정도도 감사하다.

박배일_ 지금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주요 독립영화전용관을 택해 캠페인성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아도 개의치 않고 우리 할 일을 한다는 심정인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만날 <라스트 씬>를 검색해서 ‘오늘은 10명 들었네?’라고 하며…. (웃음) 대단한 스코어를 바라지 않았지만 (인터뷰 당시) 300명도 안 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정진아_ 그럼에도 나는 개봉 이후 직접 관객을 만나고, 그들의 변화를 보면서 조금씩 희망도 가져본다. <라스트 씬>이 부산에서 상영할 때마다 오셔서 질문하는 분이 있다. 심지어 ‘다큐 싶다’ 상영회 때도 오신다. 극장이 문을 닫기 직전 국도에 관심을 막 두기 시작했던 관객이었다. 그분이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움직여주실 줄 몰랐다. 이런 관객이 지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려면 내가 좀 더 재밌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문화협동조합 씨네포크(CINE FOLK)를 만들었다.

정진아_ 가장 큰 이유는 커뮤니티 시네마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실 국도가 문을 닫고 나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 쪽 관계자들이 부산의 영화 정책과 관련해 무슨 일만 있으면 “네가 와서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정말 듣기 싫었다. 심지어 그분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뜬구름 잡는 말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라. 극장 운영이 공간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국도에서 상영했을 법한 독립예술영화를 보려고 찾아보니 볼 수 있는 곳이 정말 아무 데도 없더라. 나처럼 적극적으로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조차 영화를 볼 수 없는 상태라니. 심각하더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움직였다. 극장 일을 하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게 공공재로서의 극장의 역할이었다. 개인 사업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긴 논의 끝에 협동조합 형태라면 이런 의미를 살릴 수 있겠더라. 씨네포크는 영화만이 아니라 미술, 연극 등 부산의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활동으로 가려고 영화문화협동조합이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움직여 올해 5월 31일에 출범식을 가졌다. 9월에 법인이 된 이후 첫 사업이 ‘라스트 씬 무브 무브’다. 나와 박배일 감독을 포함해 운영위원 11명으로 시작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라스트 씬>
<라스트 씬>

박배일 감독은 <소성리>까지 거듭해온 영화 미학적 시도를 이번만큼은 뒤로 미뤄둔 것 같다.

박배일_ <라스트 씬>이 마음만 앞서서 시작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나의 기획을 들고 현장에 간다. 물론 현장에서 만난 분들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분들이 나의 영화적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내 기획은 변화되고 접점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영화도 늘 하던 대로다. 영화적으로 뭔가를 새롭게 보여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영화에 나오는 분들이 평소 하던 일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럼에도 나를 잘 아는 분들은 이번 영화에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고, 그간의 내 영화와는 결이 너무 다르다고 하더라. 현장과 내가 상당히 밀착돼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국도를 사랑하는 오랜 관객인 내가, 국도가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그 상황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내가 영화를 만들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확인한 작업이다. 내게 작업할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영화의 결이 지금과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 현장을 담았다.

 

‘라스트 무브 무브’을 마치며 부산 반여동의 마을 주민들과 잔치를 열 계획이라고 들었다.

정진아_ 12월 27일에 부산 반여동 마을 주민 센터에서 <라스트 씬>을 상영하고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자리를 마련한다. 반여동은 내년에 도시 재생 작업에 들어간다. 이 마을은 부산 남포동 시장에 큰불이 났을 때 재해 피해자분들이 살 수 있게끔 집을 지으면서 형성됐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만 있고 시설이랄 게 없다. 국도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지켜봐 오신 도시 재생 관련 위원회의 어떤 분이 제안했다. 마을에 국도와 같은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모두를 위한 독립예술극장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는 이 마을에 필요한 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마을 주민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마을극장을 고민하는 단계까지 왔다. 내년에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려 한다. 27일에는 20분 정도의 축약본으로 <라스트 씬>을 상영하는데, 영화를 매개로 주민들과 첫 관계 맺는 자리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약간의 음식만 들고 오시면 된다. 연말 잔치를 함께하면 좋겠다.

박배일_ 결국 커뮤니티 시네마의 근본적인 힘은 마을에 있다. 마을 사람들의 요구와 씨네포크의 요구가 교집합 내지는 합집합을 만들어가야겠지. 마을 공동체와 함께 영화 보기를 통해 영화로 마을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려 한다. 시민사회 단체나 공간이 있는 마을만이 커뮤니티가 아니다. 커뮤니티를 더 넓게 상상해야만 한다.

<라스트 씬>

영화 정책이나 제도 면에서, 상영 활동가를 지원하고 관객의 자발성을 유도할 수 있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박배일_ 독립예술영화 정책을 보면 관객은 이미 있다고 생각하더라. (예컨대 극장 커뮤니티 활동을 하려는) 관객에게 직접 지원하거나 관객의 능동성을 이끄는 커뮤니티나 커뮤니티를 개발하는 활동가를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동시에 독립예술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관객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고 그 판을 넓히는 쪽으로 지원해야 한다. 극장 지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관객이 없는데 극장이나 제작자에게만 지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정진아_ 영화 정책에서 관객 지원이라고 하면 시설이나 장비 개선, 서비스 개선만을 말한다. 그런데 참 모순적이게도 개인이 운영하는 극장은 시설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항상 이 사이를 오가다 끝난다. 씨네포크는 관객이 직접 목소리 내고 요구하는 데 방점을 찍고자 한다. 극장이 없어졌을 때 제일 크게 손해 보는 건 관객 아닌가. 이미 그 손해가 발생했다. 이제는 관객이 움직여야 할 때다. 씨네포크가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가려 한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는 제대로 된 극장을 갖는 게 목표다. 열심히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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