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 부문에서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웰컴투X-월드>(연출 한태의, 2019)는 기묘한 동거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인 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시아버지는 한 집에 살며 대개 불편하고 가끔 애틋한 가족을 이룬다. 나는 어째서 엄마가 계속 할아버지와 사는지 궁금하다. 아빠는 오래전 돌아가셨고 엄마에게는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어떤 의무도 없는데, 엄마는 “내 인생 후회해”라며 눈물을 보이다가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 라면을 끓이러 간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집을 나가라고 통보하고, 갑작스럽게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엄마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시월드’를 탈출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아버지 곁에 남았다는 사실이다. 애초 감독은 엄마를 변화시키겠다는 계몽의 의지를 안고 카메라를 들었으나, 영화는 예상했던 바와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엔딩으로 나아간다. 이는 결국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간이자, 딸과 엄마를 고정된 관계에서 풀어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도록 확장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지한 탐구를 재기발랄하게 엮어낸 한태의 감독을 만났다.
엄마의 ‘기대주’였다가 ‘웬수’가 된 사연부터 이야기해보자. 어쩌다 3수 끝에 영상학과 진학을 결심했나.
흔히 이야기하는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뭐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고 공부도 꽤 잘했는데, 수능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재수를 결정하고 독서실에 다니며 입시 공부를 이어나갔다. 재수생에게 가장 큰 고비가 언제 찾아오는 줄 아나. 꽃 피는 5월이다. (웃음) 나도 심란해지더라. 책상 앞에 앉아서 인터넷 강의 동영상을 보다가, 문득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거지?’ 싶었다. 집과 독서실만 오가며 하루에 말 몇 마디를 안 하던 때였다.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지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한 기분이 들면서, 애초에 왜 그렇게 공부에 매달렸는지 의문스러워졌다. 한참 되짚어보니 엄마라는 답이 나왔다. 그동안 엄마가 바라는 대로 꿈꾸었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던 거다. 이대로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중에 엄마를 원망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건강하지 않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고 당장 밖에 나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에너지도 없었다. 심드렁하게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해서 봤는데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굉장히 인물에 이입했고, 심지어 나 자신을 돌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야단맞을 때도 머릿속으로는 딴청을 피우는 성격이거든. (웃음) 영화에서는 아무도 나를 혼내거나 가르치지 않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레 반성과 성찰을 경험한 거다. 내 자신의 변화를 들여다보고 신기해하는 동시에, ‘이거 되게 멋있는 일이구나’ 하며 영화에 푹 빠졌다. 영화 연출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정했지만, 엄마한테 말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엄마의 세상에서 나는 너무 중요하고 큰 존재인데, 그 기대에 어긋났을 때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엄두가 안 나더라. 결국 수능을 볼 때까지 말하지 못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다음에는 한동안 냉랭한 시기를 보냈다.
그때 봤던 영화는 무엇인가.
<파수꾼>(연출 윤성현, 2011).
이전까지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면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인데.
시간이 좀 지나서야 얼마나 특이한 경우인지 깨달았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즐겨 보지도 않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조차 안 봤을 정도다. (웃음) 인터넷에 무턱대고 10대, 학생, 청소년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는데, 이 파수꾼은 뭐지?’ 하며 클릭했다. (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볼 때 내 학창 시절이 많이 떠오르더라. 세 친구가 등장하지 않나. 과연 나는 저들 중 누구였을지 생각하며 끝까지 몰입해서 봤다.
영화에 재미를 느낀 순간, 곧장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점이 놀랍다. 직접 해보니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이던가.
촬영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웰컴투X-월드>를 시작하기 전, 학교에서 단편 극영화를 몇 편 만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막상 촬영장에 가면 예상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더라. (웃음) 어떻게든 그 안에서 합을 맞추어내는 과정이 재밌다.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현장에서 배우나 스태프와 이야기하다 보면, 혼자 머릿속에 그렸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에 편집은 정말 괴롭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싶어서 머리가 아프다. (웃음)

관계 맺기에 열려 있는 편이라고 해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풀어나가는 편인가.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명령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현장을 이끌고 싶지 않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경직된 곳에서 일했을 때 너무 싫었기 때문에, 내 현장에서 상하구조를 만들고 싶지 않더라. 연출은 결국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 위치 아닌가. 참여자 각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경험을 가져가기를 바란다. 비단 헤드 스태프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누구에게나 소속감은 필요하다. 내가 이곳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일에도 능동적으로 임할 수 있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고 북돋는 현장을 꾸리고 싶다. 물론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 뭔가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누군가는 나를 보며 “연출자가 너무 휘둘린다”고 하더라. 그 말은 못 참는다. (웃음) 소모적인 언쟁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과 감정에 귀 기울이는 거니까.
보통 촬영을 좋아하면 편집을 어려워하고, 편집을 좋아하면 현장을 버거워하더라. 이번 작품은 장편 데뷔작이자 첫 다큐멘터리이기도 한데 편집 과정은 어땠나.
사실 다큐멘터리에 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그때까지 내가 본 다큐멘터리라고는 TV에서 방영하는 <인간극장>이나 <다큐 3일> 같은 프로그램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주변에 조언을 구한 다음 촬영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보니 ‘나 왜 저랬지?’ 싶은 장면이 많더라. 상대는 한참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상한 농담을 한다거나, 조용히 들으면 될 것을 “아~ 그랬구나”하며 자꾸 끼어드는 거다. (웃음) 구성안을 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픽션이 아닌데 어떻게 구성안을 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하며 혼란스러웠고, 결국 무작정 촬영을 지속했다. 시간이 흘러서 구성안이 왜 필요한지 인지하고 나서는 한동안 좌절하기도 했다. 편집할 때 정말 피눈물이 나더라. (웃음) 그나마 틈틈이 촬영 소스를 봐두어서 다행이었다. 2개월 동안 1차 편집을 진행했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제출을 앞두고 2차 편집을 거쳐 완성했다.
영화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작년 크리스마스와 같은 과거 모습도 담겨 있다. 꽤 오래전부터 엄마와 보내는 일상을 기록해둔 듯하다.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주요 장면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촬영했고, 이 기간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찍다시피 했다. 과거 분량은 영화를 목적으로 촬영한 것이 아니라, 당시 액션캠을 새로 구입하고 신나서 찍었던 장면이다. (웃음) 한참 이것저것 찍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가족이 제일 편하다 보니 생각보다 촬영 소스가 많더라.
엄마는 아주 가깝고도 먼, 제일 든든한 조력자이자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한 존재다. 감독 입장에서 엄마는 어떤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나.
우리 엄마이지만 정말 귀엽다. (웃음) 특히 무언가를 좋아할 때 정말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처음에는 자기가 처한 환경을 노출한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피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을 드러냈다. 엄마가 어디서 얼마 주고 샀냐고 물으면, 나는 “엄마가 찍어볼래? 이거 진짜 재밌어” 하며 카메라를 손에 쥐여 주었다. 지금은 싫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나보다 더 카메라를 좋아하리라고 예상했다. 영화에 UCC 찍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초반에는 카메라를 들고만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태의야, 안쪽으로 더 들어가. 카메라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라면서 구도를 봐주더라. (웃음)
되게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 “태의야” 하고 부르는데도 관객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꼭 전해줘야겠다. (웃음) 워낙 카메라를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촬영 후반에는 카메라 앞에서 깜박하고 옷을 갈아입을 정도였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카메라가 있든 없든 엄마는 항상 솔직한 사람이다. 엄마를 영화에 담는 일은 조심스러운 동시에 여러모로 귀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여태껏 이만큼 정성스럽게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던 적이 있나 싶더라. 대화해도 늘 핸드폰 보면서 건성으로 대꾸하기 일쑤였으니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나와 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과의 관계와 그 안에서 야기되는 갈등 또한 드러난다. ‘이것까지 보여주어도 되나?’ 하며 망설인 적은 없나.
당연히 긴 고민이 필요했다. 누구도 자기 가족을 이유 없이 욕 먹이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 ‘영화에 담긴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것만 보고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다.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을 전부 빼고 편집한 적도 있다. 나는 맥락과 진심을 아는데,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면 서로에게 너무 상처일 것 같았다. 그때 함께 편집했던 친구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결국 한 장면이 아니라 전체 러닝타임 안에서 인물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좋은 모습만 모아서 보여준다고 인물을 설득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그럴수록 영화가 도리어 얄팍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일반 관객에게 이해 가능한 범위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럿에게 모니터링을 받으며 배치를 조정했다. 완성한 후에 출연자에게 동의와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물론 거쳤다. 그나마 엄마는 덜 쑥스러웠는데 할아버지는 정말 어렵더라. 문 앞에서 쭈뼛거리면서 “할 말이 있는데요, 할아버지 나오는 영화 보실래요?” 하며 다가갔다. (웃음)
영화에 사용한 음악도 재밌다. 엄마의 속마음이 궁금할 때는 ‘진실의 방’이라고 부르는 노래방에 가고,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트로트나 정체 모를 인도 음악이 삽입되기도 한다.
평소에 심심하면 FREE MUSIC ARCHIVE 사이트에 들어가서 음악을 듣는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쓰고 싶은 음악을 골라서 나름대로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면 “지진이 날 것 같은 상황”이라든가 “나 자신이 싫어질 때 듣고 싶은 노래” 같은 식이다. 그 인도 음악은 듣자마자 “할아버지 시퀀스”라고 입력해두었다. (웃음) 대부분은 상황에 맞춰 음악을 고르지만, 반대로 작업한 경우도 있다. 영화에 ‘I Hate My Mind’라는 곡이 삽입된 부분은 음악을 먼저 정하고 시퀀스를 만들어나갔다. 강한 비트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고, 영화에서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만 가득한 상황에 놓일 때 써보고 싶었다. 나는 사실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어하며 끊을까 봐 너무 무섭다. (웃음) 어떻게 하면 더 길게 관객을 붙잡아 둘지 고민했고, 음악과 편집 또한 “다음 장면까지 봐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추진력을 더하고자 노력했다.

출연자들은 영화를 보았나. 뭐라고 감상평을 남기던가.
엄마랑 이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고, 할머니는 서울독립영화제에 초대할 예정이다. 영화제에 앞서 엄마에게 제일 먼저 영화를 보여주었을 때가 기억난다. 한쪽 방에 영화를 틀어놓고, 나는 옆방에 들어가서 기다렸다. (웃음) 엄마가 영화를 보며 도통 웃지를 않아서 불안했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궁상맞게 볼까 걱정이야”라고 하더라. 나 역시 우리를 모르는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준 적은 없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부산에서 상영하고 엄마와 함께 GV를 했다. 관객들이 같이 웃고 격려하며 영화를 봐주시더라. 그때 영화가 완성된 느낌을 받았다. 행사를 마치고 엄마가 “나 너무 행복해”라고 말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웃음) 내가 엄마에게 뭔가 대단한 선물을 주고 또 받은 듯했다. 해외에 있는 오빠에게도 영화를 보내줬다. 오빠는 엄마를 닮아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혼자 삭이는 편이라,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면 어쩌나 싶었다. 얼마 후에 “잘 봤고 고생했다”는 답장이 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근데…”라는 메시지가 와서 놀랐는데, 영화에 나오는 빌라 이름과 비밀번호는 지우라고 이야기하더라. 혹시라도 나쁜 사람이 볼까 봐 걱정된다면서 말이다. 영화를 완성하고 여럿에게 피드백을 받았지만, 그런 부분을 짚어준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살피는 가족 덕분에 많은 힘을 얻는다. 가족이란 따로 떼어서 보면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사람들이지만, 함께할 때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공유하는 사이인 것 같다.
극 중 엄마가 미래에 관해 묻자 “난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거야”라고 답한다. 유명한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 같나.
요즘은 대중에 관해 많이 고민한다. 이따금 ‘아는 사람이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작품을 보러 극장에 왔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작품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감독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다음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결국 감독은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고 말하는 이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존재인 거다. <웰컴투X-월드>를 상영하고 관객과 만났을 때 정말 행복했다. 나와 내 가족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고 내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더라. 내게 그런 순간이 얼마나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오는지 경험하며, 어떻게 하면 좀 더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출자로서 본인이 지닌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회복력이 좋은 편이다. 하루에 열두 번 좌절하면 또 열두 번 극복한다. (웃음) 예전에는 들쑥날쑥한 감정 기복을 콤플렉스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바닥까지는 안 내려갈뿐더러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올라오더라. 차라리 심적으로 편안한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때때로 원치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상대가 불쾌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게 말해야 하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애원하며 설득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인가 보다.
맞다. 목표가 확실하다면, 과정 중에 벌어지는 일은 대개 감당할 만하다. 결국 중요한 건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을 움직이게끔 하는 거니까. 내 입장에서는 별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친구에게도 “나는 빌 수 있는데? 네가 너무 힘들면 내가 가서 빌어볼까?”라고 한 적도 있다. (웃음)
지금까지 어떤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나. 앞으로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도 듣고 싶다.
여태까지는 내 안에 머물렀던 것 같다. 내 가족, 내 연애, 내 친구 관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썼고, 캐릭터 또한 나와 비슷하거나 내 주변에 있는 인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적절한 시기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확 바뀌었다. 타인을 입체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데, <웰컴투X-월드>를 만들면서 사람이 얼마나 다면적이고 복잡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는 나를 벗어나서 좀 더 넓은 시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조만간 또 궁금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