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대학교가 ‘상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1970년대부터 학생들은 학교 재단이 저지르는 비리와 맞서 싸워왔다. 상지대학교가 감내한 오랜 투쟁의 중심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있다. 가족과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며 족벌 사학 체제를 구축했던 그는 결국 1993년 교육부 감사에서 부정입학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됐다. 이후 안정을 갖추던 학교는 한 차례 퇴출되었던 김문기의 복귀 시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09년부터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은 천막 농성에 돌입하고 시위를 진행했으나, 과거 재단 출신 인사들로 이사진이 재편되고 김문기는 2014년 총장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졸업하지 못하거나 혹은 졸업한 후에도 떠나지 못한 채 학교를 지키려 애썼다. 김문기가 총장에서 해임되고 ‘사학비리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리던 상지대가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박주환 감독은 긴 시간 동안 바로 그 투쟁의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다큐멘터리 <졸업>은 이와 같은 학내 투쟁의 맥락을 세세하게 정리하지는 않는다. 나쁜 사람이 벌인 나쁜 일보다 좋은 사람이 지켜낸 좋은 가치에 주목하겠다는 태도다. 학생들은 평범한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권력과 마주하면서도 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때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해냈다. 영화 속 투쟁은 이어달리기 경기처럼 펼쳐진다. 학생회장의 임기가 끝나면 다음 학생회장이 투쟁을 이어가고, 정의를 갈망하는 교수와 학생은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다독인다. 영화에는 총 4명의 학생회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승현, 윤명식, 전종완, 그리고 감독 자신이다. 이들은 배턴 터치하듯 역할을 이어낸 투쟁의 계주이자,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끈끈한 호흡을 맞춰낸 팀이다. 학교의 무분별한 징계와 폭력은 억울함과 분노를 자아내지만,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보다 더 큰 용기와 의지다.

박주환 감독은 애초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적 없이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기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는 것이 이유다. 덕분에 영화에는 연출자의 시선보다는 투쟁 당사자로서 느끼고 관찰해온 다양한 경험과 변화하는 감정이 풍성하게 드러난다. 감독을 포함하여 20대를 온전히 학교에 헌신했던 주인공들은 단지 김문기라는 인물과 싸운 것만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세상에 맞섰고, 다른 한편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속에서 그들 자신이 마주한 무력과 우울을 견뎌야 했다. 영화는 관찰자이자 참여자이며 기록자이자 행위자였던 감독을 통해 유동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고 겪은 투쟁을 새롭게 써 내려간다.
<졸업>은 특정 사학의 문제로 축소되지 않는다. 상지대 학생들은 비슷한 문제를 지닌 다른 학교와 연대하며, 감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가고 학교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다. 계속해서 연결되고 확장해나가는 싸움을 통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내는 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영화 후반부 촛불시위 현장에서 감독은 ‘이게 나라냐’라는 현수막이 붙은 트럭에 올라가 발언한다. 촛불로 밝힌 광화문 거리와 투쟁이 끝난 후 현재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설득해내는 것은, 결국 학교는 하나의 사회이며 학생은 학교의 구성원이자 사회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졸업>은 투쟁의 주축이었던 학생에게나 10년 만에 도착한 이야기를 마주할 관객에게나 자랑스럽게 기억될 만한 기록이다.

졸업 Graduation 제작 미디어나무 감독 박주환 출연 이승현, 윤명식, 전종완 외 배급 시네마달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14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19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