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보낼 수 없는
<오늘, 우리>
차한비 / Choice / 2019-11-02

네 편의 단편영화가 모여 <오늘, 우리>라는 장편 옴니버스로 개봉한다. 오늘과 우리라는 일상어의 조합은 영화의 첫인상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이 단어가 단순한 수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2-30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네 작품에서 마땅한 공통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상황과 입장이 다른 인물에게는 저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단숨에 해소하기 어려운 고민도 있다. 영화는 청춘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그들 각자가 지닌 무게를 오늘, 우리라는 넉넉한 둘레로 감싸 안는다.

<2박 3일>(연출 조은지, 2017)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조은지와 연극, 영화, 웹드라마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 중인 배우 정수지의 협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애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남자친구를 찾아간 지은(정수지)은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는다. 남자친구는 “이제 네가 싫어졌다”며 대화를 피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은은 그의 집에서 2박 3일 동안 머무른다. 영화는 지은의 뒤엉킨 감정을 다루는 데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동극다운 활기를 띠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

<5월 14일>(연출 부은주, 2018)은 연출자의 이야기꾼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극 중 5월 14일은 민정(이상희)의 생일이자 부처님 오신 날이며, 민정의 여동생이 결혼하는 날이다. 영화는 하루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을 날짜로 암시한 후에, 차분하게 인물의 뒤를 따라간다. 가족과 애인은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고 회사는 마감을 재촉하는 상황에서 민정은 혼자 낯선 도시를 헤맨다. 어느 역할에든 확실히 개성을 표현하는 배우 이상희가 섬세하고 안정적인 연기로 민정을 보여준다.

<2박 3일>
<5월 14일>

<환불>(연출 송예진, 2018)은 돌연 입사를 취소당한 수진(조민경)의 고단한 하루를 그려낸다. 당장 생활비가 막막해진 수진은 고시원 보증금을 내지 못해 캐리어에 짐을 챙겨 나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 가불을 요청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취업스터디 회비와 출근을 위해 장만한 정장을 환불받기로 결심한다. 데뷔작 <이월>(연출 김중현, 2017)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조민경은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지만 어디에도 편히 발붙이지 못하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낸다.

<대자보>(연출 곽은미, 2017)는 네 편의 영화 중 가장 형식적 실험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학교 게시판에 교수의 비리를 고발한 혜리(윤혜리)는 새로운 대자보를 쓰기로 한 날, 교수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는다. 핸드헬드로 촬영한 흑백 화면에는 긴박한 움직임과 불안한 정서가 고스란히 담기고, 배우들의 연기는 원테이크로 막힘없이 이어진다. 배우 윤혜리와 이민영은 각자 맡은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 상대와 호흡을 맞추며 함께 목소리를 내는 행위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연애와 취업에 실패하는가 하면, 행복과 정의를 고민하며 갈등하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자기 몫의 괴로움을 감당하느라 지친 이들의 하루가 온기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대가 없는 친절이나 농담 섞인 위로처럼 작지만 빛나는 순간이 자리한다. 덕분에 오늘의 우리는 마냥 어둡거나 씁쓸하지만은 않다. <오늘, 우리>는 창작자와 관객의 욕구가 맞물리며 시작한 프로젝트이자, 여전히 영화제와 소규모 상영회를 제외하면 접하기 어려운 단편영화의 배급활로를 고민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극 중 인물이 마주할 내일만큼이나 이 영화의 미래가 밝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환불>
<대자보>

 

오늘, 우리 Today, Together 제공 배준식 감독 조은지, 부은주, 송예진, 곽은미 출연 정수지, 이상희, 조민경, 윤혜리, 이민경 배급 필름다빈 상영시간 104분 등급 12세관람가 개봉 2019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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