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는 한진중공업 노동 운동사를 갈무리한 <그림자들의 섬>(2016)으로 주목받았던 김정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데뷔작 <버스를 타라>(2012)부터 노동을 주제로 작업을 지속해온 그는 2015년 가을, 부산도시철도 노동자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수많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을 사용자 입장이 아닌 노동자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영화는 ‘언더그라운드’라는 공간을 두 개의 축으로 재편하는데, 첫 번째는 청소노동자, 정비공, 관제실 직원 등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머무는 일터를 세분화하여 관찰함으로써, 영화는 노동의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노동환경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암시한다. 두 번째는 이른바 육체노동을 수행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를 세대별로 엮어내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공업고등학교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베테랑 기관사까지 등장인물은 저마다 다른 연령대로 노동조건에 차이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비슷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동시대인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위계가 존재하고, 무인화와 자동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서 인간의 노동은 점점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구체적으로 배경을 서술하거나 상황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를 무사히 ‘운행’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감내하는 오늘을 담는다. 그들은 일하고, 투쟁하고, 재교육을 받으며, 또한 계속 살아간다. 부산국제영화에서 <언더그라운드>를 처음 선보인 김정근 감독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신작을 만든 과정부터 부산에서 작업하는 ‘영화노동자’의 고민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언더그라운드>는 10월 12일 폐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비프메세나상은 와이드앵글 경쟁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중 최우수 작품에 주어진다.)
부산이 고향인 것으로 안다. 감독에게는 오랜 시간을 보낸 익숙한 도시이지만, 이맘때 풍경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부산에 왔고, 이후로는 떠나 본 적이 없다. 영화제가 열리는 시기에 도시는 평소와 사뭇 달라 보인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그런 분위기가 힘들 때도 있다. 북적이는 곳에 가면 기운이 빠지거든. 물론 영화제는 좋다. 내 영화를 상영할 때는 더욱 좋아하고. (웃음) 요즘은 설레고 재밌다.
부산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나.
어딜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지역에 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 살지 않았다면 한진중공업이나 부산도시철도와 같은 주제에 깊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지하철은 무인화나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먼저 대두된 공간이었고, 그 시기에 작품을 통해 논의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점은 뜻깊다. 반면에 주류 영화계나 비평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이슈로부터 일정 부분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때는 광화문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참여를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후 촛불집회 당시 김일란 감독이 제안하여 전국 단위의 옴니버스 영화 <광장>(2017)을 만들었고, 나는 <청소>라는 단편으로 촛불집회에서 가려진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기도 했다. 다만 지역에 거주하는 입장에서 메인 스트림에 필요한 이야기를 같이 만들거나 이슈를 따라가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시기가 늦어지기도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소재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니까.
더 많은 기회를 위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생각은 없었나.
첫 영화를 마치고 나서 잠시 생각해본 적은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거든. 그 무렵 부산에 있는 여러 영상단체와 만나기 시작했다. 소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아우르는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영상 활동을 하던 단체들과 교류하면서 조금씩 갈증을 해소했다.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살기가 싫기도 했다. 가끔 서울에 방문하면 진이 다 빠진 채로 내려왔다. 서울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문하다 보면, 솔직히 주저하게 되더라.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이곳이 편안하다. 특히 요즘에는 바다가 참 좋다. 원래 바다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웃음)
영화를 만들지 않을 때는 무얼 하며 지내나.
최근 수영에 푹 빠져 있다.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아침 일찍 수영장에 다녀왔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목표다. (웃음) 지금 영화제가 열리는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고, 사실 일을 정말 많이 한다. 노동조합에서 의뢰받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디자인 관련 아르바이트도 한다.
<그림자들의 섬>(2016)을 개봉했을 무렵부터 차기작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는 않고 최대한 여러 노동 분야를 보여주는 것이 애초 목표였다. 특정한 노동자가 캐릭터로 드러나는 구성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화면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랐다. 익명의 노동을 가만히 바라보게끔 만들고, 이를 통해 노동에 위계가 존재함을 자연스레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핵심이었다. 앞선 영화에서는 줄곧 쟁의 현장에 매달려오지 않았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나 힘들기도 했고, 그 과정을 거치며 노동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하게 됐다. 투쟁 현장에서만 노동 문제를 말할 수 있는 걸까? 실제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노동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집중했다. 사실 <언더그라운드>를 시작할 때는 집회 장면을 아예 넣지 않으려고 마음먹기도 했다. 집회나 투쟁 장면이 나오지 않는 노동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제일 컸고, 어느 정도는 이뤘다고 생각한다. (웃음)
인터뷰에 이름, 나이, 직위, 경력 등 정보를 기재하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인가.
개인으로 치환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전체 노동자 중에 비정규직이 60퍼센트를 넘어가는 상황 아닌가. 특정 직군으로 한정하여 이해하기보다는,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언더그라운드>는 전작과 여러모로 다르다. 예를 들면 <그림자들의 섬>은 오프닝부터 주인공을 조명하고 인터뷰로 관객을 집중시키지 않나. 이번 작품은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시퀀스가 어떻게 궤가 맞춰질지 지켜봐야 하더라.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강렬한 도입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툭 시작하기를 원했다. 오히려 노동영화가 아니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정했다.
졸업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그 장면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 찍은 사진이 이후 사원증을 만들 때 사용된다. 돌이켜보면 <그림자들의 섬>도 사진관에서 촬영하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당시 그 장면을 굳이 영화에 불러왔던 이유는, 사진이 갖는 의미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원증에 들어간 사진이 나중에 영정사진이 되기도 하는 등 여러 갈래로 의미를 달리하기에 나에게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영화에는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이 담긴다. 주요 촬영지는 어디였고, 어떻게 촬영을 설득하고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촬영 장소는 전 역사에 걸쳐 있는데, 영화에서는 넒은 공간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좌표를 찍듯 보여주면 영화에 담긴 시공간이 관객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리라 판단했기에, 오히려 공간성을 지우면서 노동의 사이클을 드러내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이나 관련 단체와 안면이 있는 편이라 접근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기획 당시 지하철노동조합 사무장과 대화를 했는데, 흔쾌히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주시더라. 사실 2016년이 부산지하철 개통 30주년인 해였고, 노동조합이나 지하철공사나 지난 역사를 갈무리하는 영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로서는 운 좋게 구색이 맞는 상황에 들어간 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조로 이야기하는 영화적 구성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정말 ‘쿨하게’ 해보라고 하셔서 의지가 많이 솟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간다는 식으로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좀 더 힘을 주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전작에서는 정규직의 반성에 가까운 심경을 간략하게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기득권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꼬집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촬영 기간에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함께 현장에 머물렀다. 거의 삼천 명 가까이 일하는 곳이기에, 내가 접하는 사람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만났고, 그 외에는 현장에서 섭외하는 방식이었다. 각 직렬(職列) 별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사전 인터뷰이만도 서른 명쯤 된다. 정규직 노동자를 만나고 나서 느낀 점은 말에 물기가 없다는 거였다. 안정된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대화에 계급적 고민이 묻어나지는 않더라. 그들 입장에서는 노동문제를 말하지 않아도 되고, 말한다 한들 일종의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정규직의 목소리를 최소화하고, 비정규직의 목소리로 영화를 채웠다.
영화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노동자를 직군별·세대별로 엮어낸다. 이와 같은 구성을 선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나.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아이들이 가진 고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작년 인터뷰에서는 “취직하면 머스탱 같은 좋은 차를 몰고 다닐 거다”라는 꿈에 부풀어 이야기하는데, 몇 달 사이에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더라. 자신 또한 비정규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고, 그 직장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걱정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20대 정비공은 정규직화를 앞둔 상태인데, 미래를 확신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시급이 약간 오르고 휴무를 보장받는 정도지, 사실상 무기 계약에 가깝다. 노년에 접어든 청소노동자를 마주할 때도 난처했다. 결코 훌륭한 직장이 아닌데 이곳을 너무 좋아하는 거다. 그분들은 정규직만 되면 정말 열심히 할 거라고 하신다. 지금도 열심히 일하시면서 말이다. 공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한데 모이기를 바랐고, 그렇게 뭉친 고민이 지하로 확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사실 나도 답을 모르겠다. 방송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은 영화를 보며 어떤 답을 기대하지 않나. 아무리 해결 방법을 고민해도 분명한 답을 제시하기 어렵더라.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의 톤은 우울하지 않지만, 극장을 나가서 곰곰이 돌이켜볼 때는 좀 우울했으면 좋겠다.
영화가 우울하지 않은 데는 청소노동자 역할이 크다. 확실히 다른 장면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정서적으로도 풍성한 화면이 담긴다.
나도 볼 때마다 좋다. 지금도 만나면 너무 행복하고 따뜻하다. 처음에는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고 카메라를 피하기도 했다. 계속 만나고 지켜보면서 차차 가까워졌다. 내가 자녀와 비슷한 나이다 보니 “밥은 먹고 다니냐”면서 다가와 주신 덕분이다. 영화제 앞두고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부적을 쓰셨다고 하더라. 진짜 부적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만드신 거다. (김정근 감독은 휴대폰을 열어 사진을 보여줬다. 작은 메모지에 손글씨로 “감독님 영화 꼭 꼭 대박 납니다!”라고 적혀 있다.) 기분이 무척 이상하더라. 등장인물 저마다 자신의 삶이 영화를 통해 조명된다는 점에 벅참을 느끼는 것 같다.
구성에 지민 감독이 참여했다. 주로 어떤 부분을 함께 논의했나.
누군가랑 같이 해본 적이 처음이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구조에 관해서 확신이 안 생기더라. 기존에는 투쟁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구성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편집 과정에서 초안을 잡고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지민 감독과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호흡이 꽤 잘 맞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제안했다. (웃음) 지민 감독은 전반적으로 인터뷰를 많이 보며 컷을 골라냈고, 내가 생각한 그림을 선명하게 만져주었다.
GV에서 관객 반응이 흥미롭더라. 부산에 살지 않거나 관련 이슈를 알지 못하는 관객은 영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부산 시민의 경우 영화가 친절하지 못하다며 아쉬워했다. 한 관객은 부산시장이 바뀐 것에 대한 설명이 누락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도를 밝히는 자막이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피드백이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누구인지,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 일부 정책이 달라지기는 하겠으나, 전체 노동을 이해하는 면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변화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 존재하는지 되묻다 보면 긍정하기 어렵더라. 한편, 영화에 담기는 노동이 실제와 다르게 읽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일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감상에 필수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여겼다. 근데 어떤 분이 “이 노동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고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시더라. 선택의 문제라고 보는데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친구들은 이 영화를 ‘예고편’이라고 말한다. 사실 영화에 나오는 부산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을 계속 촬영 중이다. 올해 11월에 취업하는데 졸업 이후 모습까지 담아서 다음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버스를 타라>와 <그림자들의 섬>이 묶이듯, 공교롭게도 <언더그라운드>와 차기작이 세트처럼 이어진다. (웃음) 영화 반응을 살펴보려고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누군가 그런 평을 써놨더라. <그림자들의 섬>이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면, <언더그라운드>는 현재와 조금의 미래를 담은 것 같다고. 10대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풍경이고, 미래에 노동이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