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문혜인)는 친절하지 않다. 길게 늘어선 광역 버스 대기 줄을 단번에 앞질러 가장 먼저 버스에 오른다. 사실 성희는 친절할 수 없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는 성희는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4대 보험 따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친 허리를 부여잡고 생활을 지속하는 건 철저히 성희의 몫이다. 물리치료비에 아직 남은 학자금 대출까지 해결하고 스페인 행의 꿈을 이루려면 일을 그만 둘 수 없다. 센터에 간청하여 얻어낸 자리는 현목(김준형)의 집. 고등학생 현목은 의식이 없는 중증장애인 엄마와 살고 있다. 활동이랄 게 없으니 실내에서 편하게 일할 것이라는 성희의 기대는 관심에 목마른 현목의 폭력적인 행동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혼자만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아 탈조선을 꿈꾸는 성희와 미성숙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하는 현목은 모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누구를 탓하기 어려운 상태로 둘은 반목과 우정의 시간을 번갈아 보낸다. <에듀케이션>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섣부른 연민과 분노가 아닌 성희와 현목의 대사와 행동이 쌓여 만드는 독특한 리듬으로 가득한 영화다. 단편 <더 헌트>(2016)에서 폐지 줍는 두 할머니의 싸움을 장르적 쾌감으로 그려낸 김덕중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김덕중 감독을 만났다.
실제 장애인 야학(‘노들장애인야학’)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 원래 인연이 있던 곳인가?
거기서 활동가로 일하던 대학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졸업 후에 4개월 정도 야학의 소식과 장애인 이슈를 다루는 영상취재기자로 일했다. 선배는 지금도 야학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인연을 이어왔다.
성희의 모습에 현재 한국의 20대가 처한 상황이 많이 녹아있다.
경쟁이 심해지고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나만의 안락한 공간에서 ‘소확행’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거기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마음 상태도 포함된다. 그걸 감안한다면 이 사람이 온순하거나 친절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며 터득한 삶의 자세니까. 물론 이런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 시대 청년을 대표하는 코드로 너무 많이 활용되는 면이 있어 조금 나태해 보일까 걱정도 된다.
초반에 현목이 성희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동안 활동보조인으로서 성희가 겪었을 많은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활동보조로 일할 때의 내 경험이 많이 투영됐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단둘이 집에 있을 때, 매뉴얼 상 원칙은 이용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지 않는 거다. 무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옆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는데 뭔가 마음이 안 좋은 거다. 내가 어쨌든 이 사람과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된 셈인데, 지금 그대로의 그 사람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으니까. 개선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반면에 이용자의 요구가 엄청 많을 때도 있다. 반찬을 해달라거나 청소를 해달라거나. 그 요구를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의 선택이 전부 활동보조인 개인의 의지에 맡겨진다. 일의 경계가 모호하다보니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모든 걸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문제 삼고 싶었다.


그런 이유에서 현목의 캐릭터가 정해진 것 같다. 젊은 여성 활동 보조인으로서 성희가 겪는 차별과 어려움의 요인을 이용자 개인에게서 찾으려 했다면 현목 같은 캐릭터는 나오지 못했을 거다.
사실 젠더적으로 보면 성희가 여성이기 때문에 소수자지만 미성년과 성인으로 보면 또 현목이 약자일 수 있다.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은 그렇게 갑을 관계로 단순히 따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런 얽힘의 상황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쪽의 권력이 확 올라가버리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을 더 느낄 새도 없이 개인을 향한 미움을 통해 해소해 버리고 끝나지 않을까. 현목을 단순히 악당으로 치부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현목 역을 맡은 김준형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그런 부분들을 신경 썼을 것 같다.
현목은 미성년 코드를 많이 가져가려 했다. 철이 없고 관심을 못 받아서 비뚤어지기 시작한 사람. 여성이 와서 행동이 조금 더 나간 지점들은 있지만 성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왔더라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거다. 현목은 조금 폭력적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치기 어린 장난을 칠 사람을 기다려온 아이다. 처음 배우 모집 공고를 냈을 땐 20대 중후반의 성인 연기자가 많이 왔다. 그런데 성인이 연기하면 권력 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 것 같더라. 성희 캐릭터가 체구도 작고 하니 도저히 현목의 집으로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다. 학교 동기가 아역 연기자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거긴 오히려 고등학생들이 몇 명 지원했더라. 그래서 추천 받아서 만났다.
장애인 야학에서 성희와 관계를 맺게 되는 은진도 복잡한 얽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둘의 관계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
성희 자체는 마이너리티 요소가 되게 많은데 야학에 오면 그보다 더 소외된 이들이 있지 않나. 성희가 야학에 가면 그래도 여기선 자기가 좀 더 낫다는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성희를 바라볼 때 연민이 가기도 한다. 그 연민의 시선이 은진을 통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또 현목의 집을 다루면서 아쉬움이 컸던 게 장애인 캐릭터를 주체적으로 그리지 못한 부분이었다. 현목 엄마가 캐릭터로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장애인이 영화에 등장하면 거의 성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족쇄가 된 채 구원만을 바라는 사람이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 양 극단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가 좋은 평범한 캐릭터가 한 명 있어서 성희와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장애인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던 캐릭터다.
은진 역을 맡은 신선해 배우는 연기를 원래 했던 분인가?
지금 연기를 활발히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예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성희 역을 맡은 문혜인 배우와 당시 함께 연기했다. 그래서 혜인 배우 통해서 소개를 받았다.
문혜인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혜영>(김용삼, 2017)이라는 단편을 봤다. 그 영화에서 혜인 배우가 맡은 역할의 대사가 세다. 남자친구와 다툴 때 욕설도 많고 날카롭다. 보통 센 역할을 맡으면 연기 톤이 과해지고 보기 힘겨울 때가 있는데 혜인 배우는 그렇지 않더라. 오히려 더 관심과 애정이 갔다. 이게 이 배우의 장점인 거 같았다. 성희도 빈 틈이 조금 있지만 센 모습의 자기를 상정하고 밀고 나가고자 하는 캐릭터여서 코드가 맞을 것 같았다. 사실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 그 영화를 봐서 쓰는 내내 혜인 배우를 떠올렸다. 제작 결정이 나자마자 스텝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락 드려 섭외했다. 혜인 배우가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작품 관련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조언에 따라 시나리오가 변경된 부분도 꽤 있다. 성희 캐릭터에 대해서는 혜인 배우를 완전히 믿고 갔다. 혜인 배우에게 고맙고 또 많이 미안하다. 워낙 열악한 현장이고 처음 장편을 찍다보니 배우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적이 많았다. 엔딩 장면을 찍을 때도 결국 배우들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결말이 관객들에게 갑작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제목과도 이어지는 얘긴데, 성희가 현목을 계속해서 밀쳐 내다가 마지막에 소위 참교육을 행한 거다. (웃음) 성희 자신에게도 일정의 균열이 생기는 셈인데 이를 뭐라고 표현할까 하다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 나 역시 그 감정을 이야기로 푸는 게 제일 어려웠다. 성희 캐릭터에 비춰볼 때 굉장히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게 엔딩으로서 울림을 충분히 줄 수 있을지 많이 고심했다.


사실 마지막에 대사를 조금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성희가 더 이상 현목의 집으로 활동보조 일을 하러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8월 한 달간의 시간이 흐른 셈인데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고 짧게 넘어간다.
그 대사를 놓치면 시간의 경과에 대한 감각이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현목은 일관된 캐릭터다. 계속 성희의 관심을 끌고자 했고 당신이 오지 않으면 다른 활동보조를 써서 대체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버린 나와 엄마의 삶이 어그러질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4년간의 우즈베키스탄 거주 경험이 있더라.
영화는 대학 때부터 계속 찍고 싶었다. 졸업 후에 아까 말한 장애인 언론 영상취재 일을 조금 하다가 연극 기획사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디액트 등에서 외부 강의를 듣고 한창 실습작도 찍던 중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시작하게 되면 다른 걸 경험할 기회가 없어질 것 같더라. 돈도 많이 까먹을 거고. 그래서 그 전에 이야깃거리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 봉사활동 과정으로 2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끝나고 현지사무소 관리직원을 채용한다고 해서 2년 더 있었다. 돌아와서 단편을 찍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올해 졸업 작품이었으니 영화를 완성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 게 있나?
이 영화에 계속 매여 있는 동안 암울했다.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몰라 불안하더라. 그래도 시나리오는 초고 하나를 썼다. 여고생이 주인공인데, 조금 발랄한 톤의 성장 이야기다. 여고생이 일련의 이별과 성인들이 보기엔 치기어린 사건들을 겪으며 조금 성장하는 장르의 이야기다. <에듀케이션>과 결이 꽤 다른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확고하게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해지지 않아서 더 다양한 걸 많이 시도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