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이병헌, 2019)과 <엑시트>(이상근, 2019)의 연이은 성공은 한국영화에서 코미디 장르의 상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독립영화에서 코미디는 아직 변방의 장르다. 여기 그러한 평가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젊은 영화인이 있다. 아니, 젊은 영화인 집단이 있다. <녹화중이야>(2015)로 처음 부산영화제에 초청됐던 때부터 함께 해온 박민국 감독과 ‘노가리 필름’의 배우들이 자전적인 영화 <노가리>를 들고 4년 만에 영화제를 찾았다.
투자가 거의 확정됐던 영화가 엎어지고 절망에 빠져 있던 박민국 감독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 전화 속 남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주도 해녀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 100억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다. <노가리>는 실제 배우들이 겪었던 사기 경험을 토대로 ‘90프로 사실에 근거’해 만든 영화다. 배우들이 모두 본인을 연기하고 카메라를 보고 직접 관객과 대화하면서 현실과 허구를 자유롭게 오간다. 분방한 형식, 진지한 고민, 그리고 생생한 활력! ‘노가리 필름’의 정체성이라는 배우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애정을 쏟아내는 감독의 말 속에서 ‘영화’의 꿈을 키워왔던 그들만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부산영화제에 4년 만에 다시 가게 됐다.
24살에 부산에 갔으니 정말 어릴 때 간 거였다. 실감이 안 났다. 박석영 감독님이 <스틸 플라워>(2015)로 부산에 오셨는데, <들꽃>(2014)에 이어 꽃 시리즈로 연달아 부산에 온 해였다. 함께 얘기 나누면서 나도 계속 오겠다고 그랬는데. (웃음) 우여곡절 끝에 오랜만에 부산에 다시 가게 됐다. 배우들도 그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많아 감회가 남다르다.
‘노가리 필름’이라는 박민국 사단의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 안에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을 프로필처럼 넣은 것도 그렇고 영화 내내 배우들을 향한 애정이 많이 느껴지더라.
시나리오 쓸 때 배우들에게 어떤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냐고 많이 물어봤다. 임지호 배우는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 때문에 연기를 시작했다기에 전쟁 시퀀스를 넣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오마주했다. 김혜연 배우는 본드걸의 느낌이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아 예전부터 그런 역할을 주고 싶었다. 사실 노가리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도, 노가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배우들 덕분이다. 난 이 친구들의 잠재력이 굉장하다고 본다. 원래는 지금 들어간 것보다 훨씬 다양한 연기 클립들을 넣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산으로 가더라. (웃음) 그래서 많이 뺐는데 그게 좀 아쉽다.
<노가리>는 “실화가 90프로”라고 소개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기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영화에서처럼 정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투자하고 싶다고. 자기가 서울로 올라가려면 한 달 이상 걸리니 제주도로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영화에서는 재규어로 나왔지만 검은색 벤츠를 타고 나타났다. 대략적인 내용은 영화에 나온 그대로다. 오히려 영화에 담지 못한 정말 기가 차는 일들이 많았다.
어떤 일이 또 있었나?
한 번은 배우들 다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오라더라. 갔더니 공항에 고급외제차가 데리러 나와서 정말 좋은 펜션으로 안내했다. 짐 풀고 밥집으로 오라기에 나가려고 하는데, 펜션 주인이 차 렌트비와 숙박비가 계산이 안 됐다고 하는 거다. 투자자한테 전화 하니 일단 계산하고 투자금 받으면 그걸로 나중에 처리하라고 하더라. 자기가 계산하면 모양이 빠진다며. 제주도에서 정말 돈 많이 썼다. 투자자니까 밥도 우리가 사야 할 거 같아서 좋은 데 가서 밥도 사고. 그리고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실제로 6.25 참전 용사들과 해녀들 만나서 인터뷰도 했다. 해녀 박물관도 가고. 그렇게 제주도를 많이 오가면서 비행기 값도 많이 들었다. 제작 여건 상 담지 못한 에피소드도 있다. 사기꾼을 붙잡아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영화에 나온 것과는 달리 비가 엄청 쏟아졌다. 그날 제주도에 태풍이 왔다. 그 사람한테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먹고 싶던 해물짬뽕을 포장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짬뽕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정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날아가 버렸다. 영화에 그 장면을 정말 담고 싶었는데 촬영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다. (웃음)
영화에서는 거의 투자가 결정됐던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절박한 상태에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실제로는 <고철들의 중심>을 다 완료하고 다음 작품으로 제작 중이던 <만남의 장소>의 추가 촬영을 기다리던 시점이었다. 주연을 맡았던 서진원 배우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곽경택, 김태훈, 2019)에 합류하면서 삭발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다시 길 때까지 기다리자 했는데 그 와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 <녹화중이야>로 부산에 초청된 이후에 몇 군데서 상업영화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상업영화 현장으로 바로 가는 게 조심스러워서 거절했다. 이 투자는 충무로 시스템도 아니고 시나리오만 써서 오면 바로 투자를 해준다기에 정말 100억 원짜리 독립영화 찍는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사실 주변에서도 다 걱정하며 말렸고 지금 이 얘기를 듣고 영화를 보는 분들도 당한 우리가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나 역시 바보 같지만 당시에는 정말 사기라고 믿기 어려웠다. 우리한테 돈을 먼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사실 뭐 하러 우리한테 사기를 치겠나?
언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나?
영화에 나온 대로다. 영화에서처럼 그날 밤에 바로 친구들이 내려온 건 아니었지만 다음 날 일어나보니 다 내려와 있었다. 같이 바다 보면서 술을 마시는데 이걸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바로 결정했다. 처음 시나리오는 지금 형식과는 달랐다. 쓰고 나니 좀 더 리얼하게 보이고 싶었다. <녹화중이야>에서도 카메라 보고 개그 치는 거에 관객들이 좋게 반응해 주셔서 그걸 도입해 본 거다. 김혜연 배우가 영화에 나온 것처럼 보조 작가로 조언을 많이 해주는데 이 아이디어도 혜연 배우가 얘기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청춘들의 활력이 느껴지는데, 촬영은 날것의 느낌과 상충되는 부드럽고 정제돼 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영화는 재밌고 웃기게,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우스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우리의 실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영화가 독립영화인에 대한 관객들의 인상을 결정지어 버리지 않을까 경계했다. 독립영화인들이 정말 치열하게 산다. 투 잡, 쓰리 잡 뛰면서 영화 찍는다. 좋은 차도, 좋은 옷도 사고 싶을 텐데 그렇게 열심히 모아서 영화에 다 날려버리지 않나. 근데 난 그 삶이 멋있다. 절박한 마음과 상황들이 이해가 되면서도 관객들이 우리들을 안쓰러워하지 않고 멋있게 볼 수 있도록 찍고 싶었다. 독립영화에서 핸드헬드를 많이 쓰는데 우린 촬영까지 그렇게 날것의 느낌으로 가긴 싫었다. 세련되게 가자고 얘기했다. 촬영감독을 한 친구가 장비 욕심이 많다.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장비 덕에 최대한 돈 많이 쓴 느낌으로 찍을 수 있었다.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멤버들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중학교 때 진짜 뚱뚱했다. 여자랑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옆 반에 소위 잘 나가는 선배가 연기를 했다. 나도 연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극장을 찾아갔다. 대학로에 살고 있었고 어머니도 안무가여서 공연장은 익숙했다. 중 3때 찾아갔는데 연출가가 연기하고 싶으면 20킬로를 빼고 오라는 거다. 방학 동안에 정말 다 빼고 다시 극단을 찾아갔다. 처음엔 무시하던 연출가도 넌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 극단에서 계속 연기를 하게 해줬다. 이번에 촬영을 맡은 정현우가 당시 그 극단에서 나랑 같이 연기했던 배우다. 그러다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갔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 김혜연, 최현우, 서진원 배우다.

스무 살 때 그 친구들과 직접 연극을 만들어 올렸다. 연극영화과에서는 보통 선배들과 담당 교수의 주도로 무대가 만들어지고 신입생은 무대에서의 역할이 적지 않나?
사실 난 중학교 때부터 극단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도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거의 극단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기했다. 게다가 재수를 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으니 당시 선배라고 있던 동갑내기 친구들을 인정할 수 있었겠나. 어린 나이기도 했고 워낙에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곳이다 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 결국 1학년 1학기 때 자퇴했다. 친한 친구들끼리는 맨날 수업 땡땡이 치고 노가리 까자며 밖으로 나다녔는데, 그래서 이름이 노가리가 된 거다. 서진원 배우 빼고는 나랑 같이 다 자퇴했다. 자퇴하자마자 우리끼리 연극을 올렸는데 그게 부산국제연극제에 초청을 받았다.
영화는 그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그 연극을 정현우 촬영감독하고도 함께 했는데, 자긴 영화가 너무 찍고 싶다고 해서 다 같이 돈을 모아 <지평선 끝에 서다>라는 장편을 찍었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가는 로드무비였다. 그때 영화과 출신은 아무도 없었다. 현우도 어깨 너머로 영화 작업을 배운 거였다. 그땐 현우가 연출하고, 나는 배우였다. 그러다 현우한테 영장이 날아왔다. 영화를 완성해야 하니 내가 감독을 맡았다. 그때는 유튜브 영상도 잘 없어서 구글 검색으로 영어 번역기 돌려가며 프리미어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1년 동안 고생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개봉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지만 지금 보면 또 어떻게 저런 용기를 냈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그 작품 끝내고부터 영화에 빠졌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서 <녹화중이야>까지 찍게 된 거다. 그러면서 한 명씩 ‘노가리 필름’ 멤버들도 늘어갔다. 이번 영화에 나오는 김진영 배우와의 인연이 정말 극적이다. 처음 만났을 때 진영 배우는 삼천포에서 연기가 하고 싶어 올라와 술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술집의 단골손님이었다. 1년 동안 계속 봤지만 서로 인사만 하고 별 관심은 없었다. <녹화중이야> 찍고 다음 영화 준비 때문에 필름메이커스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누가 제발 상담 좀 해달라고 올린 글이 있었다. 지방에서 연기가 하고 싶어 올라와 고시원 살면서 미친 듯이 일하며 번 돈으로 한 달에 100만원 내며 연기수업을 받고 있다더라. 그런데 성과는 잘 보이지 않고 나이는 20대 후반이 되어가면서 많이 힘들다는 글이었다. 나름 선배로서 댓글을 달았다. 전화가 와서 만났는데 그게 진영 배우였다. 이건 운명이다 싶어 우리 팀에 들어오라 해서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현재 <만남의 장소>가 완성되어 있는 상태다. <노가리>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이제야 완성됐다. 그런데 이게 다음 영화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고철들의 중심> 때도 그랬고 <만남의 장소>까지도 고집과 욕심을 많이 부렸다. 그러면서 계속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왜 이렇게 영화가 안 나올까 하소연하곤 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러더라. 사람들이 너를 왜 좋아하는 거 같냐고. 넌 되게 재밌다고, 너랑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되게 웃기다고 말하는데 그걸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웃음) 지금은 내 영화로 사람들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힘든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잠깐 그 고통을 잊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노가리>도 그래서 코믹한 느낌으로 갔고 에필로그 영상 보면 알겠지만 촬영 현장도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당분간은 밝은 느낌의 영화를 더 찍을 것 같다.
이병헌 감독이나 이번에 함께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우리 마을>의 고봉수 감독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겠다.
두 감독 모두 정말 좋아한다. 이번 영화 스크리닝 때 후배가 고봉수 감독 영화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감독님들과 스타일이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그렇게 사람을 웃기면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사실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