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자영(최희서)은 어느 날 문득 시험 준비를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그 앞에 ‘달리는 여자’ 현주(안지혜)가 나타난다. 운동의 활력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의 세계를 알려준 현주를 따라, 자영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아워 바디>는 운동과 몸에 대한 화두에 현실의 불안과 욕망, 타인의 시선, 세상의 잣대와 기준 등을 엮어내며 자영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달리기를 만난 자영은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복잡한 마음과 복잡한 세상의 한가운데, 영화는 오직 자신의 몸이 세계의 전부가 된 듯이 스스로를 느껴보는 자영을 바라본다. <아워 바디>는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에 초청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국내 관객을 만났다. 영화의 출발로부터 2년, 떨리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린다는 한가람 감독과 배우 최희서를 만났다.
개봉을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고, 최희서 배우의 결혼 소식도 들려왔다. 축하한다. <아워 바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관객들을 처음 만났고 ‘올해의 배우상’도 받았다. 적지 않은 관객을 만나고 다양한 반응도 들었을 텐데, 극장 개봉은 또 다른 경험일 것 같다.
한가람_ 일단 긴장이 된다. <아워 바디>는 아카데미에서 만든 작품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과 동기에서 시작한 영화라서, 만들 때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 넣었다. 그런데 영화제를 다니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도 많이 만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 됐다. 그게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솔직하게 접근했던 만큼 관객들의 반응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최희서_ 감사하다. 드디어 개봉하는구나 싶다. 개봉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영화들도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토론토와 부산에서의 관객 반응이 달랐다. 한국 관객들이 더 재밌게 느끼고 공감하신 부분도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이해가 안 간다는 솔직한 반응도 있었다. 그래서 개봉하면 또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 궁금하고 조금은 두렵다. 이건 이준익 감독님께 배운 건데, 어쨌든 영화는 처음부터 자기만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영화의 존재를 알리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질문을 기다리는 시기인 것 같다. 최희서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흥미롭더라. <동주>(2015) 개봉을 기다리던 최희서 배우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프로필을 두고 왔고, 그걸 발견해 간직하고 있던 한가람 감독이 2년 후에 연락해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최희서_ 그때 테이블에 정말 감독님 노트북이 있었다. 그게 제일 신기하다. (웃음) 노트북 화면에 ‘장례난민’이라는 제목과 한가람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박열>(2017) 개봉하고 7월 말 즈음 연락이 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한가람이라고 합니다” 하시는데, 오래전에 봤던 그 이름이 스쳐 지나가면서 왠지 누군지 알 것 같더라.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웃음) 그렇게 시나리오를 받아서 그날 바로 읽었다.
한가람_ 그때는 단편 촬영도 하기 전이었다. <장례난민>(2017)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고, 그 영화를 끝낸 후에 <아워 바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장편 과정을 준비하면 배우 프로필을 많이 보게 되고 마음에 들면 가지고 있게 된다. 캐스팅하면서 최희서 배우의 이미지가 영화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기들이 많이 반대했다. 너무 유명해져서 안 할 것 같다면서 코웃음을 쳤다. (웃음) 그래서 6개월 정도는 아예 연락할 생각을 안 했다. 그래도 최후의 순간에는 결국 하게 되더라. 전화하길 잘했다.
마침내 만나보니 어떻던가.
최희서_ 미팅을 하러 갈 때 이미 마음먹었다. 감독님이 이상한 사람만 아니면 하려고 했다. (웃음) 만나보니 나이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했다. 감독님이 설명을 조곤조곤 잘하시거든. 피디님도 여자인데 그분의 서글서글한 느낌도 좋았고, 그 자리에 거의 여자만 있었다. 조감독도 나랑 동갑이고. 그래서 미팅이 감독님을 중심으로 친숙하고 즐겁게 진행됐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들이라 더 좋았다.
한가람_ 나도 좋았다. 일단 말이 잘 통했다. 최희서 배우가 가고 나서 조감독이 나와 최희서 배우가 비슷한 것 같다고 하더라.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거의 도플갱어라고 봐도 되지 않느냐고. (웃음) 시나리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해주었다.

<아워 바디>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마주하는 자영의 어느 시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두 사람은 각자 삶의 어떤 시기에 이 영화를 만났나.
한가람_ 우선은 내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했던 고민을 정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운동과 몸이라는 소재에서 시작했지만, 그 시기에 취업이 안 되고 시험에 떨어지면서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들을 많이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사실은 앞날이 창창한 거니까, 이 영화를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길 바라면서. 극 중에서 자영이 31살인데, 내가 그 나이를 지나오고 더 나이가 들면서는 자영이 되게 어리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영화를 다 만들고 나면 확실히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고민이 많아서 영화를 만든 거고 그게 그렇게 쉽게 정리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2년이 지나 지금 시점에 다시 영화를 보니 거리감도 좀 생기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최희서_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10년은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 힘들 때는 10년을 하고도 안 풀리면 아주 깨끗하게 그만해야지 싶기도 했고. <아워 바디>는 나에게 데뷔 10년이 되어 첫 타이틀롤로 개봉하게 된 영화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개인적으로는, 내가 여태까지 잘 해왔고 또 예전에 했던 작품에서 배운 것들이 기록되는 느낌도…. 갑자기 눈물이 난다.
한가람_ 그러니까 힘들어서 우는 것 같잖아. (웃음)
최희서_ 내가 요즘 이런다. (웃음) 그러니까 여태까지 내가 해온 것, 배운 것을 다 적용해 연기하고 뜻 맞는 사람들이랑 영화를 만들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다. 나중에 40대, 50대 배우가 돼도 30대의 난 <아워 바디>라는 작품을 했었지, 하고 아주 좋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분이 자영의 상태 자체에 공감해주신다. 지금까지 역사물이나 일본 캐릭터처럼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와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사람들 삶에 녹아들 수 있는, 정말 옆집에 살 것 같은 자영이를 연기한 것도 참 좋았다.
감독으로서 이 이야기를 처음 떠올리고 배우로서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특히 어느 부분이 시작점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유독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있다면.
한가람_ 20대 후반에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푹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만약 영화를 하지 않았다면 계속 빠져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시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처음에는 ‘운동 중독이 된 여자’에 관한 영화 어떠냐고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그런데 다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 그걸 아카데미에 가서 발전시켜보고 싶었다. 처음엔 밝은 이야기로 시작했고 그것만으로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답하는 과정에서, 내가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연민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 이유에서 다시 출발해봤다. 친구들에게 왜 갑자기 운동하게 됐는지를 많이 물어보기도 했고. 우리가 치열하게 입시와 취업 준비를 하지만 막상 취업해도 만족을 주는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운동을 통해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이야기가 지금의 방향대로 만들어졌다.
최희서_ 일단은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성장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는 영화가 드물다고 생각해서 그 변화과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엔딩이 꽤 충격적인 거다. 되게 독특한 영화인 것 같아서, 그래서 또 하고 싶기도 했다. 명쾌하고 명료한 대답을 주는 영화였다면 “한 번 해보지 뭐” 싶었을 텐데, 뭔가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같이’ 해보는 게 되는 거다. 나도 이 영화가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한가람_ 촬영하기 전에 많은 얘기를 했다. 만나서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뜯어보기도 했고, 궁금한 게 생기면 전화가 오더라. (웃음) 자영은 우리에게 편히 이해될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엄마나 친구와의 관계 같은 것들이 다 우리가 겪는 일이다 보니까. 그런 일상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자영에게 생기는 변화가 중요하지만, 영화가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구조를 취하진 않는다. 사소한 습관이나 반복되는 일상의 배치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과정은 어땠나.
한가람_ 현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여자가 있고 운동이 탈출구가 된다는 게 큰 줄기였다. 그리고 그 세계로 인도해주는 다른 여자가 있는데, 주인공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 있더라는 거였지. 자영의 구체적인 배경을 만든 다음부터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쭉 썼다. 나는 시나리오를 많이 써본 적도 없고 이게 상업 영화 시나리오도 아니다 보니까 구조적으로 분석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다른 분들이 봐주시니까, 그럴 때 이 시나리오의 매력에 대해 말해주시더라. 메인 플롯이 있으면 보통 서브플롯이 그 밑으로 전개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 둘이 바뀐다고, 처음엔 운동하는 게 메인 플롯처럼 보였는데 나중엔 회사 생활이 더 커지면서 그게 뒤집어지는 데 이 시나리오의 매력이 있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서는 운동과 회사 생활을 따로따로 정리해봤다. 그리고 다양하게 배치를 해보고서 마지막에는 자영의 감정만 따라가며 정리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어떻게 자영이라는 캐릭터의 디테일을 쌓아나갔나.
최희서_ 이미 완성된 몸의 활기찬 자영을 보여주는 것이 이 과정의 다이내믹에선 가장 쉬운 단계였다. 가장 어려웠던 단계는, 내가 만약 8년 동안 고시 공부에 옭매어서 살았다면 어떤 눈빛을 갖고 있을지, 나의 하루에 가장 기쁨을 주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거였다. 일과 중에 가장 하기 싫은 게 무엇이고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거다. 편집되긴 했지만 공부하다가 컴퓨터 게임 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리고 자영이 뭘 먹는지. 라면 끓여 먹거나 편의점에서 맥주나 소시지를 사 오는 그런 작은 디테일을 만들어나가는 재미와 어려움이 있었다. (웃음) 감정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몸이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했다. 영화를 진행하며 몸을 만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놓은 몸에서 복대와 옷, 자세, 눈빛으로 초반부의 자영을 표현해야 했다. 그렇게 이미 나중의 자영을 알고 준비가 된 상태에서 예전의 자영으로 돌아가는 것이 까다로웠다.
영화 초반부의 자영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어딘가 공허해 보이지만, 성실한 면도 있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다. 캐릭터의 그런 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어려운 일 같다. 인물의 결핍을 과장해서 보여주고 부각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조율은 어떻게 했나.
한가람_ <아워 바디> 시나리오를 굉장히 빨리 썼다. 다시는 어떤 이야기도 이렇게 빨리 쓸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때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이야기였고, 또 자영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나한테서 갖고 온 부분, 친구들한테서 갖고 온 부분이 많다. 자영의 동생을 만든 것도 내 경험을 넣고 싶어서였다. 나도 언니가 있거든.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눈에 띄는 다른 장애물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으니까. 그것이 이미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최희서_ 자영을 볼 때, 정말로 옆집 애를 찍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우리가 이 여성의 불행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거나 연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이미 서로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도를 공유하는 게 중요했다. 예를 들어 분장으로 다크서클을 좀 그릴 수도 있고 입술을 더 트게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더라. 나도 그런 현실적인 연기를 하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몸과 얼굴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다. 마치 자영이 현주를 처음 만나고 충격을 느낀 것처럼 계속해서 인물들을 마주 대하는 느낌이 든다.
한가람_ 이 영화가 설명을 많이 하진 않는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려주거나 자영이 자기 마음을 솔직히 얘기하지도 않고 현주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사람들을 관찰하는 자영의 표정이고, 거기서 나타나는 섬세한 감정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보거나 달리고 있는 자영의 얼굴은 반드시 들어와야 했다. 표정이 풍부한 배우가 자영을 연기하길 바랐는데 최희서 배우가 그걸 굉장히 잘해줬다. 또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 누가 누구를 봤고 그때 뭘 느꼈는지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몸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길 원했다. 운동을 통해 이렇게 달라지고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몸의 근육을 섬세하게 찍거나 화면에 꽉 찰 정도로 존재감 있게 몸을 찍으려고 했다. 촬영감독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며 촬영했다.

사람들이 각자 떠올리는 ‘건강한 몸’은 다양할 것이다. 특히 건강한 여성의 몸을 생각할 때, 영화에 나오는 등의 근육은 많이 조명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자영의 몸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한가람_ 운동을 열심히 하는 다른 여성들, 친구들이나 언니를 봤을 때 생활체육만으로 그렇게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달리기나 수영 같은 운동만으로도 몸이 만들어지더라. 누군가 등 근육이 있는 자기 뒷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린 걸 봤는데,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트레이너에게 이야기했고, 거기 맞춰서 훈련했다.
최희서_ 나도 예전에는 등 근육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 자영이 자신의 복근을 보고 난 다음에 거울로 등을 보며 근육을 확인하지 않나. 현주의 사진을 보며 전에는 없던 욕망이 생긴 건데, 내가 요즘에 그런다. 운동하고 나면 등을 본다. (웃음) 얼마 전에 셀프 웨딩 촬영을 했다. 작가 없이 남자친구랑 둘이서 찍었는데, 내가 계속 등을 찍으라고 하고 있더라. 나도 자영이나 현주가 된 거지.
운동하는 장면들이 그 자체로 흥미롭다. 처음 운동을 시작해서 힘들어하는 지친 모습, 막 재미를 깨닫고 활력을 느끼는 모습, 회사생활이 힘든데도 습관처럼 뛰는 모습이 모두 나온다.
한가람_ 평범한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영이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부분은 나도 겪어본 일인데,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자영은 처음부터 밖에서 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중요했다. 나는 처음엔 헬스장에서만 뛰었거든. 그러고 나서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운동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온다. 그 궁금증에서 이 영화가 출발하기도 했고. 자영이 야근해도, 동생이 말려도 운동을 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나도 겨울밤에 갑자기 뛰고 싶어서 운동하고는 감기에 걸린다든지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거나 채워보는 단계가 있었나.
한가람_ 나의 답변이 있긴 하지만 영화에선 덜 표현하려고 했다. 그건 나의 답변인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다른 답변이 있을 것 같다.
최희서_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편하기도 했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도 했다. 참 신기한 촬영 현장이었다. (웃음) 달리기를 못 할 때와 잘할 때의 변주가 중요해서 감독님이 섭외한 코치님께 프로들의 자세를 배웠다. 다리를 움직인다기보다 골반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서, 종아리가 아니라 허벅지부터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체를 덜 움직이면서 뛰어야 효율적으로 뛸 수 있더라. 그걸 배운 다음에는, 초반엔 그것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뛰면 되는구나 싶어서 연구도 좀 하며 뛰는 모습을 만들었다.
자영에겐 완벽하게만 보이지만 현주 또한 현실적인 고민을 안은 인물이다. 극 중에선 소설가를 꿈꾸기도 하는데, 현주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
한가람_ 많은 사람이 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건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 현주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현주에게는 운동 이전에 자기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소설을 쓰는 거였다. <아워 바디>에 나의 가치관이 들어있듯 현주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세계에 관한 생각을 글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걸 누군가 봐주길 원했을 테고. 운동해서도 돌파되지 않았던, 결국 죽음에까지 이른 그 심정이 글에는 들어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설을 직접 쓸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설명을 적게 한다는 취지에서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최희서_ 내 취향이긴 한데, 난 가끔 현주가 쓴 소설의 내용이 들어갔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영이 현주를 보듯이, 누군가를 동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이걸 동성애로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있었다. 만들 때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듣고 보니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결국에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 사람이랑 자고 싶다”는 게 아니어도 사랑일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보면 어떤 면에서 자영이는 현주를 굉장히 사랑했던 것 같고,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을 참 알지 못했다고 하는 걸 나중에 알게 되면서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한가람_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데에는 종교적인 느낌이 있다. 전도하려고 하지 않나. 현주가 자영을 봤을 때도 그런 심정이라고 생각했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제시해주는 사람인 거지. 자영도 그걸 믿게 되고 현주를 따라가게 됐지만, 그 유토피아에만 집중하다 보니 현주라는 사람 자체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다.
최희서_ 현주의 죽음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시고 허망함을 많이 느끼기도 하시는데, 배우로서도 지혜 배우 없이 혼자 뛰게 되고 혼자 등장하면서 느끼는 큰 허전함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는 뭉뚱그려서 느꼈던 자영의 혼돈이나 외로움도 실질적으로 장면 안에서 겪다 보니 훨씬 크게 느껴졌고.
아까 시선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아워 바디>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을까.
한가람_ 다들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것 같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특히 완전히 남이 아니라 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몸을 가꾸는 것도 더 열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자영을 비롯한 모두를 답답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진 않지만, 자영이 거기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가 엄마를 따라 집에 가지 않는 거였다.

자영의 주변 인물 중 동생인 화영의 등장이 흥미롭다. <장례난민>을 함께 했던 이재인 배우가 연기하기도 하고, 두 편 모두 주인공에게 여동생이 있다.
한가람_ 내게 언니가 있다 보니 그 관계를 쓰는 게 재미있다. 형제지간에는 많은 감정이 오고 가지 않나. 때로 부러울 때도 있고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웃음) 또 자매는 옷도 같이 입고 목욕탕도 같이 가는 정말 가까이에 있는 관계이다 보니, 자영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최희서_ 나는 남동생이 있는데, 참 다른 것 같다. 내 친구는 옷을 살 때 항상 언니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고 하더라. 언니가 골라주거나 언니 말을 무시하고 샀다가 혼나기도 한다는 얘길 들으면, 그게 상상이 잘 안 된다. 만약 내게 언니가 있거나 여동생이 있었으면 조금은 다른 자영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의아하게 여기는 반응도 있다.
한가람_ 개봉을 준비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자영의 답답한 현실이 잘 느껴졌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현실의 문제가 해소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 촬영하면서는 답을 내리기보다는 자영의 에너지를 더 보여주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만약에 달리기를 해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취업이 안 되고 뭐가 안 돼도 건강하니까 잘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이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렇게 매달리는 심정이 중요했던 거지 그게 어떻게 풀리는지에 답을 하는 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래서 결말이 열려있는 느낌이 나는 것 같고.
그럼 이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나.
최희서_ 세 번째 챕터가 시작하며 끝나는 느낌이지.
한가람_ 맞다. 나도 자영이 다른 챕터로 넘어가는 데서 끝난다고 생각한다.
최희서_ 이제 저 여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궁금증을 남기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어떤 면에서 <아워 바디>는 성공이나 돈 같은 목적 없이도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계속해도 되는지 묻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사람 다 영화를 만들고 연기를 해오면서 비슷한 질문을 견디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한가람_ 듣고 보니 그런 고민은 계속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포기해야 하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돈을 버는 걸 목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찍는 게 더 쉬운 동기가 된다. 물론 걱정도 되고 고민도 계속되지만.
최희서_ 최근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왜 남의 눈을 신경 쓰면서, 결혼이나 내 현 상태를 숨기거나 부정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워 바디>라는 작품을 찍고 한가람 감독님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까 더욱, 그런 일들을 더 이상 걱정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답게 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 하는 건 결국 나인 거니까. 이 영화가 그런 계기가 된 것 같다.
한가람_ 반성이 된다. (웃음) 그런 잣대를 신경 쓰지 말자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는 아직도 신경 쓰고 있구나. 어려운 문제 같다.
개봉하고 그 호흡에 맞춰 시간을 보내다보면 가을이 더 깊어질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한가람_ 일단 관객분들을 만나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리고 슬슬 다른 얘기를 구상해보려고 하고 있다.
최희서_ 나도 다음 작품으로 10월을 시작할 것 같고, 연말 혹은 연초에 시작할 것 같은 작품이 있는 그런 상태다. 계획은 그냥 계속 일하는 거지. 그리고 옆에서 감독님 빨리 쓰라고 재촉하는 거. (웃음)
세 번째 챕터가 시작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살아가는 거네.
최희서 _ 진짜 인생은 오래달리기다.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