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편견을 넘어
<동물, 원> 왕민철
글 김선명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19-09-08

동물원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야생동물을 안전한 철창 안에 가두고 마음껏 감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정원이다. 동물원의 태생적인 한계는 따라서 명확하다. 그러나 생태학적 동물원을 지향하며 더 넓고 쾌적한 동물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동물원을 넘어서 “야생 동물 보호 구역”을 지정하여 최대한 동물들에게 방해가 안 되는 방식의 관람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많다. 동물원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휴식과 교육의 기능을 넘어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할 수 있는 종 보존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기후도 맞지 않는 타 지역의 희귀한 야생동물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구조되거나 사는 동식물만 데리고 있는 방식을 미래 청사진으로 그리고 있다.

한국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 동물원이 1909년에 개원했으니 우리나라도 벌써 100년이 넘는 동물원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우후죽순 생겨난 지역의 소규모 동물원들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동물들의 처참한 사육 환경에 분노하는 동물원 폐지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단순히 폐지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80년대에 생겨난 지역의 동물원들도 어느새 30년이 넘는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보낸 역사를 품고 있으며, 그동안 그 안에서 태어나고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은 이미 야생으로 돌아갈 능력을 잃었다. 여기, 이야기의 힘을 믿고 동물원 안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려는 영화가 있다. 사라져가는 것에 왠지 마음이 간다는 왕민철 감독은 1997년 개원한 청주동물원의 내부로 우리를 안내한다.

<동물, 원>에 담긴 청주동물원의 뒷모습은 대중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사육사와 동물들의 밝은 일상도,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몰래 카메라에 잡힌 비참한 동물들도 아니다. 탄생과 죽음이 모두 동물원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동물들을 보살피면서, 동물원이 자연과 단절되지 않고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물, 원>에 등장하는 사육사와 수의사들은 지역 공공 동물원의 열악한 사정을 인정하지만, 그런 동물원 안에서도 당장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망가진 서식지에서 살아갈 수 없는 지역의 동물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동물원에 쉼표 하나를 찍은 영화 <동물, 원>은 왕민철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로 지난해 DMZ국제다큐영화제 ‘젊은 기러기’상과 올해 서울환경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청주동물원을 오랜 기간 촬영했다. 동물원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독일에 공부하러 10년 넘게 나가 있다가 2012년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정말 많이 변했더라. 왕십리에 오래 살았는데 거기도 내가 알던 동네가 사라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호스피스 병동을 다룬 <목숨>(이창재, 2014)의 조감독으로 일했는데, 그 탓도 있다. 그러다 청주 시립 미술관과 함께 하는 공연기획 일을 하게 돼서 청주에 자주 갔다. 지방도시에는 옛 건물이나 거리가 더 많이 남아 있더라. 청주동물원도 오래된 곳이었는데 그곳이 10년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리서치 차원에서 표 끊고 들어가 몇 개월을 찍었다. 청주에서 했던 공연기획은 예전 무성영화를 일렉트로닉 라이브 연주와 함께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미술관 쪽에서 예전 영상만 틀지 말고 청주의 뭔가를 촬영해서 틀어보자고 제안했다. 찍고 있던 동물원 소스가 있었기에 그걸 30분 정도의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했다. 라이브 연주와 함께 상영하는 방식이라서 지금 완성된 영화보다는 컷 길이도 길고 대사보다는 사운드 자체로 활용될 수 있는 소리들을 주로 담았다.

<동물, 원>

동물원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고 하면 비판적인 시각에서 동물원의 안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육사와 수의사 분들도 처음에는 그런 이유로 경계하지 않았나?

청주동물원은 지역 방송국에서 굉장히 촬영을 많이 한다. 그런 데서 촬영하는 내용은 예를 들어 새끼를 낳았을 때 찾아와 <TV 동물농장>처럼 동물을 의인화하여 호의적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분들은 그런 촬영에 익숙해 있다. 다른 극단으로 환경단체에서 몰래 촬영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난 그 두 방식 모두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개인적으로 촬영을 요청한다면 후자를 떠올리기 쉽겠지. 그런 조심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표 끊어서 촬영하며 기회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시립 미술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수락해 동물원 영상을 만들기로 한 거다. 아무래도 같은 관을 통해 부탁하면 동물원 쪽에서도 인터뷰 허락을 해줄 것 같았다. 실제로 그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동물원 내부를 촬영하며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가 김정호 수의사가 막 중간관리직인 팀장으로 승진했을 때였다. 그 스스로가 동물원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고 개선 방향을 고민하며 환경단체와도 계속 접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장편 작업을 허락해줬던 것 같다. 이게 단순히 감춰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던 거다. 물론 이런 설득도 했다. 이거 만들어도 얼마 안 본다고. (웃음)

 

영화 시작하자마자 김정호 수의사와 신용묵 수의사가 동물원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쏟아낸다. 그런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가볍고 경쾌하다. 그 톤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즐거운 날 되게 슬픈 곳을 가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일종의 트라우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얘기를 나눠보면 어릴 때 가보고는 그 뒤로 동물원에 안 간 사람이 많더라. 지금도 이 영화를 봐달라고 권하면 자기는 비참한 동물이 90분 동안 나오는 영화는 못 보겠다며 일단 꺼린다. 사실 그런 건 나도 보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 만들 때 어쨌든 이야기적으로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웃으면서 볼 수 있게. 그런다고 거기 깔린 주제가 결코 가벼워지는 건 아니니까. 우리나라 다큐멘터리가 많은 부분 액티비즘 전통 아래 있지만 사실 나는 다큐멘터리에서 기록보다는 영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어떤 주제의식이 앞서기보다는 이야기를 지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동물권 운동을 계속 해왔던 사람도 아니고, 외국의 사례나 전문가 의견을 담아서 더 확장하는 방식은 사실 저널리즘의 영역이지 않나. 좀 더 작은 얘기, 동물원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가 담기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가지면 애정을 품고, 애정을 품게 됐을 때 변화를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게 이야기의 힘이라 생각한다. 그 단계를 다 뛰어넘어서 바로 변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운동이다.

ⓒ이영진

촬영한 소스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큰 틀에서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에피소드 몇 개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전체 이야기를 구성해야 했기 때문에 좀 복잡했다. 따지고 보면 겨울이다가 갑자기 여름으로 넘어가는 부분들이 꽤 있다. 대안이 없더라. 거기가 숲이라 중립적인 계절감이 드는 쇼트가 거의 없었다. 눈 딱 감고 넘어갔다. 동물원에서 동물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전체 이야기 안에 녹아들면 그런 건 사소한 부분이라 여겼다. 다큐멘터리에 극적인 음악을 쓴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꽤 있었다. 난 그렇지 않다. 다큐멘터리도 이야기니까 재밌어야지.

 

기타리스트 레인보우99가 음악에 참여했다.

미술관과 함께 했던 무성영화 상영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됐다. 레인보우99가 2018년 1월부터 1년 동안 월간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떤 장소에 가서 작곡부터 연주, 녹음까지 한 번에 마무리하는 계획이었다. 2017년 말에 만났을 때 그 얘기를 꺼내기에 그럼 같이 해보자 해서 영상과 사진 기록 담당으로 함께 했다. 함께 촬영 컨셉을 정하고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그 사이에 <동물,원> 음악 작업을 부탁한 거다. 레퍼런스로 준 것 중에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음악이 있다. 슬픈데 쿵짝 쿵짝 거리는. 그런 분위기를 원했다.

 

이야기의 방향이 중간에 한 번 틀어졌다고 들었다.

다큐멘터리가 이야기 전체를 계획하고 갈 순 없겠지만 최소한의 구상은 있어야 하니까. 플랜 A가 김정호 수의사가 진행했던 삵 복원 프로젝트 과정을 중심 이야기로 삼는 거였다.  삵 복원을 위해 인공수정 실험을 하고 성공하면 새끼 개체들을 청주 근처 하천에 방사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 사람도 인공수정으로 임신하는 게 어렵지 않나. 1, 2년 안에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게다가 동물원은 연구기관도 아니니까 거기에 계속 매달릴 수는 없었다.

<동물, 원>
<동물, 원>

결국 촬영 끝날 때까지 성공하지 못한 거였나?

그렇다. 지금은 그 프로젝트를 중단한 상태다. 그보다는 영화에서 직지(표범)가 살던 사육사를 넓힌 것 같이 동물원 안에 내재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물원 안의 개체들을 위해서는 그게 더 좋은 일이기도 하고. 촬영 팀 빠지고 나서는 스라소니사 확장공사도 했더라. 이런 것도 있다. 웅담 때문에 농장에서 사육하는 걸로 알려져 문제가 됐던 사육 곰들을 시민단체에서 모금을 통해 구입하는 방식으로 구출한다. 그런데 구출해도 둘 데가 없으니 청주동물원에 위탁해서 키우고 있다. 그 곰 사육사도 확장 공사를 하거나 시민자원봉사를 통해 우리 안에 해먹을 달아주는 방식으로 거주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 동물권이나 환경운동 쪽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굉장히 이상적인 목표를 상정하는 게 많다. 현실적으로 보면 동물원 안에서 당장 해줄 수 있는 급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걸 이 동물원이 해가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고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꼈다.

 

청주동물원이 규모에 비해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선정도 되고 주변에 응급의료센터 같은 인프라도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지역마다 그 정도 인프라는 다 있을 거다. 그런데 서로 연계가 잘 안 되는 거지. 김정호 수의사 개인이 열심히 하는 부분이 있다. 다 작은 기관이니까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주고 받다보면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 개인의 노력에 의지하고 있는 건데, 사실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서 누가 오더라도 연계가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구성을 수정하여 동물원 안에서의 동물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이야기로 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정작 초롱이(물범)가 탄생하는 순간은 화면에 담지 않았다.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물도 엄청 불편할 거다. 자기 새끼 낳는데 누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사람이 죽는 순간을 직접 카메라로 담아야 죽음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영진

동물의 탄생과 죽음을 관음증적으로 담기보다는 동물의 생과 사 모두에 동물원이라는 기관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 느낌이다. 초롱이도 탄생 장면보다는 탄생 직후에 동물원 사람들이 돌아가며 지켜보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고, 박람이(호랑이)가 죽는 순간에도 주변에 동물원 사람들이 다 가서 함께 있지 않나.

사실 야생동물이면 죽거나 태어나는 순간을 아무도 안 지켜보겠지. 근데 동물원의 특성 자체가 동물의 삶과 죽음을 옆에서 밀접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거다. 그래서 동물들을 화면에 담는 것만큼이나 동물원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했다. 사실 한 단계만 더 들어가 생각하면 당연한 건데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많은 개체가 거기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는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동물들을 야생동물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걸까? 바깥 서식지가 좋아질 때를 대비해서 잠시 동물들을 데리고 있는 공간으로 동물원의 미래를 생각하지만, 한국의 자연환경이 그 정도로 좋아질 것 같진 않다. 게다가 호랑이 같은 경우엔 아마 영원히 동물원 밖으로 못 나가겠지. 지리산에서 반달곰 복원사업을 진행했는데 사업이 잘 돼서 지금은 지리산이 꽉 찼다. 더 지나면 이제 곰들이 슬슬 민가로 내려오고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르다. 그럼 언제 시기를 정해서 곰 사냥을 허용할지도 모르지. 그 기준이라는 게 어쨌든 인간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져야 하고 야생동물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해도, 10년에 한번이라도 호랑이가 내려와 애를 잡아간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한계 지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지금은 그 자체가 너무 먼 얘기긴 하지만. (웃음)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박람이가 죽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중간 중간 구성도 바뀌면서 사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촬영을 해왔던 건데, 언제 이걸 끝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나?

일단 DMZ에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완성 시점을 거기에 맞췄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들어갈 내용들을 계획해 놓고 있었다. 초롱이가 광주로 간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걸 찍었고, 영화에 담기진 않았지만 삵도 많은 개체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정이 있어서 그 장면을 찍었다. 사실 박람이는 예정에 없었다. 호랑이 에피소드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영화에 쓸 걸 염두에 두고 촬영한 적이 없다. 거의 촬영 막바지에 박람이가 안 좋아져서 내일 병원에 가는데 살아 돌아올지 모르겠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준비해 촬영한 거다. 촬영하고 나서 이걸 영화에 넣어야겠다 싶어 과거 촬영 장면들에서 우연히 잠깐씩 잡힌 것들을 끌어다 급히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실 박람이 얘기가 그래서 느슨하다. 너무 슬픔이 강조되는 것 같아 넣을지 말지 고민한 적도 있는데, 영화에도 등장한 박람이 100일 잔치 푸티지를 발견해서 그걸 믿고 넣기로 했다. 그 푸티지가 정말 좋았다. 앞쪽이 조금 비더라도 그 푸티지면 얘기가 될 것 같더라.

<동물, 원>
<동물, 원>

왜 호랑이는 영화에 포함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 동물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동물 아닌가?

호랑이가 되게 예민하다. 카메라 들고 가면 너무 싫어하고. 동물원에서 일하는 분들도 사실 촬영에 거부감이 있는 분은 다 배제된 거다. 호랑이도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해도 거부감이 크니 굳이 가서 찍지 않았다.

 

동물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들만 모아서 연결한 마지막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그때까지는 관객인 우리가 그들을 바라봤다면 그 순간에는 시선의 구도가 역전된다.

기본적으로 엔딩을 두 가지로 생각했다. 다른 엔딩은 동물들이 없는 빈 우리만 모아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동물들의 시선을 보는 게 의외로 임팩트가 있더라. 특히 마지막에 직지가 내려다보는 눈은 정말 대단하다. 사실 동물들이 눈을 잘 안 마주친다. 특히 맹수들은 눈을 마주치면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카메라를 적당한 위치에 두고 뒤돌아 있거나 다른 데 가 있을 때 우연히 잡힌 장면들이 대다수다. 직지 장면이 찍혔을 때도 조그만 모니터로 찍힌 걸 확인만 하고 넘어갔고 편집할 때도 그 정도 임팩트는 못 느꼈는데, 처음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 큰 스크린을 통해 본 직지의 표정이 정말 좋았다.

 

긴 기간 촬영하면서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냈을 것 같다. 영화에 담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가 있다면?

시립동물원이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분들이 2년씩 거쳐 가는 공무원인 경우가 대다수다. 신용묵 수의사는 굉장히 오랫동안 시청의 축산, 방역 쪽에서 일했다. 지방 시의 축산, 방역이라고 하면 많은 업무가 사실 살처분 일이다. 그런 게 되게 아이러니하더라.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살리기 위해 애쓰던 사람이 다른 곳에 가면 동물들을 떼로 죽이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분은 영화 찍고 얼마 안 있다가 다시 축산과로 갔다. 김정호 수의사는 탄원서를 써서 동물원에 남게 됐는데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시청 공무원들은 동물원을 한직처럼 잠깐 쉬다 가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축산과가 엄청 힘들거든. 물론 지금은 공무원이 그 일을 직접 하진 않지만, 매년 구제역 발생하면 한 명씩 죽는 거 뉴스에 나오지 않았나. 그러니 인력수급 환경이 동물원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인 거다. 그런 문제들을 얘기하고 싶었고 인터뷰에도 담았는데 사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에서 넣기가 애매했다. 그게 많이 아쉽다. 그리고 이건 아쉽다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따로 전제를 깔아야 할 것 같은 부분인데, 이게 동물원에 관한 영화지 않나. 사실 근데 동물원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를 보고 요즘 한창 문제 되고 있는 실내 체험형 동물원들까지 포괄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더라. 내가 이 영화에서 얘기하는 동물원은 어디까지나 공공동물원이다.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윤을 위해 돌아가는 동물원을 말하는 건 아니다. 공공동물원으로서의 기능, 할 수 있는 것들과 미래 비전을 얘기한 건데 어떤 분들은 영화를 보고 그럼 그런 민간 동물원까지 다 좋다는 거냐고 물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 영화가 어떤 틀 안에서 얘기되는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동물, 원>
<동물, 원>

독일에서는 영화를 전공했나?

맞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고 3때 영화과에 진학하고자 했는데 그러려면 문과로 전과를 해야 하더라. 3학년 때 그렇게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이과 성적이 더 잘 나왔기 때문에 다들 말렸다. 그래서 결국 대학은 금속공학과로 진학했다. 전공 공부는 안 하고 영화 동아리만 열심히 했다. 그러다 첫 취직을 하면서 당시 한창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라 그런 쪽의 영상 디자인 일을 했다. 도중에 당시 여자 친구였던 부인이 출판 쪽으로 유명한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결혼하고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은 학비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그렇게 고생할 줄은 몰랐다. 1년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재수까지 한 뒤에 결국 쾰른 영화학교에 합격했다. 쾰른은 극영화와 다큐의 구분이 조금 느슨하다. 전인교육을 시킨다고 할까? 과가 영화과와 미디어아트 딱 두 개 뿐인데, 첫 2년 동안은 둘을 모두 배운다.

 

그럼 언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정한 건가?

사실 독일에서 극영화를 찍는 건 어려움이 많다. 세미나나 수업을 하면 독일 배우들과 의사소통은 되는데 뉘앙스 전달이 잘 안 되더라. 그러니 연출이 어려웠다. 근데 다큐는 바로 앞에서 인터랙션을 주고받기보다 먼저 찍고 나서 후작업을 하며 만들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더 접근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

 

첫 연출작인데, 앞으로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나?

생각해보면 항상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시작 지점에서는 실험적인 것들, 명확한 의미 전달이 아닌 이미지적인 것들을 생각하며 들어간다. 근데 만들다 보면 결국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촬영 때보다 편집 과정에서 더. 결국 그 사이 어딘가에 작업들이 놓이게 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양 극단의 작업을 오가고 싶다. 한 번은 정말 실험적이고 이미지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고, 또 한 번은 넷플릭스에 나오는 시리즈 다큐멘터리처럼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로 기능하는 다큐를 해보고 싶다. 근데 쉽진 않겠지. 사실 차기작이 두 개 있었는데 다 엎어졌다. (웃음)

ⓒ이영진

어떤 작업들이었나?

하나는 지금은 돌아가신 어느 화가 분 얘기였다. 1920년대 생이신데, 그분 할아버님이 괴산에 소수면이라는 지역의 유명한 거부였다. 독립운동 자금 대면서 아버지 대까지 재산을 다 깎아먹었다. 해방 됐을 때 이분은 18, 19세였고 동네 학교 선생을 하다가 서울대 법대 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에 다녔다. 수재였지. 그러면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피해 북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군사교육을 받고 6.25 직전에 내려와 게릴라 활동을 한 거다. 빨치산으로도 활동하고. 그러다 전쟁 중에 붙잡혀 20년 넘게 남한에서 복역했다. 풀리고 나서도 20년가량 보호감찰을 받고. 그때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그림을 그린 거다. 아마추어지 사실. 근데 그림이 정말 좋다. 그림의 주제가 대략 3개인데, 하나가 집 앞에 있는 굉장히 일그러진 나무 세 그루. 그리고 빨치산 때의 기억. 나머지 하나가 수감생활의 기억이다. 미술관에서 지역 작가 발굴 프로그램으로 집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그분의 그림들을 꺼내와 전시를 했다. 그 과정을 찍으면서 그분의 일상을 함께 담고 편집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유가족 분들이 허락을 안 해주시더라. 아무래도 민감한 거지. 그게 큰 틀에서는 나무에 관한 얘기를 찍으려던 거였고 엎어진 다른 작업도 괴산초등학교에 있는 천년 된 은행나무에서 시작했다. 나무와 학교, 그리고 아이들을 섞어서 담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아까 말한 화가분 전시할 때 함께 전시했던 다른 화백의 그림 중에도 그 은행나무가 있다. 그분이 괴산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었고. 그래서 그걸 느슨한 얼개로 엮어보려 했는데, 이번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줬다. 불특정 다수한테 아이들이 노출될 테니 학부모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무 얘기를 해줘서 생각났는데, 영화에서 보면 하나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정 가운데에 나무가 한 그루 있는 동물원 내부의 풍경이다.

사실 그런 장소를 몇 군데 촬영해 뒀다.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동물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아닌 여러 장소들을 계절별로, 날씨별로, 사람 없을 때와 있을 때 모두 다 찍어놨었다. 그걸 반복적으로 쓰고 싶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인서트 컷처럼. 계절의 흐름을 표현하거나 그걸 물고 다른 장소나 이야기로 전환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근데 잘 안 되더라.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언급한 그 세 컷의 인서트다. 오즈 야스지로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웃음) 일본의 다큐멘터리를 찾아본 적은 없는데,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같은 일본 고전 영화감독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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