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상
<동물,원>
차한비 / Choice / 2019-09-07

때로는 그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질문이 시작된다. <동물, 원>(왕민철, 2019)은 가능한 한 여러 위치에서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답을 찾는 일에 서두르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고발하는 극적인 순간은 없지만, 영화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분주하고도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리듬은 영화에 담긴 ‘일상’의 힘 덕분이다. <동물, 원>은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따라감으로써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직업을 선택한 동기부터 전문 분야와 경력까지 모두 다르지만, 수의사와 사육사는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가장 가깝게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따라서 동물원의 방향과 존재 이유에 관해 누구보다 끈질기게 되물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 앉은 박영식 사육사는 “동물이 좋아요”라며 웃는다. 사육사와 수의사의 일상에는 청소, 사육, 번식, 진료, 수술, 연구, 방사, 안락사 등 여러 가지 일이 포함되는데,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동물 똥 치우는 일”이라며 놀리거나 “불쌍하게 가둬두고 괴롭힌다”고 비난한다. 그때마다 박 사육사는 웃어넘긴다.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라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그들은 동물과 만나는 과정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을 부르며, 아이처럼 보살핀다. 자신이 맡은 동물이 제때 밥을 먹지 않으면 속상하고, 관람객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화가 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고민한다. 일을 경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고민도 점점 자라난다. 열정적이고 선량한 직업인으로서 책임을 갖고 일에 매진하지만, 동물을 착취하거나 해칠 의도가 없음에도 필연적으로 그와 같은 구조 속에 놓인다. 결국 새들은 방사형 그물 안에서만 비행하며, 하루에 100km 이상 이동하는 호랑이는 여전히 좁은 우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태생부터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출발한 공간이다. 신용묵 수의사는 “동물을 위해서는 필요 없다”고 말하며 김정호 수의사는 “하루라도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철저히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된 동물원은 동물에게 결코 편안하거나 행복한 공간일 수 없다. 동물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에 시달린다. 그러나 현재 동물원에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러 동물이 존재하고, 동물원은 사라져가는 동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과제를 도맡고 있기도 하다.

진솔하고 정성 어린 인터뷰와 동물원 안과 밖의 자연 풍경이 교차하며, 영화에는 동물원이 지닌 딜레마가 고스란히 담긴다. 영화 속 청주동물원은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어 먼 훗날 방사를 목표로 하는 곳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먼 훗날이란 생태계가 회복되어 모든 동물이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의미한다. 영화는 동물원의 현재에서 과거를 읽고 미래를 상상하며, 점차 근본적인 물음으로 관객을 이끈다. 인간과 동물은 함께 살 수 있을까? 인간이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동물원에 사는 전시동물과 야생동물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을까? 영화는 ‘인간됨’의 조건을 탐구함으로써 동물권부터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왕민철 감독의 데뷔작인 <동물, 원>은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젊은 기러기 상을,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26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동물원 안의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가오는 9월 5일 극장 개봉하여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동물, 원 Garden, Zoological 제작 케플러49 오디오비주얼 감독 왕민철 출연 김정호, 전은구, 장상기, 신용묵, 권혁범, 박영식, 김혜민, 강인수 외 배급 ㈜시네마달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97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19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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