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 딸의 카메라
DMZ Docs 2019 강유가람 & 장윤미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19-09-04

카메라를 든 ‘나’는 아버지가 궁금하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나와 다른 아버지는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래서 아버지를 촬영하고 그의 생각을 듣는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건, 아버지라는 개인에게 지속해서 영향을 주었던 한국사회의 모순적 역사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으로는 전부 규정할 수 없는 각자의 기억과 복잡한 감정이 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까지 다시 돌아오는 질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앞두고, 역대 수상작들을 돌아보았다. 그중에서 <모래>의 강유가람 감독과 <공사의 희로애락>의 장윤미 감독에게 ‘아버지’와 ‘나’, ‘카메라’와 ‘한국 사회’를 가운데 두고 함께 대화하자고 청했다. 아버지를 통해 <모래>는 한국의 부동산 신화와 가족주의를 <공사의 희로애락>은 노동의 시간과 노동자의 마음을 탐구하고 영화에 담는다. 아직 더웠던 어느 오후, 카페에서 만난 이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고 하니 각자가 열심히 필기해 온 노트와 종이를 주섬주섬 꺼낸다. 그 광경에 한바탕 웃고는 곧 진지하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이 궁금하다. ‘신나는 다큐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던데.

장윤미_ 내가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를 그 모임에서 상영했다. 그 전에 <모래>도 봤고 강유가람 감독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난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져 오고 있다. 신작이 나오면 챙겨보기도 하고.

강유가람_ 그때 상영한 영화가 장윤미 감독의 첫 장편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영화가 좋아서 계속 눈여겨보게 되었고, 나도 그 이후로 작품이 나오면 계속 챙겨보고 있다. (웃음)

 

<모래>와 <공사의 희로애락>은 각각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제3회, 제10회 한국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수상은 어떤 경험이었나.

장윤미_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도 막상 받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계속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다. 물론 상금을 받은 것도 좋았다. (웃음) 고양이를 구조하는 데 돈을 썼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똑같이 챙겨드릴 수 있었다.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인정해주시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네가 뭘 하고 있긴 하구나” 하고.

강유가람_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게 첫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은 거라 정말 어안이 벙벙하더라.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처음 만든 작업이 상을 받아서 그 이후로는 나도 걱정을 좀 덜 수 있었다. <모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봄 프로젝트 이외에는 다른 제작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상금으로 제작비를 정산했고 부모님께도 드릴 수 있었다.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앞으로 더 좋은 작업을 계속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었지.

<모래>
<공사의 희로애락>

두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했을 때, 서로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나 영화들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떠올려보았을 것 같다.

장윤미_ 나는 이번이 <모래>를 세 번째 본 거다. 이 영화의 몇 장면은 계속 생각나곤 한다. 전에 좋았던 이미지들은 다시 봐도 여전히 좋더라. 어머니의 발을 찍은 장면이나 설명회 끝나고 부모님이 집에 와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 내가 단편들로 가족 구성원을 각각 다루며 하고 싶었던 걸 한 편에 다 풍부하게 녹여냈구나 싶었다. 아버지에 대한 느낌과 어머니에 대한 느낌이 다르고 가족 전체에 대한 느낌이 또 다르지 않나.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내 삶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난 그런 걸 여러 편에 걸쳐서 작업해왔는데 이번에 <모래>를 다시 보니 그것들이 한데 다 들어 있는 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웃음) 그게 차이점이면서도 비슷한 점이 아닐까.

강유가람_ 왜 이번에 같이 보자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좀 더 몰입해서 영화를 보고 왔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생계부양자로서의 무게를 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들이 가진 심리적 무게감, 그들의 삶을 같이 보게 됐다. 애잔한 느낌도 들었고. 나도 촬영하면서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아버지가 속내를 보이기도 하셨지만, <공사의 희로애락>에서 아버지가 내보이시는 감정의 결은 그보다 더 깊다고 느꼈다. 나는 거기까진 못 갔던 것 같고. 아버지가 전화로 우울함이나 삶에 대한 감정을 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더라. 또 한국 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가치가 은근히 폄하되는 지점들도 아버지의 삶 속에서 잘 녹아 나오는 것 같다.

장윤미_ 아버지들이 건설 노동을 하셨던 것으로도 묶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너무 한 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대화를 하기 보단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모래> 같은 경우는 좀 더 여성주의적 고민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태원>에서도 느꼈지만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맞나?

 

아버지가 필름 슬라이드를 집안에 비추며 사진을 보는 장면은 독특하다.

강유가람_ 아버지가 중동에 갔다 오시고서 필름 슬라이드를 취미로 가지고 계셨다. 영화를 만들 때 멘토링을 해주신 분이 문정현 감독인데, 그게 중요한 무언가가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걸 영화에서 잘 살려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대한 원형 같은 사진이고 추억이 담겨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면 다른 사진들도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나 효과를 동일하게 내볼까 싶더라. 사진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만들고 그걸 다시 영사해서 찍는 귀찮은 과정이었다. (웃음) 사진은 출연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그걸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줄 좋은 매개다. <공사의 희로애락>을 보면서도 자랑스러웠던 기억이나 성실성에 대한 당신의 기준을 얘기하실 때 아버지의 표정과 목소리 톤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장윤미_ 나도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뺐다. 여기선 과거의 모습은 안 보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해서.

강유가람_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공사의 희로애락>
<모래>

두 영화는 ‘거리’와 ‘호기심’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된다. 아버지와 딸 사이엔 어떤 거리가 있고, 영화는 그 거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답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건 그 시기에 감독 자신이 갖고 있던 고민과도 연관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아버지나 가족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장윤미_ 일단 노동 문제에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당시엔 건설 노동자들의 산재도 많았고 기사를 찾아보면서 계속 정리도 했다. 처음엔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작업하고 싶었다. 노동자의 삶에 관심이 있었던 거다. 그러다 결국 방향이 바뀌어서 아버지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영향이 컸다. 난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거나 서로 무관심하거나, 그런 관계의 반복이었는데,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애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럴 때 슬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를 들고 하는 작업으로 좀 노력해보자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핑계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 같다.

강유가람_ 나는 그때가 나가 살다가 돈 때문에 부모님 집에 다시 들어갔던 시기였다. 독립하고 싶고 집을 벗어나고 싶은데, 집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거지. 어머니는 밤에 출근하셨고 동생은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내가 밤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기도 하다 보니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또 우리 집이 오랫동안 대출이자에 시달려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집에 같이 있으니까 그게 피부로 느껴지더라. 그러면서 그런 문제들을 영화로 풀어보게 된 것 같다. 아버지가 왜 저렇게까지 보수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나의 독립과 주거 문제에 대해서.

장윤미_ 나도 아버지와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결국은 다 뺐다. 되게 보수적인 분이라 그때 당시에 박근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웃음)

강유가람 ⓒ이영진
장윤미 ⓒ이영진

그렇게 많은 면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카메라로 찍고 영화에 담을 때의 고민이 있을 것 같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될 테고.

장윤미_ 살면서 꿈에 아버지가 나온 적이 없는데 이 작업하는 내내 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스트레스도 받고 힘들었다. (웃음) 그리고 한 사람을 안다는 것도, 친해지거나 덜 미워하게 되는 것조차도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처음에 편집을 구상하면서는 아버지의 말에 내가 다 반박하는 식으로 구성해볼까, 자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쓸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미 많은 부분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 아버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쪽으로 가게 됐다. 아버지의 말에서 본인이 어떻게 살았고, 그 시대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점이 드러나니까.

강유가람_ 나도 비슷하다. 사실 내가 보는 아버지나 가족들의 모습은 나에게는 일상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재밌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가편집을 본 사람들이 “가족을 너무 생각 없이 많이 보여주는데, 그 뒤에 있는 너는 안 보인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그게 카메라의 위치나 윤리적인 문제에 관한 고민이 되는 것 같다. 내레이션이나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을 보여주는 식으로 영화 속에서 나의 위치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장윤미_ 나도 영화에서 마지막에 내 집으로 돌아오는 게 그런 걸 은은하게나마 표현하는 거였다. 사실 내가 아버지의 노동에 빚진 게 맞고 그래서 아버지를 존중하지만, 그러나 나는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어떤 분들은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넘쳐난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후자였다. 그렇게 거리감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강유가람_ 그래도 전화 통화 장면이 주는 여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마음을 확 드러내고 나서 어떤 의미에선 그걸 응원하고 달래는 딸의 목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장윤미_ 그렇게 평생을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허무함과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그게 한국 사회 남성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막상 딱 들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걸 조금 극복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한다고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래>
<공사의 희로애락>

<모래>에도 부모님의 마음과 정서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 많다. 두 영화를 보고 나면, 한 사람의 인생에 고된 노동과 힘든 삶의 기억이 너무 많다는 걸 떠올리며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 일하면서 살면 된다’는 식으로 덤덤하게 말씀하시지 않나. 그런 정서는 어떻게 다가왔고 영화엔 어떻게 드러내려고 했나.

장윤미_ 일단 나는 아버지의 특정 시기를 다루려고 했던 거라, 우울해하실 때 작정하고 찍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둡고 우울하게 하려고 했고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 시기를 통해 뭔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멈춰 서있고 뒤를 돌아보는 시기의 모습이 보편적인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사실 노인의 삶이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 다양한 모습이 있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했던 거고.

강유가람_ 영화 보시고 뭐라고 하시던가?

장윤미_ 처음에 컴퓨터로 보시고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 그런데 나도 차마 못 묻겠더라.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웃음) 그리고 밤에 문자를 보냈더니,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겠지”라고 하셨다. 속내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다. 나중에도 수고했다고만 하시고.

강유가람_ 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때가 처음 극장에서 상영한 거였는데, 두 번째 상영이 평일이라 관객이 6~7명 정도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그날 오신 거다. 관객도 없고 하니까 혀를 차면서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하는 눈빛으로 보시더라. (웃음) 그러고 별말 없이 밥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한참 뒤에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그렇게 잘못 살지 않았다”라고 하시는 거다. 아버지를 공격하거나 하려던 건 아닌데 상처를 좀 입으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의외로 좋아하시고 여러 번 보시기도 하셨다. 관객과의 대화 때는 앞에 나가기도 하시고. 다만 이건 아버지의 서사이기 때문에 서운하다고 하시더라. 가족을 찍는다는 건 내가 너무 많이 마주하는 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지, 내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생각하게 되는 과정 같다. 아버지가 술을 과하게 드시면 노래를 크게 열심히 부르시는데, 그게 나에게 주는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불굴의 의지 캐릭터라, 그런 걸 웃음 치료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장윤미_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강유가람_ 아버지에게 희로애락을 질문하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건가, 아니면 편집하면서 그렇게 구성하게 된 건가.

장윤미_ 결과물을 생각하진 않고 아버지의 구술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길이도 생각하지 않고. (웃음) 기획 자체를 열심히 하지 않는 편이다. 작업하면서 아버지의 구술을 살리고 싶었던 거랑 나와의 사적인 부분을 계속 교차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정도의 구성만 생각했다. 그러다 할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까 마지막엔 할머니 무덤으로, 할머니가 계신 공간으로 가자는 생각은 있었다.

강유가람_ 나도 아버지의 삶에 대한 구술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편집하고 축약된 것만 넣다 보니 그렇게까지 많이 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버지의 솔직한 마음을 더 들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영화에서 딸을 제외한 가족과의 관계 같은 사적인 부분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사’에 딸과의 관계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장윤미_ 내 어머니, 그러니까 본인 아내 이야기도 있었는데 내가 뺐다. 결혼할 때 좋았던 거나 섭섭함 같은 것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아버지랑 어머니를 같이 붙여두기가 싫다고 할까. (웃음)

강유가람 ⓒ이영진
장윤미 ⓒ이영진

어머니의 기억이라는 건 생계 부양자, 산업역군 등으로 수식되는 아버지의 기억과는 다르지 않나. 가족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힘듦도 있고, 노동자의 초상에서 배제되는 부분도 있다.

장윤미_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를 만들 때 어머니의 가사노동도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다. 스스로 미진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염두에 두는 부분이다. 사실 아버지에 대해 작업하면서 계속 찝찝했던 부분도, 산업역군에 포함되지 않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작업에서 찾아가게 된 것도 있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의 존재나 어머니의 노동을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어머니를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영화에서 어머니가 배제되는 것 같고.

강유가람_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되게 복합적인 것 같다. 난 사교육을 많이 받았고 그건 일종의 어머니가 한 투자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어머니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은 거니까 거기서 오는 약간의 죄책감도 있고. 자존감에 어머니가 주는 영향이 크다. 그런 것들이 분리가 잘 안 되니까 어머니를 찍을 때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오히려 거리 두기 하면서 볼 수 있는데 어머니는 그게 안 된다. <모래>에서도 어머니의 입김이나 집안에서의 역할이 있지만, 당시엔 그걸 적극적으로 분석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사실 가부장제하에서 어머니들이 겪는 일종의 수난 서사가 있지 않나. 그런데 그걸로만 어머니를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평면적인 사람이 되니까.

장윤미_ 나도 그런 것 같다. 아버지와는 오히려 거리 두기가 돼서 작업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래>에는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거나 “우리들 때문에 부모님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무거운 분위기가 있다. 그런 정서,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자식 세대의 경제적 사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다. 

장윤미_ 앞선 세대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마음도 있고,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대해 떳떳해지려고 지난 10년간 엄청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사회나 삶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걸 포기하고 싶진 않은 거다.

강유가람_ 나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가족을 만나면 또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요즘은 부모님에 대해 자꾸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많이 고민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30대 때는 오히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지냈는데, 확연히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까 새로운 고민이 등장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은데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활동하며 살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것이 없는데, 이제 부모님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보다 낫게 사신다. (웃음)

장윤미_ 맞다. 그게 중요하다. 보탬이 못 된다는 자식으로서의 마음이 있긴 하지만, 쓰시는 것도 그렇고 부모님이 더 낫다.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되게 쉽게 하신다.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 없다고 하면서 왜 건설 노동으로 안 오냐고 무시하는 거냐며 화내시는데,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젊은이들이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말해버리는 게.

강유가람_ 부모님 세대와 자식 세대가 경제적인 관념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내 부모님은 귀촌하셨다. 집을 팔고서 한동안 울적해 하긴 하셨지만 그렇게 금방 다른 삶의 스텝을 밟고, 잘 모르는 지역에 갑자기 내려가셔서 다른 걸 선택하는 게 좀 신기하더라. 우리와는 다른 생활 감각, 성실성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옛날에는 적금 이율도 20%이었지 않나. 우리와는 다르다. (웃음)

장윤미_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시고. 특히 건설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특히 그런 것 같다.

강유가람_ ‘내가 세운 댐, 내가 만든 길’ 같은 자부심이 있다. 그런 경험을 한 세대인 거지.

<콘크리트의 불안>
<이태원>

두 영화는 공간과 장소에 관한 물음으로도 묶일 수 있지 않나. 방금 건설 노동 이야기도 했지만, 어떤 공간에 쌓인 기억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 담론이라는 게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기도 하고. 강유가람 감독은 <이태원>, <시국페미>를 작업하며 공간에 대한 질문을 확장했고, 장윤미 감독은 <콘크리트의 불안>에서 철거를 앞둔 스카이 아파트를 담았다. 동시대를 살며 공간의 문제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장윤미_ 일단 내 공간 구하기도 힘들다. (웃음) 20대 때는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내 공간이 없다는 것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재개발 문제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공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정말 다르다.

강유가람_ 사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고 넓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지만, 그건 대학에 들어가서 배운 것들과는 괴리가 있고 그래서 그렇게 산다는 걸 말하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집을 나와 내 힘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대학 때는 나와서 살 수 있는 곳이 고시원이나 친구들과 함께 방을 쉐어하거나 옥탑이거나 그 정도였다. 그러면서 주거공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내가 있을 곳, 내가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싶었는데 그게 항상 잘 이루어지진 않았다. 현실적으론 공공 임대에 관심이 커졌고 알아보다가 지금은 입주해서 살고 있다. 내가 있을 공간, 내가 작업할 공간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이 있다.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독립 다큐를 하면서 버틸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다.

장윤미_ 나도 최근에 예술인 주택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전에는 불안해서 어떻게 살았나 싶더라. 말한 대로 내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이 큰 것 같다.

강유가람_ 한편으론 이런 공간 문제가 한국사회의 부동산 문제와 연결되지 않나. 내 주변을 보면 집 문제에 있어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의 전략을 취하는 친구들도 있다. 어디서 어떻게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있을 곳과 재산과 많은 것들이 다 연결되다 보니. 특히 비혼 여성의 경우에는 그런 걸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식의 담론으로 흐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 강박관념이 커서 주식이나 청약 같은 정보에 애써 무관심하기도 하고. (웃음) 자립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다.

 

장윤미 감독이 보내준 메일에 ‘내 집은 천지사방 영원한 곳’이라는 문구가 있더라. ‘나만의 공간’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나.

장윤미_ 부끄럽다. (웃음) 대학에서 알게 된 인디언 시다. 20대 때는 내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도 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고양이와 살 수 있는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더라. 그럼에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더 가난해지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문구들도 좋아했던 거고. 여행을 좋아한다. 배낭 하나 메고 떠돌아다니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고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이. 그리고 나도 비혼 여성으로 살면서 막연하긴 하지만,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힘이 된다. 나도 그렇게 잘 살고 싶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도. 답이 됐나 모르겠네.

강유가람_ 나만의 공간이라는 건 나의 창작이든 삶이든 여러 가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다른 여성 창작자들과 좀 더 품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망도 있고. 그런데 그게 의외로 어려운 일이긴 하더라. 사람들을 모으고 무언가 주고받는다는 것이. 그래도 조금씩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보려고 하고 있다.

장윤미 ⓒ이영진
강유가람 ⓒ이영진

두 영화엔 모두 감독 자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찍히는 순간이 등장한다. <모래>에선 동생이 잠깐 카메라를 드는 순간이고, <공사의 희로애락>에선 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다. 특히 <모래>에선 “언니의 꿈은 뭐야”라며 향후 10년의 계획을 묻지 않나. (웃음)

강유가람_ 참 민망한 장면이다. 내 동생은 나와 참 다르지만, 솔직한 게 매력이다. 그때도 나한테 이것저것 말하면서 자긴 돈 욕심이 짱 많다든지 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비추면서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사실 창작을 막 시작하는 단계니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거잖나. (웃음) 그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철딱서니 없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꼭 필요한 장치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꿈꾸는 미래는 멀고 도달하기 어려운 꿈인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장윤미_ 나도 찍히는 게 너무 괴롭다. 나는 저 사람들을 마음대로 찍으면서. (웃음) 아버지가 내 사진을 찍는 순간, ‘아, 지금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 이번에 작업하고 있는 구미 노동조합 분들은 100명이 넘는다. 그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잘해야 하는데 싶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장르를 구분하는 이름을 넘어 일종의 방법이나 태도를 가리킬 수 있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두 사람에게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강유가람_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시간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인 것 같다. 논픽션이라고 해도 연출자의 시선이 들어가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되기 어렵다는 건 다른 많은 감독님도 얘기하시는 부분이지 않나. 작업할수록 그걸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감독이라는 또 다른 사람이 해석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지. 또 나는 여성들을 주로 찍으니까, 그런 분들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데 의미부여를 하는 편이다. 만들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 나의 접점을 관객들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장윤미_ 다큐멘터리 작업은 혼자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면도 있다. (웃음) 어쨌거나 나도 비슷하게 마음에 계속 남거나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것들로부터 시작하는데, 작업하면 거기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나아진다는 착각도 들고. 구체적으로는 다큐멘터리가 저널리즘과는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예전에는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완전히 바뀐 거다.

 

작업 중인 영화와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장윤미_ 구미의 노동조합과 그곳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작업하고 있다. 편집을 거의 마무리했다. (장윤미 감독의 신작 <깃발, 창공, 파티>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첫 공개된다)

강유가람_ 벌써?

장윤미_ 그래도 1년 넘었다. (웃음) 그런데 너무 길게 나왔다.

강유가람_ 작년에 작업 중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벌써 마무리하고 있다니 놀랍다. (웃음) 나는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영화를 완성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다.

장윤미_ 아직 최종 완성은 아니고 잘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다. 감독님이 계속 작업을 해나가서 나도 그걸 따라 한 편으론 긴장하고 또 한 편으론 질투도 하면서 계속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너무 좋다. 계속 작업해 달라. (웃음)

강유가람_ 나도 그렇다. 감독님의 시선이 나에게 주는 감흥이 있는데, 그게 부러울 때도 있고 자극도 많이 된다. 오늘 함께 이야기해서 재밌었다. 앞으로도 계속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매일매일>
<깃발, 창공,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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