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과 균열, 그러나 희망!
SIWFF 2019 <길모퉁이가게> 이숙경 & <해일 앞에서> 전성연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19-08-20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공동체에서도 당연히 갈등이 발생한다.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폭력성 때문이기도 할 테고, 관계 자체에 내재한 비대칭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때, 느리더라도 더 나은 길을 찾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관계 맺음을 어렵게 하는 것들을 직면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시도 또한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두 편의 영화를 보며 새삼스레 함께 살기의 어려움과 소중함에 대해 생각했다.

이숙경 감독의 <길모퉁이가게>와 전성연 감독의 <해일 앞에서>는 각각 사회적 기업 ‘소풍 가는 고양이’와 페미니스트 활동 단체 ‘페미당당’의 모습을 담는다. 소풍 가는 고양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이 일을 통해 성장하고 대안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도시락 가게다. 그러나 가게의 매출이 오르면서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페미당당은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이후 새롭게 다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 속에서, 서로를 만나고 경험을 나누며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가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단체다. 하지만 늘어가는 연대 요청 속에서 활동은 점차 힘들어지고, 친구이자 동료 활동가인 구성원들의 관계도 순탄치만은 않다.

각각 공동체의 의미 있는 시도에만 집중할 만도 한데, 두 영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삶과 관계에 대한 질문에까지 확장해 나간다. 어쩌면 위태롭고, 그렇기에 용감하다. 이숙경 감독과 전성연 감독을 함께 만나 영화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싶어졌다. 이숙경 감독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뒤늦게 들어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혼한 여자의 일상을 담은 <어떤 개인 날>(2008)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NETPAC상을, 스무 살 문턱에 있는 세 명의 탈 가정 여성들에 관한 영화 <간지들의 하루>(2012)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문화상을 수상했다. 전성연 감독은 홈리스 자활잡지 ‘빅이슈’ 판매원의 삶을 다룬 <아저씨>(2013)와 채식을 시작하며 다시 바라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이 시대의 사랑>(2015)을 연출했다. 그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전문사에 진학했고, <해일 앞에서>는 그의 졸업작품이다. 세대는 다르지만, 삶 속에 이어지는 고민과 실천을 통해 두 사람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던, 여백과 행간에 온통 웃음이 묻어있는 즐거운 대화의 현장이었다.

 

 

근황과 안부를 물으면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전성연_ 저는 일단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일하고 왔어요. 그리고 <해일 앞에서> 상영을 앞두고 있는데, 이제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 중이에요. 영화제 일은 보통 계약직이다 보니까 다들 철새처럼 이동하는 게 있거든요. 일 자체의 매력은 있지만,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작업과 병행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기도 해서, 계속 이어가도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숙경_ 저도 지난 5년간은 편집한다고 생업과 제작을 함께하는 극한 피로감이 있었어요. (웃음) 그리고 나중엔 촬영 소스가 너무 많으니까, 거의 소스 울렁증에 걸려서 작년 이맘때는 폭염 중에 보도블록을 걸어가면 기절할 정도로 휘청거렸어요. 그래서 편집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있었어요.

전성연_ 그렇죠! (웃음)

이숙경_ 뭔지 아시죠! (웃음) 이번 여름에도 한 해의 허리 넘어가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작년보단 낫지, 편집이 끝났으니까.” (웃음)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길모퉁이가게>는 작년 10월 제1회 정선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상영을 했어요. 일부러 지역 영화제에서 시작했어요. 동네의 작은 가게 얘기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일상으로 푸는 영화니까요. 작은 영화제에서 작은 영화가 상영되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다 같이 버스 티켓팅하고 가서 1박 하며 놀았죠.

전성연_ 와 너무 좋았겠어요.

이숙경_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거의 10개월 됐거든요. 상영도 서너 달 지나니까 힘들더라고요. 최근에는 여성영화제에서 지역 여성영화제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서포트하는 역할을 좀 했고, ‘필름X젠더’라고 단편 제작 지원 제도도 만들었어요. 그런 여성영화제 일이랑 밥벌이와 관련된 일, 그리고 상영을 하면서 “아, 힘들다” 하며 8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감독님, 이번이 프리미어죠?

전성연_ 네. 맞아요.

이숙경_ 축하해요.

<길모퉁이가게>
<해일 앞에서>

서로 영화를 보고 오셨는데 어떠셨는지, 오늘 만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숙경_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봤어요. 저는 90년도에 여성학과 대학원을 갔어요. 그때가 영 페미니스트들이 나타나는 시기였고, 7~80년대 언니들하고도 좀 다른, 일상의 정치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하는 시대였거든요. 비혼 공동체도 있었고 지금 하는 많은 실험의 모태가 있었어요. 저는 섹슈얼리티를 전공하고 미혼 여성의 낙태에 관한 연구를 석사 논문으로 쓰고 졸업했어요. 그때는 화장도 많이 하고, 운동권 안의 가부장적이고 계몽적인 것들에 대한 불편함도 있어서 개인의 삶에 관한 것들을 실험하던 때에요. 영화를 보면서 그 시절에 우리끼리 엄청나게 지지고 볶던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근본적인 질문을 하니까 가까운 친구한테도 날을 세울 수밖에 없죠. 같이 오래 가야 되니까. 회의 장면에서 서로 눈물 흘리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옛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성연_ 지금 감독님 말씀 들은 게 외부자의 시선에서 받은 거의 첫 피드백이에요. 그런 것들이 지금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제 또래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동체 안에서 계속 드러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해일 앞에서>를 여성영화제에서 너무 틀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 비판하는 지점들도 있는 영화기 때문에 좀 떨리기도 해요. 제일 보여주고 싶은 관객인데 제일 무서운 관객인 거죠. 그런데 감독님 얘기 들으니까 너무 좋네요. 사실 제가 여성영화제에 맨 처음 가서 봤던 영화가 <간지들의 하루>였어요.

이숙경_ 아! 그렇구나.

전성연_ 네. 그때 GV에서 했던 대화도 생각나고, 영화의 이미지들도 아직 생각나요. 그리고 제가 한 3년 정도 탈 가정, 탈학교 한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있는 쉼터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어요. 몇 주 전에 우연히 거기서 일하시는 분이 <간지들의 하루>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도 감독님 생각을 잠깐 했는데, 이번에 감독님이랑 같이 얘기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정말 좋았어요.

 

신기한 인연이네요.

전성연_ <길모퉁이가게>도 못 보고 있다가 이번에 봤는데,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도 또 다른 질문들이 들어오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순들은 답을 하나로 내놓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잖아요. 그걸 계속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 감독님 위치가 느껴지더라고요. 전작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각자가 관계 맺고 영화에 담으신 공동체가 있잖아요. ‘소풍 가는 고양이’와 ‘페미당당’인데요. 각각 공동체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숙경_ 저는 ‘줌마네’라는 여성주의 공동체를 20년째 하고 있어요. 2001년에 문을 열었는데 그때는 경력단절이 아니라 아예 경력이 없는 여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중간 가교로 글쓰기를 선택하고, 자유기고가 과정 같은 것도 만들고 단행본도 쓰게 했죠. 소풍 가는 고양이의 대표 박진숙 씨(씩씩이)는 줌마네 1기에요. 진짜 오래된 인연이죠. 제가 영화에서 여성주의의 ‘여’자도 표방하진 않지만,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절대 그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는 사람인 거죠. 저는 줌마네를 만들었지만, 씩씩이는 청소년들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집을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든 거죠.

전성연_ 제가 졸업작품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2017년 즈음이 20대 페미니즘 활동 단체들이 막 올라왔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제가 그 전 해에는 프랑스에 있었거든요. 대학원에 들어갈 때부터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고 졸업하겠다고 당차게 생각했었는데, 비어있던 시간 동안은 아는 게 없으니까 접근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제 친한 동료이자 친구인 남순아 감독이 페미당당을 소개해줬어요. 거기서 자기들 활동 영상을 아카이빙하고 싶어 한다고요. “어, 정당을 만든다고? 재밌을 것 같은데? 될 것 같은데?”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이 카메라만 들고 갔는데, 그 친구들은 카메라를 대하는 것에 거리감이 별로 없었어요. 연예인처럼 드러내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제가 학교에서 봐왔던 페미니스트들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웃음)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요. 또 그들은 다 같이 있는데 저는 혼자 카메라 달랑 들고 가 있고, 안 그래도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그게 불편하기도 했죠. 그렇게 계속 지켜봐 왔는데 이상하게 가까워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했다는 걸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이숙경 감독 ⓒ이영진

두 분 모두 상당히 오랫동안 촬영했습니다. <길모퉁이가게>는 2014년부터, <해일 앞에서>는 2017년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요. 촬영 전후로 분량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았나요.

전성연_ 두 가지 정도 있었어요. 저한테는 이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고민을 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가 너무 중요했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앉아서 얘기하는 장면밖에 없는 거예요. 이걸 계속 보는 게 얼마나 피곤해요? (웃음) 그런 고민이 한 축에 있었고요. 또 하나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이미 많은 논의와 회의와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카메라엔 드러나지 않는 지점들인 거죠. 그래서 그 맥락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좀 친해지고 나니까 저보고 단체 카톡방에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이 친구들이 좋아지고 가까워지고 있는데 거기 들어가면 거리가 너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는 싫었어요.

이숙경_ 저는 단체 카톡방에 들어갔는데. (웃음) 그 카톡방을 올해 초에 나왔어요. 편집도 다 하고 끝났다고 생각할 때 나가겠다고 얘기했었거든요. 그렇게 오랜 세월 카톡방에 있었지만 한 번도 글을 남기지 않았어요.

전성연_ 왜요?

이숙경_ 남길 글이 없었어요. 다 업무 얘기고 거기도 막 지지고 볶고 할 거 아니에요. 사람이 있으니까요.

 

촬영할 때 정했던 원칙 같은 것도 있었나요.

이숙경_ 촬영 원칙이나 스타일도 촬영하면서 찾아 나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공간도 낯설고 그들의 용어도 낯설고 모든 게 암호같이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죠. 그게 정리되는 데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취향인데, 포멀한 인터뷰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가다가 탁 말 시키는 것처럼 하고, 그런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요. 촬영장에서 가급적 먼저 질문하지 않는다는 건 있어요. 어떤 의도나 궁금증을 가지고 했던 질문은 나중에 보니까 상당히 작위적이더라고요. 나와 다른 세대,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하고 만날 때는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웃음)

전성연_ 저는 회의 장면 촬영할 때 그걸 많이 느꼈어요. 카메라를 놓고 가만히 있는 거. 이 친구들의 얘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표정, 듣는 표정을 열심히 찍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좋은 대화를 한다는 게, 정성스럽게 대화한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대화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그걸 많이 담고 싶었어요.

<길모퉁이가게>
<해일 앞에서>

두 영화의 다른 점을 꼽자면 인물별 팔로우 장면의 여부인 것 같아요. <길모퉁이가게>는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 모습에 중점을 두고 가게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반면 <해일 앞에서>는 각자가 체감하고 고민하는 것들, 각자가 몰두하는 일상이나 활동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이숙경_ 그 구성 자체가 인상적이었어요. <해일 앞에서>에는 피해자로 정체화 되는 것을 거부하고 쾌락의 주체로서 자신들을 보여주는 모습들도 등장하잖아요. 멋있기도 하고 노력한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또 옛날 생각이 나면서, “그래 저것도 노동이야.”하고. (웃음)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회의 장면이나 그걸 넘어서 개인의 일터나 일상의 공간으로 가면 한 사람 한 사람 속으로 쑥 들어가면서, 더 관심을 갖게 하고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었어요. <길모퉁이가게>는, 많은 사람들이 홍아를 궁금해 해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는 순간 다른 게 무너지거든요. 크게 두 가지 구성안이 있었어요. 홍아와 씩씩이를 투톱으로 두 여자의 성장담을 더 보여주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갈 것인가 중반까지 계속 고민했죠. 끝까지 미련이 남아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본에는 사람을 좀 더 살렸더니 힘이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인디다큐페스티발때는 다시 처음 의도대로 재편집했어요. 아주 간발의 차이예요. 쇼트 세 개 들어가는 거로 큰 차이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혼란을 좀 겪었습니다.

전성연_ 저도 <길모퉁이가게>를 먼저 얘기할게요. (웃음) 전에는 영화가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얘기하는 게 영화에 대해 말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떤 걸 보여주지 않고 어떤 걸 질문하지 않는가도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더라고요. 저 사람한테 어떤 역사가 있는지 지금 감정이 어떤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 그걸 더 깊이 물어보지 않는 게 이 영화의 미덕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이런 곳을 만들게 됐고, 왜 여기 들어왔고, 가정은 어땠고 학교는 왜 그만뒀는지 더 깊숙하게 질문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전 너무 좋았어요. 더 중요하게 이야기되어야 하는 게 있는 것처럼 보여주니까요.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

이숙경_ 그런 구성을 선택한 이유?

전성연_ 저는 이 조직을 영화에서 좀 해체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자’ 아니면 ‘페미니스트’ 아니면 ‘페미당당’이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을 볼 때 프레임 하나가 덮이는 게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게 있었고요. 또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 위치가 애매해져서 이 사람들의 갈등 관계나 속내를 알게 되니까 점점 더 해체시켜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개인적인 장면을 촬영했어요. 웬만하면 혼자서 집중할 수 있고 요즘 삶에서 페미니즘 활동 외에 즐겁게 하는 것들, 지금 각자의 인생에 중요한 시간과 장소들을 기준으로 선택했고요. 유리공예 하는 친구나 폴댄스 하는 친구는 저 말고 다른 친구들은 가보지 않았던 공간이기도 해요. 멋있게 폴을 타는 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 영상을 올리기까지 한 시간 동안 계속 넘어지고 애쓰고 멍들고 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이영진

소풍 가는 고양이와 페미당당은 ‘노동’과 ‘여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공동체이고 공간이잖아요. 그걸 가까이에서 보고 기록하는 게 감독님들께는 어떤 시간이 되었나요.

전성연_ 이 작업하길 너무 잘했다고 계속 생각해요. 전 사실 친구들과의 갈등에 되게 취약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좋고 중요해도 결국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남자친구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페미당당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성들 간의 자매애, 친구, 우정에 대한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한 번은 어느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달라진 게 뭐냐고 물어서 방금과 같은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야?”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하고,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여자들한테 이게 얼마나 부족한지 모르는 감수성 없는 반응이었던 거죠.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갈등 관계를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숙경_ 영화에도 그게 드러나요. 회의할 때 그런 국면들을 되게 집중해서 보고 있잖아요.

전성연_ 사실 페미당당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계속 지속되진 않잖아요. 회의하는 시간보다는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회사에 다니는 그런 시간이 더 많죠. 그래서 여기 와서 위로받지만, 여길 떠나면 정말 전쟁터로 나가는 거예요. 이렇게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너무 적고, 여성으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힘든 순간들은 훨씬 많아서 계속 고민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전 영화를 만들면서 화가 더 많아졌어요. (웃음)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에도 이제는 화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같이 화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게 좋아요.

이숙경_ 저는 대부분이 운동권이던 시대에 대학을 다녔고, 계급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시위도 했지만, 육체노동자로 살진 않았잖아요. 5년 동안 가게에 출근하다시피 다닌 게 인생에 처음이었어요. 제가 거기서 같이 밥을 짓고 노동을 한 건 아니지만,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로서, 일상의 노동에 대한 직접 체험 같은 걸 처음 한 거죠. 그리고 저도 두려움이나 욕망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는 두려움도 있지만, 동떨어져서 생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너무 참담해질까 봐 걱정하면서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슬아슬하게 지내는 거죠. 그런데 조금 더 용기가 났다고 할까요. 가게의 매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가게가 알려진 상황에서, 씩씩이가 그걸 발판으로 사업을 더 확장하려는 욕망을 펼치지 않은 건 너무 대단한 결심이에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5년 동안 그렇게 지내면서, 그 시간이 나를 지킨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제일 큰 성과에요. 이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이 지속되는 일터, 그걸 공유하는 사람이 있어야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거였어요. 씩씩이랑 친구들이 내 가까이에 있고 그 삶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계속 살 수 있다면, 훨씬 덜 무서운 거예요. 결국 저도 제 안의 두려움과 직면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중요한 경험을 한 거죠. 계속 흔들리긴 하겠지만.

전성연_ 영화에서 씩씩이가 높은 매출을 찍고 나니까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고 말하잖아요. 그전까진 대표로서 결정하는 거나 직원들을 비판하는 걸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다가도 그 얘기를 들으니까 딱 오는 게 있더라고요.

이숙경_ 다른 남자 사장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거나, 영화 상영할 때 씩씩이나 제 또래 남자 관객들이 와서 보잖아요? 사업하거나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그 고민을 껌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껌이라니. 너무 엄살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고민거리조차 아니라는 식으로, 새가슴처럼 이해하더라고요. 새가슴 아니거든요. 그걸 몰라서도 아니고요. 그래서 더 설명해야 하나, 더 공격적으로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건 이제 다음 영화에서 그렇게 하기로. (웃음)

<길모퉁이가게>
<해일 앞에서>

두 영화가 좀 더 대단하고 놀랍게 느껴지는 순간은 공동체의 균열을 바라보려고 할 때라고 생각해요. 함께 산다는 게 뭔지 묻고 그게 깨질 수도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걸 외면하지 않고 보는 거죠. 각각 시놉시스에서 ‘다툼’과 ‘진동’이라고 표현해주신 부분이기도 한데요.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하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숙경_ 재미있는 연결지점인 것 같아요. 감독님 만나서 얘기 들어보니까 외부자의 시선이라서 가능했겠다 싶기도 하고요. 운동권의 언어라는 것도 그렇잖아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한다든지. 사회적 기업도 그러기 쉽거든요. 저는 오래된 친구가 가게를 한다고 생각했지 사실 사회적 기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싫어했어요. 지원은 2년만 하면서 착하게 기업 하라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무심하게 봤기 때문에 그런 지점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뜻하지 않은 우연도 있었고요. 보통 사회적 기업은 지원이 끝나면 그냥 거기서 끝내거든요.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박수 받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추억하죠.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서 또 지원받아요. 그게 사회적 기업의 현실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그 시스템에서 살아가지 않기로 한 거죠. 그렇게 사람들의 삶에 관한 얘기로 확장되면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어요.

전성연_ 영화 속의 민아가 얘기하는 것처럼 모든 관계에 권력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그냥 조금만 가서 보면 알 수 있거든요. 둘의 관계 구도가 어떤지 누구한테 조금 더 힘이 주어져있는지. 페미당당을 처음 촬영하러 갔을 때도 그게 느껴졌어요. 분명 말하지 않고 있는 게 안에 있는 것 같고 그게 언젠가 터질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지켜본 거죠. 그런데 정말 그게 터지는 시점이 왔어요. 그게 터지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는 그 갈등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결정해야 했어요. 결말을 위해 넣지 않기로 한 부분들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게 아직 마음에 부채감으로 남아있어요.

이숙경_ 그 친구들은 영화를 봤나요?

전성연_ 네. 일단 자기들이 너무 안 친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너무 싸우는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강유가람 감독님이나 순아 감독님에게 피드백 요청을 하고 그 질문을 똑같이 했거든요. 안 친해 보이냐고. 그랬더니 “아니요. 되게 친해 보이는데. 안 친하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한 편으로 어떤 친구들은 “아, 내가 여기서 이렇게까지 힘든 줄 몰랐다”고도 하고요.

 

영화에선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무언가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이 나오잖아요.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따르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는데요. 감독님들께서 생각하는 용기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숙경_ 지금 세대가 어떻게 중고등학교 시기를 거쳐서 20대가 되는지를 보면서, 자기를 내어주는 게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되잖아요. <해일 앞에서>를 보면서 좀 놀랍기도 했어요. 저 안에서 저런 경험을 한다는 게, 자기를 조금씩 누군가의 삶에 섞어보는 시도를 하는 게 되게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를 계속하는 것이 용기가 필요하다, 요새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웃음)

전성연_ 저는 감독님 보면서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왔어요. 계속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아내시고 주변의 동료들을 찾으시잖아요. 같이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모임을 만들고. 모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길모퉁이가게>에서도 어떻게든 뭔가 해나가려고 하는데 그 안에서 계속 갈등이 생기고, 그런 게 제가 보는 감독님의 행보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용기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시니까. (웃음) 다들 똑같이 사는구나.

전성연 감독 ⓒ이영진

두 분이 처음으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이야기도 궁금해요. 그건 페미니즘적인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이숙경_ 여성 캐릭터가 너무 없다는 게 답답하고 재미도 없었어요. 내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경험이나 사람들은 너무 다채롭고 흥미로운데,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은 거죠. 되게 쉽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카데미까지 갔고요. 그렇다고 억지로 투사처럼 영화를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건강을 해치면서 막 집을 팔면서까지. (웃음)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영화를 삶으로써 살고 싶어요.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케줄대로 가는 거예요. 이제 내년에 극영화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쉽고 재밌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전성연 감독님은 극영화에 관심은 없으세요?

전성연_ 저는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이미 놓여있는 것에서 해석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요. 하나하나 다 만들어내야 하는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감독님처럼 이렇게 극영화도 했다가 다큐도 하면 정말 예술가 같이 보이는데. (웃음)

이숙경_ 극영화랑 다큐랑 차이가 없어요. 극영화를 만들고 나면 다큐 만들 때 되게 좋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저는 단편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 ‘두 번째 영화 제작 워크숍’이라는 걸 했어요. 영화 한 편을 만든 사람은 많은데 그다음을 못 만드는 여성 감독들이 많잖아요. 그때 제작 집단처럼 돌아가며 단편을 8편정도 만들었어요. 강유가람 감독의 <진주 머리방>도 거기서 만든 극영화에요.

전성연_ 제가 봐왔던 극영화 현장들만 알아서 무섭기도 한 것 같아요.

이숙경_ 그런 현장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그 워크숍을 하기 전에도 고민했던 게 시스템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여자들끼리 하니까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지금은 촬영, 믹싱, 후반 등 기능을 가진 여성들이 많잖아요. 다 해결돼요. (웃음)

전성연_ 어떡해요. 저 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대학교 다닐 때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여성영화제에 가는 게 과제였어요. 그때 만난 게 <간지들의 하루>고요. 그게 제가 처음 가본 영화제인데 그때의 공기 같은 걸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고 그걸 틀고 얘기해도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좋았죠. 그러다가 우연히 다큐멘터리 만드는 수업을 발견하게 됐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이숙경 감독님도 여성영화제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많으실 텐데요. 여성영화제 상영을 앞둔 두 분의 소감을 들으면서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이숙경_ 저는 일단 여성영화제가 시작되는 걸 본 사람으로서의 감흥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간지들의 하루>가 여성영화제에서 옥랑문화상을 받았는데요. 그게 계속 혼자서 작업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죠. <어떤 개인 날>은 남자들이 되게 싫어하거든요. 이혼하고 난리 떠는 여자가 나오니까, 예뻐할 만한 여자가 아니니까요. 그 영화를 보고 나면 남자들이 아무 말을 안 해요. 그런데 여성영화제 사람들은 막 캐릭터가 너무 새롭다고 그러는 거예요. (웃음) 영화의 맥락을 이해해주고 불러주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였어요. 계속 작업하라고 응원해주는 곳이고요. 이번에도 어떤 질문들이 찾아올지 기대돼요. 아마도 <길모퉁이가게>는 이번이 공식적인 상영의 맨 마지막일 것 같은데요, 긴 여정 끝에 이제 고향 집에 온 거죠.

전성연_ 여성영화제는 어떻게 보면 영화를 시작하게 해준 출발점 같은 공간이고, 늘 새로운 여성 캐릭터와 서사들을 만나는 기대되는 영화제에요. 지금은 무섭기도 하지만, 제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곳이네요.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함께 얘기하면서 감독님께서 다양한 다른 방식들을 저한테 보여주셨어요. 저도 너무 힘들게는 말고, 삶과 같이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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