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행복을 다르게 정의한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한 방송인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하루 끝에서 캄캄한 어둠과 대면하는 순간, 어떤 불안도 분노도 부끄러움도 마음속에 돋아나지 않는다면, 그저 평탄한 심정으로 잠을 청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뜻이다. <행복한 라짜로>의 주인공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그 기준에서 더없이 행복한 인물이다. 그는 편안한 얼굴로 잠에 든다. 적어도 ‘부활’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영화는 시대 배경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마을 인비올라타에서 시작한다. 공동으로 거주하는 오십 여명 남짓한 주민들은 데 루나 후작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 아래서 소작농으로 살고 있다. 여전히 봉건제가 유지되는 마을에서, 라짜로는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라짜로를 천대하지만, ‘선한’ 라짜로는 그들을 의심 없이 바라본다. 후작부인과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배경은 보다 선명해진다. 산촌은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임수가 판치는 공간이다. 후작부인은 마을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그들은 평생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빚에 허덕인다. 탄크레디는 기만적인 어머니를 비난하지만, 후작부인은 “저들은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라서, 풀어주면 더 비참해질 것”이라 단정한다.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그들은 라짜로를 착취한다. 부인에 따르면, 이는 ‘연쇄작용’이기에 변하지 않는 구조다.

후작부인의 ‘대사기극’이 폭로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한다. 그 와중에 라짜로는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는데, 이후 긴 잠에서 깨어나듯 ‘부활’한다. 라짜로를 따라 영화의 시공간은 현대 도시로 이동한다. 인비올라타의 농노는 이제 도시 빈민이 되어, 좀도둑질로 생계를 연명한다. 후작부인의 지배는 자본주의로 대체되어 그들을 옭아매고, 끊어낼 수 없는 가난으로 밀어 넣는다. 라짜로는 늙지도 다치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금세 알아보지 못한다. 유일하게 라짜로를 환영한 안토니아(알바 로르와커) 역시, 그를 어떻게 돈벌이에 이용할지 골몰할 뿐이다.
영화에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길수록, 영화는 비현실적으로 비춰진다.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화면은 오래된 신화를 영사하는 듯하고, 라짜로는 고유의 신성함을 지닌 성자처럼 존재한다. 라짜로는 성경에서 따온 이름으로, 성경 속 라짜로 또한 죽음에서 부활한 인물이다. 그밖에도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는 새총이나 탄크레디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 살해당한 순교자 등 영화에는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이 사용되며, 이는 환상적이고 시적인 기운을 불어 넣는다. 영화 후반부, 라짜로와 안토니아 일행은 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성당으로 들어선다. 수녀가 그들을 내쫓자, 성당은 음악을 잃고 정적에 갇힌다. 빈손으로 밤거리를 걷던 일행 곁에, 바로 그 음악이 도착한다. 영화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지만, 구원을 암시하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골과 도시, 봉건과 근대라는 두 세계는 결국 닮은꼴로 드러난다. 자유를 얻은 다음에도 자유는 없다. 후작부인의 단언은 저주처럼 도시에 떠돌고,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존재를 외면한다. 성직자마저 선의 가치를 상실한 채, 가진 것 없는 자를 거부한다. 라짜로는 마을 사람들을 돕고 탄크레디를 불행에서 빼내려 하지만, 착취는 더욱 교활해지고 행복은 요원해 보인다. 이제 라짜로는 편안한 얼굴로 잠들지 못한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동안, 그는 추방당하듯 다시 긴 잠에 빠진다. 어쩌면 그렇게, 이미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 안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불면으로 뒤척이는 밤에 라짜로는 그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행복한 라짜로>는 <더 원더스>(2014)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던 알리체 로르와커의 신작으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제48회 로테르담영화제 등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 및 초청됐다. 주연을 맡은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데뷔작이며, 현재까지 유일한 영화 출연작이다.

행복한 라짜로 Lazzaro felice 기획 마틴 스콜세지 제작 칼로 크리스토 디나 외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출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루카 치코바니, 알바 로르와커 외 수입·배급 (주)슈아픽처스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27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19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