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랑
<우리 지금 만나>
손시내 / Choice / 2019-05-31

남몰래 서로를 향한 감정을 키워가는 두 남녀, 결혼을 앞두고 삐걱대는 커플, 고단한 삶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 여성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 안에 담긴다. 얼핏 보기엔 그저 일상적이고 별다른 것 없이 평범한 이 이야기들은,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에 관해 말하는 옴니버스 영화 <우리 지금 만나>를 이루는 세 단편의 내용이다. 김서윤 감독의 <기사선생>, 강이관 감독의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부지영 감독의 <여보세요>로 이뤄진 이 작품은 2015년부터 통일부가 지원해온 ‘한반도 평화와 통일 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됐고,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의 ‘전환기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영화’ 기획전에서 공개됐다. 영화에는 새롭게 변화하는 남북의 상황이나 오래된 분단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해 온 개인들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를 기반으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기사선생>은 개성공업지구, 일명 개성공단에 출입하게 된 남한의 식자재 배달 기사 성민(배유람)의 첫 출근길을 비추며 시작한다. 긴장되고 딱딱한 군사적 분위기에 눌린 성민에겐 개성공단이라는 공간도 그저 어색하기만 하다. 그가 식자재를 배달하는 개성공단 안의 식당엔 북한 직원 숙희(윤혜리)가 있다. 출근길에 마주치고 자전거를 고쳐주며 두 사람 사이엔 자연스럽게 호감이 싹튼다. 영화는 성민과 숙희의 풋풋한 한때를 밝고 따뜻하게 담는다. 2005년부터 북한과 남한의 노동자들이 함께 일해 온 이 구체적인 공간에선, 이러한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보편적이었을지 모른다. 조심스럽고도 익숙한 로맨스는 남북 간 상황의 변화와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곤경에 처한다. 이러한 차단과 이별의 드라마 또한 익숙한 것이지만, 어떤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을 듯한 검문소를 넘어 사람과 감정이, 그리고 이야기를 담은 물건들이 오갔으며 이제 거기엔 그리움이 들어섰으리라는 사실이 새삼 애틋하다.

<기사선생>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여보세요>

<우리 잘 살 수 있을까?>는 사건이나 사연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은유적인 방식을 택한다. 남북한을 잇는 철도개통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결혼을 앞두고 함께 살 집을 채우기 시작한 현채(최남미)와 재범(하휘동)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식성도, 생활방식도 다른 그들은 꿈꾸는 미래조차 다른 사람들이다. 소통의 가능성은 요원하고 서로를 향한 짜증만 늘어간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 영화는 불현듯 빠른 비트의 음악과 격렬한 춤을 통해 두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가늠하는 장으로 변모한다. 이들의 ‘서로 다름’은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테지만, 철도 개통식을 알리는 뉴스가 일러주듯 그것은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의 고민이다. 영화는 그 고민을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그리고 춤으로 표현하며 감싸고자 한다.

<여보세요>의 주인공 정은(이정은)은 밤낮으로 일하며 어머니를 간병하는 고된 날을 보내고 있다. 웃을 일 하나 없는 일상을 반복하던 어느 날, 이상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기억 속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며 자기가 있는 곳이 ‘북조선’이라는 전화기 건너편의 여자는, 남한에 내려간 지 3년 된 아들을 찾아달라고 정은에게 다짜고짜 부탁한다. 이 이상한 부탁을 듣고 실랑이도 하고 흥정도 해보는 사이, 영화는 정은의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북조선’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전쟁 통에 가족과 헤어진 채 홀로 남쪽으로 내려온 정은의 어머니는, 기억이 흐릿해지며 자꾸만 북녘의 여동생을 찾아 헤맨다. 정은의 일터엔 ‘말투가 이상한’ 선화 씨가 있는데, 조선족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북에 가족을 두고 온 북한 이탈 주민이다. 그처럼 여성들의 고된 삶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화기 너머로까지 흐르고, 정은은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북한 여성과 우정을 나눈다.

<우리 지금 만나>는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다소 멀어져 가깝게 와닿지 않는듯한 통일이라는 주제를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로 돌려놓는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교류, 실제로 살아가야만 하는 함께인 삶, 소통과 관계 맺음이라는 화두들이 여기에 있다. 북한 지역과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무료 통화 어플리케이션이나 개성공단 내부의 관계들처럼, 오늘날 분단 상황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의문 역시 생겨난다. 현재 통일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란 그처럼 개인적 사연들의 무한한 합으로만 상상 가능한 것일까. 순수하고 따뜻한 감정적 온기를 넘어, 개인들이 놓인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조건을 묻는 영화적 가능성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는 <우리 지금 만나>가 제기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숙고해볼 수밖에 없는 중요한 질문이다.

<기사선생>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여보세요>

 

 

우리 지금 만나 Let Us Meet Now 감독 김서윤 강이관 부지영 출연 배유람 윤혜리 하휘동 최남미 이정은 이상희 제쟉지원 통일부·영화진흥위원회·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배급 인디스토리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85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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