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JIFF 2019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이연철
글 김선명 사진 김혜미 / Festival / 2019-05-03

이연철 감독의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는 세 커플이 등장하는 세 개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커플은 이미 헤어진 상태다. 남자는 함께 살던 여자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물건을 챙기려 한다. 아직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는 여자에게 매달리다 결국 파국적 결말을 초래하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커플의 과거 좋았던 어느 순간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동일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이 커플은 첫 번째 커플의 인물들과 이름도 직업도 다르다. 동시에 이들은 마치 방금 자신들이 함께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두고 의견을 나누기라도 하는 듯 첫 번째 커플의 마지막 상황에 대해서 대화를 이어간다.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 역시 동일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한 커플의 설레는 시작을 보여준다. 또 다른 새로운 이름과 직업을 가진 이 세 번째 커플의 이야기는 두 번째 커플이 함께 읽었던 소설 속 내용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커플의 연애의 단계를 역순으로 따라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두 번째 현실 속 커플이 함께 본 영화와 함께 읽은 소설의 내용으로 읽을 수도 있도록 배치한 영리한 영화다. 이때 함께 읽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공가(空家)’의 물리적 변화가 주는 효과가 상당하다. 첫 번째 이야기를 먼저 완성하고 이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는 감독의 말을 빌린다면, 어쩌면 이 이야기는 첫 번째 커플의 파국적 결말을 되돌리고자 하는 모든 헤어진 연인들의 마음에서 시작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 결말이 가장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커플이 본 영화라고 말함으로써 한 번, 그리고 파국 이후 폐허가 된 공간과 흉터로 남은 상처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연애의 수순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장편을 만들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생계유지를 위해 조그만 프로덕션 일도 하며 지낸다.

 

전주 영화제에서는 처음 상영된다.

그렇다. 전주나 부산, 미장센단편영화제 같은 국내 영화제들에서는 아직 상영된 적이 없었다. 해외 영화제에는 LA 영화제, 이탈리아 지포니 영화제, 버뮤다 영화제 등에 갔던 적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단편은 찍어놓고 묵혀두는 경우가 많은데 스텝들한테 여기서 상영하니 보러 오라고 말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김혜미

학교에서 만든 작품은 아닌 걸로 보이는데, 이번 영화의 제작 과정은 어땠나?

너무 작업이 늘어졌다. 영화가 세 덩이로 되어 있는데, 시나리오는 첫 번째 덩어리 같이 한 공간에서 나름의 기승전결을 가지고 진행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래서 그걸 먼저 쓰고 묵혀두고 있다가 뭔가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갔다. 전체를 먼저 고민하고 썼던 게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완성을 해 놓고도 1년 정도를 또 묵혀뒀는데 친구가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고가 떴다고 해서 마감을 2, 3일 정도 남겨두고 급하게 지원했고, 선정돼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써놨을 때 이 작품은 배우 캐스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작에 들어가고 나서도 배우 캐스팅에 공을 좀 오래 들였다. 2017년 하반기에 제작지원을 받은 프로젝트인데 작년 7월에야 겨우 촬영에 들어갔다. 한여름에 찍다보니 너무 더워서 다들 고생했다.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두 주연배우를 선택했던 기준이 있었나?

두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전체적으로 고르게 다 본 편이다. 박종환 배우는 다양한 색이 묻을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같은 배우가 다른 역할들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색을 칠하기가 좋은, 인상이 그렇게 세지 않은 배우를 찾고 있었기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임선우 배우는 과하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기본적으로 있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그런 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호감이 있었다. 같이 알고 있는 친구를 통해 물어봐서 만났다. 사실 별거 아닌 단편영화인데 배우들을 귀찮게 했다. 리허설도 많이 했고 괜히 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연애 얘기 같은 거 하면서. (웃음) 그들의 것을 내 영화에 녹이려고 애썼다.

 

영화 속 세 이야기들의 연결 방식이 흥미롭다.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연결을 지어볼 수 있을 텐데, 우선 연애의 끝, 가장 좋게 빛나던 순간, 시작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두 번째 이야기의 커플이 함께 본 영화와 함께 읽은 소설로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세 번째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와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순서와 관계를 일순간 뒤섞어버린다.

원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구성을 흥미롭게 여기는 것 같다. 큰 틀을 잡아 놓고 기존의 3막 구조 같은 거에 대입하는 방식이라든가 그런 건 피하려고 한다. 물론 이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이제는 그렇다. 예전에는 흉내 내는 것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전체 틀로 봤을 때 기승전결 같은 걸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는데, 이야기를 조금씩 쓰다 보니까 그걸 정해놓고 달려갔을 때 떨어지는 디테일들이나 이야기의 식상함 같은 것을 경계하게 되더라. 근데 제일 매력적인 건 항상 캐릭터인 것 같다. 예전에는 접근할 때 항상 이야기가 말이 되는지를 고민했지만 요새는 캐릭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영화도 처음에는 더 심플하게 그냥 “이 순간의 이 커플을 보여주자” 라는 접근이었다. 이 순간, 이 관계의 이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자. 그거를 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최초의 접근이었다. 진짜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 봤을 때 관객들이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아나가야 되고 자기만의 퍼즐을 맞추도록 유도하는 면이 분명 있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이 순간에 그냥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구성했던 거다.

ⓒ김혜미

두 인물이 툭툭 던지는, 끊기는 듯 이어지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보통 얘기할 때 주어, 목적어 다 넣어서 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나도 지금 말하다가 끊고 다시 시작하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게 더 현실적이고 리얼리스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모습처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묘하게 엇나갈 수 있는, 조금씩 말하고자 하는 화두가 다른 그런 모습들이 연인들 사이에서 많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런 모습들을 담고 싶었던 거 같다.

 

똑같이 이미지와 사운드로 이루어진 영상들인데 첫 번째 부분은 마치 중간의 커플이 영화를 본 것처럼, 마지막 부분은 그 커플이 함께 읽은 소설처럼 표현한 장치들도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커플이 앞에 나온 장면 얘기를 할 때 손동작으로 표현을 하지 않나. 정말 딱 그 표현 하나로 “아, 이 커플이 영화를 봤구나, 화면을 본 거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그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소설의 한 부분이라는 걸 드러낸다. “뭐, 어때요.”나 마지막에 “어쩌다 보니.”를 서로 반복해서 주고받으며 문장의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고 있다.

내 연애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늘어놓거나 친구들이 내게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할 때, 들어보면 다 비슷하거나 공감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소설을 봐도 영화를 봐도 그렇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에센스가 무엇인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정수가 무엇인가. 그렇게 공통적인 뭔가로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영화여도 상관없고 소설이어도 상관없고 지금 이 순간이나 현실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첫 번째 여주인공의 집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공가(空家)로 나온다. 같은 장소에서 물질적으로 보이는 그 변화가 영화에 큰 힘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뒤에 엔딩 크레디트에는 로케이션에 삼흥주택이라고 나오던데,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건가?

그렇다. 빈 공간을 구해서 싹 채워서 찍은 다음에 다시 싹 빼서 찍었다. 건물 자체는 멀쩡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이었다. 그 건물에 빈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전에 살던 분이 깔끔하진 못했는지 마치 철거된 지 5년은 된 느낌이었다. 도배를 다시 하고 정상의 집처럼 보이게 하는 과정이 있었다. 세 번째보다 더 심하게 곰팡이가 핀 되게 안 좋은 상태의 집이었는데, 세 번째 상태로 또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럼 아예 깨끗하게 시작해서 우리가 더럽히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너무 많이 고생했다 (웃음). 단편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내가 너무 힘들게 해서 미술감독이 엄청 고생했다. 동네 주민 분들도 양해를 많이 해주셨다. 우리가 시끄럽게 할 때도 많았는데. (웃음) 다 감사드리고 있다. 사실 나는 더 쉽게 생각했다. 미술을 잘 모르니까. 미술감독이 몰딩도 다 바꿔서 칠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때 “아,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냥 장편, 좋은 장편 시나리오를 쓰는 게 오래된 목표인데 성취를 못하고 있어서 그걸 하고 싶다. 지금 쓰고 있는 건 마약 관련해서 쓰고 있다. 마약에 연관된 사람들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게 되는가, 그런 소재로 쓰려고 하고 있다. 아직 다 안 써서 말하기가 민망하다. 그리고 조금 편하게 힘 빼고 찍는 단편영화도 찍고 싶다. 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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