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사원, 시라는 제문
SIDOF 2019 <463 Poem of the lost>
이상현/ 인디다큐 관객모니터단 / Ground / 2019-03-27

국가는 많은 기억들 중 현 통치 체제에 걸맞은 것들을 선별하여 보존하거나 개방시킨다. 그 외의 기억들은 탈색되고 망각되고 상실된다. <463 Poem of the lost>는 국가가 공인한 역사적 기억이 되지 못한 비공식적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프닝 시퀀스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의 여정이 “기억의 경계”와 “기억의 틈새”에 위치한 “그녀”를, 종전 이후 패전국 포로들과 함께 수용되었던 태국 내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이 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잊혀진 기억들을 소환해내기 위해 <463 Poem of the lost>가 택한 일차적인 방법론은 현장에 직접 방문해보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기억 이론의 대가였던 키케로는 기억술의 구성 요소로 이미지와 장소를 꼽는다. 키케로는 역사적인 현장에 직접 가서 경험하는 인상이 구술이나 저술을 통해 전달받는 느낌보다 감정에 깊이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면 기억 속 심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각인이 필수적이므로 키케로의 기억술은 언어 체계보다는 이미지와 이미지로 구성된 공간 설정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식은 <463 Poem of the lost>에서는 통할 수 없다. 영화가 찾는 대상에 대한 정보가 원천 차단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문화적인 전승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군사 기지와 위안소가 있었던 깐자나부리의 옛 터들은 폐허가 된 지 오래다. 463명의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군부문서는 민간에 개방되지 않은 채 기밀 상태로 잠들어 있다.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하는 역사적 기억들은 현재의 감각과 조우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실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다.

장소의 개념과 감각을 최초로 이론화한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한 장소의 내부에 감정이입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장소를 의미가 풍부한 곳으로 이해하며, 그곳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이입적으로 장소를 체험하는 감각은 방문자가 그 장소를 공유해 온 사람들의 경험과 상징에 자신의 경험과 상징을 연결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말하자면 이 영화가 키케로적 장소 체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현 주체가 “펩시콜라 간판이 크게 선” 깐자나부리의 거리에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장소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경험이나 상징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연결고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자료와 문화기억 또한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화가 채택한 장소 재현의 방식은 ‘실존적 외부성’의 감각에 가깝다. 실존적 외부성은 모더니즘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로 재현되는 장소 감각으로 소속감의 상실, 세계로부터의 소외, 정체성의 무화(無化) 등등을 내포하고 있다. 실존적 외부성의 장소 감각 방식은 <463 Poem of the lost>로 들어오면서 장소가, 기억이 겪고 있는 소외를 극대화하여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소와 장소의 이미지만으로 억압된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영화는 장소를 보여줌에 있어서 최대한 멀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객관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방식을 가교 삼아 대상에 접근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시를 들려준다. 시는 본질상 작가 개인의 시선과 감각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 체험이나 규격화된 기호 체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463 Poem of the lost>에 나오는 시는 시각 매체가 보여주는 장소의 이미지와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시공간 사이의 단절을 잇는 접착제로 기능한다. 관객은 463명의 태국 내 위안부 여성들을 대변하는 시적 화자의 입장을 공유한다. 가상의 화자를 거친 시적 회상은 시각적 심상을 만들어내고, 역사적 기억의 과정을 되살린다. 그를 통해 영화는 ‘2차 대전 중 태국 내 일본군 위안소’라는 접근 불가한 장소의 기억을 관객이 상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끔 한다.

기억을 되새기는 건 치유와 비판, 성찰을 논하기 위함이다.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지금의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범죄의 도덕적인 소멸 시효를 거부하고 아물지 못할 상처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억에 호소한다. 영화는 재현 주체의 목소리를 직접 전할 수 있고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항기억을 형성하기에 적합한 매체로 여겨져 왔다. 매체는 문화적 기억의 보조 수단일 뿐 아니라 기억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기반이기도 하다. <463 Poem of the lost> 또한 “기억한다. 기억한다고 쓴다.”는 나레이션을 통해 기억과 기록의 관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매체가 기록하려 하는 기억이 우리가 대리 체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역사적 기록물에 접근할 수 없고, 당사자에게 직접 증언을 듣는 일도 불가능한 종류의 기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영화가 선택한 기록의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463 Poem of the lost>는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이 영화는 한 장의 이미지로 각인된 쇼트들의 배열을 통해 기억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 좁히기를 시도하는 대신, 카메라가 담고 있는 장소들로부터 거리를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의 얼굴은 얕은 심도로 잡혀 흐릿하고, 공간은 고정된 풀 쇼트 혹은 특정 사물에 대한 클로즈업 쇼트로만 나타난다. 여기서 영화는 장소의 이미지와 시적 텍스트를 결합한 이중 기호가 된다. 이중 기호로서의 <463 Poem of the lost>는 기억과 함께 망각까지 코드화하고 있다. 러닝타임의 4분의 3이 지날 무렵, 영화는 세 번째 방법론을 꺼내든다. 태국 내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 중 생존자들이 실제로 발화했던 내용들이 암전 위로 타이핑된다. 영화의 재현 대상이 문화적 기억을 지나 그 원형인 경험 기억의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생존자들의 증언과 함께 태국에 거주 중인 고령의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교차로 편집되어 나타난다. 국가적으로 공인된 기억과 비공식적 기억만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적 경험 기억 안에서도 혼선이 존재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동이었던 현지인들 중에서는 일본이 와서 고통스러웠다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일본군들이 친절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와 인상에 대한 증언 또한 엇갈린다. 각기 다른 기억들의 중첩으로 인해 그려지는 흐릿한 윤곽선을 통해 문화적 기억으로 번역되지 않은 경험 기억이 어떻게 바스라지고 흩어질 수 있는지가 ‘메타 증언’되고 있는 셈이다.

<463 Poem of the lost>는 파기된 과거의 삶을 드러낼 뿐 아니라 현재적 삶의 맥락에서 떨어져 내린 파편들, “부스러지고” “녹슨” “기억 조각”들을 폐허로부터 건져 올린다. 영화는 기억 조각들을 짜 맞추어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제시하는 대신 불완전한 이음매를 드러낸다. 매끄럽게 윤색된 공적 기억의 텍스트는 이 영화가 비판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폐허가 된 기억의 장소들과 대조를 이루는 주류 역사적 기념의 장소들이 있다. 전쟁 박물관과 연합군 포로 6289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건설된 철도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포로들이 매장된 묘지는 나라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의 보살핌 하에 정결한 상태로 유지된다. 전쟁과 군인, 영웅에 대한 송덕(頌德)은 국가적 기억의 영역에 입성하기 쉽다. 영화는 녹슨 군모와 설거지거리를 분할화면으로 병치시킴으로써 국가적 기억이 민간인 여성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전쟁과 전쟁 피해에 대한 기억들조차도 비석과 유리 케이스라는 단절된 공간 안에서 단선적인 텍스트로 포획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삶을 기억한다. 기억한다고 쓰고 지워버린다.”라는 말이 주지시키듯 기억은 선별을 거쳐 문화적으로 입력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개방되지 못하고 보존되지 못하는 가운데 “대답하지 못”할 것들이 되어버린다. 의도적인 망각 정치에 대한 비판은 기억과 권력, 기억과 이미지, 권력과 이미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암시한다. 이미지 또한 통치 체제의 선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공통된 기호와 경험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치지 못하고 배제된 이미지들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공백의 무엇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463 Poem of the lost>는 공백의 이미지를 애써 배열하여 의미를 재생산하는 대신 실존적 외부성의 감각 방식으로 가시화한다. 시적 텍스트와 인터뷰의 삽입은 재현 대상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기억의 공백을 메꾸는 동시에 부각시킨다. 영화는 독립성이 강한 3개의 성부들이 얽혀나가며 전개된다는 점에서 대위법으로 작곡된 음악을 연상시키지만, 구조와 나레이션은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개별 방법론들 이상으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어 곡조에 신빙성을 보탠다. 그렇게 <463 Poem of the lost>는 “높다란 담장”과 “녹슨 철조망”을 넘어 공적 기록 밖의 가능한 진술들을 찾기 위한 시도를 불완전하게나마 달성해낸다. 이는 <463 Poem of the lost>라는 독립된 작품의 시도일 뿐 아니라 재현이 쉽지 않은 역사적 기억을 향한 영화 매체의 도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억의 사원이 된다. 영화라는 기억의 사원은 물질적으로 실존하지는 않지만 상상의 유희가 가능한 곳이고, 억압된 기억들이 안착할 수 있는 장소다. 시는 그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비의적(祕儀的) 제문(祭文)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영화라는 사원에서 시라는 목소리를 통해 말할 수 있고, 기억될 수 있다.

 

463 Poem of the lost

감독 권아람

작품정보

2018 | 20min 04sec | 컬러 | DCP | 한글자막 | 영어자막 | 태국어 자막

 

시놉시스

낯선 풍경이 지나가고, 망각과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에 다다른다. 기억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불완전하다.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사람의 독백.

 

연출의도

기억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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