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상상하다
SIDOF 2019 <야광> 임철민
글 이도훈 사진 김혜미 / Festival / 2019-03-23

인디다큐페스티발 2019에서 상영되는 임철민 감독의 <야광>은 극장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다. 최초 극장에 관한 영화를 구상했던 감독은 오래된 극장에 관해 조사하던 중 그러한 곳이 영화가 상영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본격적으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극장이 하나의 장치로서 빛과 어둠, 현실과 가상, 무의식과 욕망 등을 창출한다는 이해에 다다른다. 그는 공연 버전과 영화 버전이 짝을 이루는 <야광>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과정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발산되고, 지각되고, 상상될 수 있는 다양한 감각들을 붙잡고자 했다. 그의 작품에서 퍼포머들의 신체와 언어 그리고 극장이라는 공간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거대한 하모니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극장이라는 꿈의 세계에 대한 경험적 보고서라고 할만하다.

 

 

<야광>은 2017년 12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젊은 공연예술 창작자 인큐베이팅’에 선정되어 공연 버전이 먼저 공개된 다음 이듬해 영화 버전이 공개됐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상을 발전시킨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 작업을 계속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극장이라는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 그리고 극장과 관련한 사적 체험이나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들과 마주하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영화 제작을 바탕으로 접근했지만, 몇몇 극장들에 대해 조사하고 실제 그 공간들을 찾아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형태가 조금씩 갖추어졌다. 특정 공간을 다룬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이 가진 속성, 이를테면 빛과 어둠, 몸, 영화, 또는 공적 공간과 크루징 스팟 등을 어떻게 과정에 반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공연의 형태로도 함께 기획하게 되었다. 마침 좋은 기회를 얻어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공연과 영화 둘 중 하나에 우선순위를 둔 것은 아니다. 전체 프로젝트에서 공연이 먼저 펼쳐졌을 뿐이다. 공연하면서 준비했던 것들과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고 공연 또한 영화의 과정들이 많은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연 버전에도 영화가 포함되어 있고, 영화 버전에도 공연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버전은 전체 프로젝트 안에서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과 영화로 구분하려다 보니 마치 각각의 동떨어진 작업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고 하나의 작업 속에 있는 시도들이며 연결된 흐름이 있다.

 

전작들은 연출자가 시나리오, 연기, 촬영, 편집, 사운드 디자인, 연출 등에 모두 개입하는 1인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이번 작품은 규모는 작지만 역할 분담이 명확하게 구분된 스태프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많은 부분을 스스로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꾸준히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 제작 시스템에 비하면 역할 분담이 모호해 보이고 작은 규모일 수 있지만 나는 각각의 영화에 따라 그에 적당한 구성의 스태프들과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명확한 것을 주어진 시간 안에 구현해내야만 하는 성질의 것과는 거리가 있는 작업들을 해왔고, 기존의 통상적인 시스템을 따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조금 다른 형태의 구성과 접근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동안 나는 주로 나에 대한 질문들이 영화의 질문과 맞닿는 지점에서 작품들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담당해야만 했던 것에는 작품 내적인 당위들도 작용했다. 기존의 작업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고 좀 더 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야광>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크릿 가든>과 <빙빙>의 여러 스태프들, <프리즈마>를 만들 때 함께했던 성의석 작가나 김현민 미술감독, 이재진 붐 오퍼레이터 등이 이번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다.

<야광>(2018)

극장의 경험에 관한 공연 또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호하게 들릴 수 있다. 배우들과는 어떻게 소통했는가?

기획서를 공유한 후에 개별적으로 대화를 제안했다. <야광>이 가지고 있는 여러 결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영화에 출연한 세 명의 퍼포머들이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따라서 김주현, 유정화 퍼포머는 좀 더 작품 내부적인 위치에서(김주현 퍼포머의 경우 유일하게 공연버전과 영화버전에 모두 퍼포머로서 참여했기 때문에 이 또한 차이가 있다), 위성희 퍼포머의 경우 의도적으로 거리를 만들어서 좀 더 외부적인 위치에서 출발하도록 했다. 결국 이들이 경계에 가 닿았을 때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긴 하지만 서로 역할이나 출발점이 달랐다. 이처럼 참여하게 된 시기나 수행 범위에 따라 각각의 퍼포머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조금씩 차이를 두었다. 퍼포머와 김상숙 드라마터그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구현하고 기록할 것인지를 구체화 해 나갔고, 그 과정에서 특정 공간에 대한 감각을 실제로 몸에 투사해보고 그렇게 해서 현상된 것들을 살펴보기 위해 당시의 상황이나 상태를 반영할 수 있는 ‘스코어’를 만들게 되었다. 시나리오의 형태는 이 영화에서 불러오게 될 여러 가지 층위들을 많은 부분 놓치기 쉽다고 판단했고, 불확정적인 것들을 최대한 받아들이고자 최종적으로 스코어의 형태를 선택했다. 텍스트들과 이미지로 구성했던 스코어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부분 수정을 거듭했다. 이렇게 마련된 스코어는 용도나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수정이 되면서 영화와 공연 버전에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었고, 편집이나 후반 작업의 과정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야광>은 극장에 대한 경험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 극장에 대한 경험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극장에서 크루징을 하는 남성 성소수자들의 경험이기도 하다.

극장은 빛과 어둠이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다. 남성 성소수자들이 특정 공간에서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을 크루징이라고 하는데, 이 크루징의 주된 장소 중 하나가 극장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과 크루징 간에 유사한 속성이 있다고 느꼈다. 빛과 어둠의 충돌이 마치 한 없이 드러내고 싶은, 그러나 또한 끝까지 감추고 싶은 욕망의 충돌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광>에서 다루고 있는 극장은 대체로 오래되고, 낡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찾아갔다. 그 공간의 변화를 조사했고, 그게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일부는 전자상가, 고시원, 물류창고나 노년층의 유흥공간으로 바뀌었고 건물 자체가 사라진 곳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영화로 다룬다고 했을 때 요구되는 지식과 경험이 내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리서치 과정에서 신문, 사진, 인터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공간에 배어 있는 사건과 상황들을 접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그 극장들에 대한 체험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이 가장 컸다. 나는 그 간극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만드는 현재의 과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네마에 대한 지금의 감각과 상상들을 불러오기도 하면서 과거의 시간들을 어떻게 현재와 맞붙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따라서 이 영화가 단순히 오래되고 사라지는 공간만을 주로 다루었다고 할 수는 없고 지금 혹은 미래의 장소성이나 개념에 대한 질문들이 포함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임철민 감독 ⓒ김혜미

<야광>의 초반 구성이 독특하다. 최초 검은 화면이 있고 그것이 한동안 지속된 다음 짙은 어둠 속에서 어떤 인물, 대상, 배경의 윤곽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둠 자체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다. 어둠을 일종의 시작점이나 입구처럼 삼고 싶었다. 영화 속의 빛과 어둠은 오히려 주변의 어둠을 또렷하게 인지하게 하는 면이 있고 그 사이를 시간을 통해 얇게 펴보고자 다양한 농도로 어둠을 구현하게 됐다. 실제 영화 초반부는 가상의 어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성소수자들의 성원권과 그림자에 관련한 것들도 엮여 있긴 하지만 어둠과 빛과 영화에 대한 의문들이 결국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작 <프리즈마>에서도 시청각적인 노이즈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혹시 노이즈처럼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대상에 대한 끌림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가?

작업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염두에 두진 않지만,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전반적으로 그렇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배제하거나 모른 채 할 뿐이지 노이즈는 늘 곁에 있다. 영화 후반부 노말 맵(Normal Map) 이미지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도 일종의 노이즈 사운드가 사용되었는데, 이 소리는 사실 현장에서 불현듯 등장한 노이즈였다. 배우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 한적이 있다. 그런데 녹음 장치를 통해서 계속해서 잡음이 잡혔고, 결국 그 소리 때문에 기록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했다. 원인을 찾다 보니 건물 한구석에 모뎀이 아주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소리였고 녹음장비와 마이크를 통해서만 감지될 뿐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용된 소리는 그때 녹음한 노이즈다. 또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부에 어둠과 함께 등장하는 빗소리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 빗소리는 ‘만들어낸 노이즈’이다. 오래된 극장과 관련된 조사를 하던 중에 ‘스크린에 비가 내린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접했다. 나를 비롯한 스태프 모두가 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혹시 극장이 노후해서 비가 새고 그 빗물이 스크린 위로 흘러내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바다극장의 김경주 과장님과 인터뷰하던 중에 그 말의 의미가 필름을 영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시청각적인 노이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노이즈들을 영화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보기 위해 일종의 ‘빗물 장치’를 만들었다. 16:9 표준 비율을 모방한 프레임을 만들어서 그 위로 물줄기들이 끊임없이 떨어지도록 설계했다. 공연 버전의 <야광>에서도 그 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프레임 상단에서 물줄기들이 떨어지면서 가상의 스크린이 만들어지고, 프로젝터에서 나온 빛이 그 가상의 스크린을 통과해서 반대편에 위치한 실제 스크린에 물줄기들의 그림자로 맺히도록 했다. 영화 버전의 <야광>에서는 시각적인 효과나 장치의 실체는 거두어졌고 공연을 준비하는 중에 녹음했던 빗물장치의 실제 소리들을 사용해 만든 노이즈만이 입구에 남았다.

<프리즈마>(2013)
<빙빙>(2016)

영화 초반부 약 20분 동안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두 명의 여인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화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스코어에 기록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인지, 아니면 미리 준비된 대사를 가지고 연기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스코어에 기초한 것이다. 그래서 마치 좁은 의미에서의 즉흥인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즉흥이라고 할 수 없다.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즉흥이라는 것은 오히려 관습화된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즉흥이라는 것은 다소 폭력적인 면도 있다고 느껴진다. 그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래서 오히려 범위가 중요하고 합의된 지점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스코어의 방식을 취했던 것은 기존의 위계를 지워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과정이 반영되고 또한 수행자의 상태가 고려되고, 의식이 반영되는 것, 그런 범위. 그렇게 마련된 방식 안에서 어떤 부분은 활짝 열어 젖혀 외부와 통하는 얇은 틈새를 찾는 일이다. 어떤 틈새를 찾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행위와 말과 소리가 드러난다. 혹은 그 틈새를 찾지 못하여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고, 진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 스코어에는 명확히 수행해야하는 부분도 있고 경우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하는 부분, 일종의 시처럼 구멍이 나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이 영화와는 딱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나 이미지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스코어의 빈 곳을 배우들이 수행으로 메워 나간 것으로 보면 될까?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채워져 있던 부분을 배우들과 수행하며 비우게 된 측면도 있었다. 각 단계를 거치면서 그리고 퍼포머와 스태프들과의 수행을 거치면서 거듭 수정되었고 여러 버전으로 쪼개졌다.

 

스코어를 통해서 약간의 설계된 부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다만, 그걸 가지고 촬영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서 그리고 그 당시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겠다.

그렇다. 특히 공간의 속성이나 상태가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촬영 현장 자체가 주변 상황의 변화에 열려 있었던 것 같다. 힘든 점은 없었나?

하나의 지점을 향해 명확한 무언가를 기록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촬영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게 어려웠다기보다는 좀 달랐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임철민 감독 ⓒ김혜미

초반의 어두운 화면을 한참 보여주고 난 다음에 그 어두운 장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밤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데이 포 나이트(day for night)로 촬영한 것의 결과물을 먼저 보여주고 그다음에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처럼 영화 제작 과정을 드러내는 메타적인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데이 포 나이트로 촬영한 장면도 그렇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그 과정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다. 이 영화가 외부와 관계하는 방식이 그렇다고 판단했고, 영화라는 덩어리가 있다면 그것을 쪼개서 각각의 단면이 드러나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미지를 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이나 발견하는 것들을 좀 더 중요하게 다루게 된 것 같다.

 

영화가 중반부로 넘어가면 오래된 극장들과 남성 성소수자들이 크루징 스팟으로 활용했던 공간들이 등장한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촬영할 때는 주로 공간의 구조를 의식했다. 편집하면서 촬영한 클립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보니까 구조들은 모두 파편화 되어서 또다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촬영된 것들은 대부분 창문이나 통로처럼 텅 비어 있지만, 간간이 인기척이 감지되거나 생활소음이 들리는 것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들이 그 공간들의 속성인 것 같기도 하다.

 

오래된 공간들도 과거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영광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 영화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일단 리서치를 위해 찾아갔을 때 그 공간 중에 사람이 붐비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 공간의 건축적인 구조나 외양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창문이나 통로를 주로 찍었던 것은 촬영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편집하면서 카메라가 그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앞서 <야광>이 배우의 신체를 통해서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또한 이 작품은 공간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경험 혹은 남성 성소수자의 경험을 표현하거나 매개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면 어떤 공간이 등장해도 그곳에 대한 구분이나 설명이 없다. 엔딩크레딧을 통해 공간에 대한 정보들이 통째로 나열될 뿐이다. 특정 정보들을 굳이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공간의 이미지를 연결했다. 단순히 어떤 공간을 보여주고 설명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상(像)들이 그 공간을 드나들 수 있게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마치 극장이 영화가 깃드는 하나의 몸체인 것처럼.

<야광>(2018)

3D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고 그 이미지를 객석에 앉은 위성희 배우가 관람하는 장면이 있다. 그 3D 애니메이션을 스스로 ‘낙원’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그 낙원 애니메이션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낙원을 구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좀 휑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종로에 게이 바가 밀집된 장소의 지명인 낙원동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소비하는 성경에서의 낙원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건축물의 조감도를 만드는 렌더링 툴로 작업했다.

 

디지털 그래픽 이미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낙원은 지극히 인공적인 구성물일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낙원은 현실 저 너머에 있지만, 현실 저 너머에 있다는 것조차도 불확실하다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런 의미도 부분적으로 포함 하는 것 같다. 낙원이라는 개념자체가 모호하기도 하고 분명하게 구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더라. 실제 영화를 보면 그냥 휑한 상태로 공간만 그려져 있지만, 작업 단계에서는 여러 컨셉의 이미지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행복한 얼굴로 여기저기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도 있었고, 더 울창하고 무언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그런 이미지들도 있었다.

 

낙원 이미지가 나오고 난 다음에 실사와 컴퓨터 이미지를 합성한 것 같은 영상이 나온다. 그 이미지들은 어떻게 작업한 것인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데이 포 나이트 이미지도 그렇고, 3D 애니메이션도 그렇고, 결국 가상과 관련된 것들을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3D 이미지가 등장할 때 최종 이미지와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미지가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렌더링할 때 완성된 이미지가 추출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화려한 색채의 노말 맵 렌더링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잠깐 부연 설명을 하자면, 3D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폴리곤(polygon)을 가볍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폴리곤을 절약하기 위해서 평면의 이미지를 폴리곤에 씌워서 가상의 깊이감이나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그걸 매핑이라고 한다. 노말 매핑은 그런 매핑 과정 중 한 부분이다. 노말 매핑은 기존의 이미지에서 레드, 그린, 블루 값을 분리하고 그 값들이 각각 밝은 톤, 중간 톤, 어두운 톤으로 인식하게끔 전환하는 방식으로 미세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실제로 촬영된 이미지들이 푸른색으로 변환된 것처럼 나오는 장면으로 연결되는데 그 장면들은 3D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말 맵의 이미지를 추출한 것과 달리 실사로 촬영된 이미지를 노말 맵화 시킨 것이다. 이 방식은 실사이미지를 3D로 합성하거나 VFX 같은 효과들을 적용할 때, 그러니까 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야광>(2018>

<야광>의 전반부는 무언가를 찍는 과정을 보여주고 후반부는 무언가를 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두 부분을 연결해보면 감독님의 관심사가 영화를 찍는 것에서 영화를 그리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가?

관심은 많지만, 다음 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3D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부분부터 위성희 배우가 객석에서 그 이미지를 지켜보는 모습이 나온다.

해당 씬은 이 작품이 단지 만들어지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상영의 기제까지 포함된다고 판단한 이후에 마련된 장면이다. 극장에 상영이 되는 영상과 그 상황 또한 스코어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다.

 

위성희 배우 분의 리액션이 나오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등장한다. 이 엔딩 크레딧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배경음으로 사용한 곡이다. 엔딩 크레딧 정보를 보면 백현수, 이주찬 씨가 작곡한 <숨바꼭질>이라고 되어 있다.

공연을 준비할 당시 그룹 트와이스의 신곡을 공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공모전은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그 공모전에 참여한 곡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 곡들 중 유독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갔다. 그 곡은 공모전에서 탈락한 곡이었지만 제목에 이끌려 그 곡을 들게 되었고 남성들이 녹음한 뒤 피치를 올려 여성의 목소리로 디지털 전환한 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가사가 마치 크루징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상황을 표현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드라마터그와 그 곡을 공유하고 상의한 후에 원작자에게 연락했고, 거의 공연 직전에 작곡가와 연락이 닿아서 기적적으로 그 곡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 공연에서는 엔딩 부분에서 이 곡이 흐르고 빈 무대 위에 파트별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도록 조명을 구성했는데, 영화에서도 그 곡이 마지막 부분을 장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음악이 매우 인상적이라서 인터넷 음원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정식 음원으로 출시된 곡은 아니고 그 공모전 사이트에서 스트리밍만 가능하다. <숨바꼭질>은 곡 자체가 K-Pop 장르에 속한다. 이 장르는 곡 자체에 이미 몸짓을 포함하고 있다. 만들 때부터 아이돌 그룹들이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몸짓이나 댄스가 영화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 곡을 통해서 연결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는 아이돌 걸그룹 커버 댄스가 유행하고 있고 다양한 걸그룹 댄스 커버팀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와 안무를 스스로 수행하고 온라인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유한다. 더불어 <숨바꼭질>이 후반부에 배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영화 중반부에 구 파고다극장이었던 장소가 나오는 부분에서 보니엠의 <리버스 오브 바빌론(Rivers of Babylon)>이 흘러나오는데 그 곡과 대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다듬어진 것은 없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 만들어나갈지 결정되고 나면 그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철민 감독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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