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배우입니까?
SIDOF 2019 <보이지 않는 배우들> 장문영·고지혜·유유림·노주연
글 손시내 사진 김혜미 / Festival / 2019-03-17

네 명의 배우와 감독이 연기, 영화, 삶에 대한 각자의 고민에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는 <보이지 않는 배우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가 보려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 영화는 네 배우가 좀비 연기를 하는 오디션 영상을 찍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곧 그들의 일상으로, 또 새로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삶의 속성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동력이다. 물론 배우들과 감독의 끊임없는 질문(‘나는 배우인가 아닌가’,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이 곧바로 규정이나 해답의 형태로 나아가진 않는다. 대신 섣불리 풀 수 없는 그러한 질문과 고민은 외려 끈질기게 마주 보아야 하는 무엇으로 남겨진다. 채형식 감독과 유유림, 고지혜, 노주연, 장문영 배우를 만나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제작 과정을 들었다.

 

2017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드라마 <킹덤>의 좀비 연기 오디션이 구체적인 계기였나.

채형식_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좀비 오디션 공고를 봤다. 오디션 준비 영상을 찍는 장면으로, 배우에 관한 영화가 시작된다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유림 배우에게 제안했다. 혼자서는 좀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한다면 할 수 있겠다고 해서 다른 배우들에게도 말을 건넸고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배우와 연기, 영화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가.

채형식_ 그게 내 영화적 주제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가 배우라는 특정한 직업이나 연기라는 활동과 잘 어울리고 또 서로를 은유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영화를 만든다면, 그 주인공들의 직업이 배우일 것이라는 생각이 전부터 있었다. 배우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연기할 때, 연기하는 순간의 그 사람은 배우 자신일까 아니면 연기하는 역할일까 궁금했다. 그건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누군가의 자식으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배우의 연기를 다루는 것은 우리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연결이 잘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학 동기인 네 배우는 ‘플레이팩토리 우주공장’이라는 극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좀비 연기 오디션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노주연_ 솔직히 고민했다. 함께 영화를 찍고 싶긴 한데 좀비 연기 오디션이 부담이 됐다. 그런데 언니들과 다 같이 뭔가 해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결심한 것 같다. 그때 오디션 영상을 촬영하고 다 같이 담이 결렸다.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고지혜_ 배우로서 활동할 기회가 적으니 배우로서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이런 영상작업에 대해 제안을 받았고 해보고 싶었다. 좀비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유유림_ 처음엔 내가 인생에서 좀비 연기를 할 일이 있을까 싶더라. 그런데 한편으로 그게 내가 연기하는데 있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했고.

장문영_ 이미 다 나온 것 같다. (웃음) 실제로 오디션 준비하는 나를 보면 좀 웃기고 귀엽다. 오디션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계속 대사 연습을 하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일을 하는 나를 보면 뇌가 두 개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설정이 흥미로웠다.

구상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시작됐지만, 영화에 대해서 혹은 서로에 대해서 원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유유림_ 회의에서 그간의 일상에 대해 얘기하고 촬영할 것을 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그럴 때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스스로 해보는 게 좀 어렵더라. 배우라는 직업이 자립심이 부족할 때가 있다고 느꼈다.

채형식_ 영화의 내용보다는 방법을 정하고 싶었다. 배우들의 적극적인 의견에 의해 방향이 흐트러지고 예상치 못한 쪽으로 영화가 흘러가길 원했다. 그런데 편집을 하다 보니까 배우들이 그 정도로 적극적이진 않았더라. 하지만 다시 한 번 꼬아서 생각해보면, 그랬기 때문에 결국 내가 원하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 셈이다. (웃음) 배우들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일이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기도 하듯이, 이 영화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노주연_ 나는 평소에 내 이야기를 잘 못 하는 편이다. 한데, 촬영하면서 속 깊은 얘기,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보통 사람들은 방송이나 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배우의 모습만 접하지 않나. 반면, 연극배우나 배우를 준비하는 사람의 생활은 알기 어렵다. 나도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는 배우들이 참여하는 연극 <움직이는 사람들>의 준비 과정도 담고 있다. 연출자와 배우들이 공동 창작한 작품이라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구성이 떠올랐다. 시기가 겹친 건 우연이었나.

채형식_ 우연이다. 영화 회의는 8월에 시작했고 연극 연습은 9월 말 정도에 들어갔다. 연극을 한다기에 어떤 작품이냐고 물어봤는데 ‘권리장전, 국가본색’이라는 정치극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작품이고 공동 창작이라고 하더라. 연극 회의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궁금했고,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서 연극 회의 장면을 찍었다.

유유림_ 모두의 일상이 영화 회의에서 연극 연습으로 옮겨갔다. (웃음)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게 좀 아쉽기도 했다. 연극 연습이 한창일 때는 다들 정신을 못 차려서.

 

영화 작업을 잠깐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채형식_ 배우들은 그런 생각이었나?

장문영_ 그러고 싶었다. (웃음) 그때는 내 공연도 있고, 가르치는 학생들 공연도 있고. 일이 굉장히 많았다. 촬영이 거의 끝나갈 즈음엔,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나도 하고 싶은 것을 더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고지혜_ 다 마찬가지였을 거다. 영상과 연극 작업을 하는데다 돈도 벌어야 하니까.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이 연거푸 일어나니. 사실 이것 자체가 우리 삶이 아닐까 싶은데. 핏기 없는 얼굴로 정신없이 헤매는. (웃음) 그렇게 치열한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담긴 것 같다.

채형식_ 연극 공연 자체가 중요했다. 그걸 축소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영화 후반에는 연극을 파투 내는 장면을 일부러 연출해서 찍었던 거다.

채형식 감독 ⓒ김혜미

연극 회의 장면과 네 배우의 일상 혹은 일상의 재구성 장면이 교차되며 영화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장면들이 때로 서로에 대해 설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연기를 가르치는 등 일을 하는 장면들이, 노동으로서의 예술이나 연기 외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회의 장면과 붙어있는 식이다.

채형식_ 연극 회의에서 하는 발언들과 일상의 모습들은 매치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편집을 하면서 보니, 연극 회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마치 대본의 지문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지문을 스스로 읽고, 후에 그에 대한 행동이 나오는 것처럼 편집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유림_ 그렇게 연결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일상적인 장면을 찍을 때는 옆의 카메라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방 청소 할 때도 좀 더 집중하게 됐다. (웃음) 그렇게 살면 일상이 좀 달라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나는 예전엔 막연하게 특별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꼭 배우가 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시나리오의 지문이나 연극 대본을 펼치듯 내 삶을 펼치면 그게 바로 특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고지혜_ 나는 말없이 집을 나서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장면들이 많다. 내가 말을 하는 건 연극 회의 장면에서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일상에서는 행동만 보이지 그 사람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예술이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굳이 말하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그걸 말하는 장면이 어떤 면에서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각자 어떤 일상을 드러낼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텐데.

유유림_ 그냥 평소에 하는 일들 위주였다. 청소를 하기도 하고, 공연을 준비하기도 하는. 한편으로는 내가 연극을 전공했고 배우라는 것을 좀 더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담고 싶기도 했다.

노주연_ 집 청소가 주된 일상이라 그런 평소 습관에서부터 접근했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 배우라는 걸 자각하기 위해 무용 같은 것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런 장면들도 담고 싶었다. 영화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내 얘기는 엄마에 관한 거였다. 엄마와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내 인생에서 엄마가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엄마와 만나는 장면을 찍자고 제안 받았을 때는 고맙기도 했다.

고지혜_ 나는 가족과 함께 산다. 그래서 집 안에 내 공간이 없고, 또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때는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운동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운동가는 길이나 운동하는 장면을 찍어보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서 헬스장 내부에선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가족도 찍어보고 그걸 더 드러내 보는 게 어떻겠냐고도 했지만 부담스러워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현관 밖으로 나오거나 이동하는 장면들을 주로 찍게 됐다. 나중에 완성된 편집본을 보니 그 안에 계절이 다 들어있고, 그 안의 나도 많이 달라져 있더라. 이상한 느낌이었다.

장문영_ 처음에는 내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참 별로였다. 나는 늘 정신이 없고 진득하게 일을 못 한다.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들을 주로 찍은 것 같다. 판소리를 배우는 장면을 찍은 날은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서 좀 아쉬웠다. 그 전 주가 진짜 재밌었는데. (웃음) 나에게도 반복적인 모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편집본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많이 찍혀있어서, 그런 내 모습을 좀 더 괜찮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노주연 ⓒ김혜미
고지혜 ⓒ김혜미

연극 회의에서 픽션과 다큐멘터리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이 있다. 연극에 실제 현실을 어떻게 인용할 것인지, 극의 구성 원리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다. 연극에서의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에 대해 듣고 싶다.

고지혜_ 대학원에서 만난 연출가 선생님께서 다큐멘터리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작업을 하신다고 하더라. 연극이라면 대본이 있고 그걸 배우들이 연습해서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사회적 이슈들을 기록하고 문제제기 하기 위한 기록극의 형태에 픽션과 같은 연극적, 허구적 장치가 삽입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걸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하는지 픽션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도 있고,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규정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우리 연극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논의했다.

유유림_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정말 다큐멘터리 영화만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연극에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그게 뭘까 싶었다. 무대에 올라가면 말 그대로 재구성이 되는데 그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니까 그럼 다큐멘터리 작업인가 하는 혼란이 생기더라.

고지혜_ 우리가 한 연극 작업이 현실을 넘어선 이상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다. 우리는 현실을 살고,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실 문제에 대해 계속 관심이 가더라.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주연_ 연극이든 영화든 다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나. 픽션의 요소가 들어가긴 하지만 나의 말로 대사를 쓰고, 나의 모습이 들어가고, 나의 일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다큐적인 부분들이 크다고 생각한다.

채형식_ 내가 처음 본 다큐멘터리적 연극은 <이반검열>이었다. 주제를 축약하면 대한민국에서의 혐오의 역사다. 초반에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세월호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읽는데, 나는 처음 보는 연기 방식이었다. 그 사람들에 빙의되어서 심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말을 인용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느낌을 섞는 것 같았다. 담담한데 미묘했다. 다큐멘터리 연극을 정의하기 어려운 건, 다큐멘터리가 어떤 기술이나 정해진 형식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대신 다큐멘터리라는 건 바라보는 방법이나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 해석을 영화에 다시 한 번 인용하고 그러한 고민들을 연결해보고 싶었다.

 

그 태도란 어떤 것인지 더 설명해줄 수 있나.

채형식_ 자기 자신을 인용하기도 하고 다루는 대상에 자기 자신을 포함하기도 하는, 그렇게 자꾸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연극을 다시 예로 들면, 혐오 받았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증언을 읊으면서도 그걸 읊는 자신을 다시 투영해서 연기하는 것. 그런 걸 다큐멘터리적 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유림 ⓒ김혜미
장문영 ⓒ김혜미

일상을 찍은 장면에 관해 묻고 싶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장면이나, 갑자기 비가 와서 우산을 펴는 장면을 보면, 컷이 나뉘어있는데 동작이 연결되는 극영화적인 방식으로 찍었다. 여기에 대한 연출적인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걸 연기한 배우들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채형식_ 회의를 통해 찍기로 결정한 장면들은 당연히 극영화처럼 구성하려고 했다. 그건 행동을 반복하기 위해서였다. 동작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행동을 최소한 두 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반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기 연습을 하고 촬영 리허설을 할 때도 그런 반복을 하지 않나. 만약 일상도 반복될 수 있고 그걸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면, 삶도 더 정성스럽게 집중해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노주연_ 가장 처음엔 집에 들어와서 바닥을 닦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했는데, 그땐 카메라가 많이 의식됐다. 내 엉덩이가 너무 그쪽을 향해있는 게 아닌가 싶고. (웃음)

유유림_ 집에서 찍을 때 엉덩이는 항상 의식된다. (일동 웃음)

노주연_ 촬영이 계속되면서는 카메라가 익숙해지고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됐다.

채형식_ 반복적으로 촬영했던 건 어땠나. 다큐멘터리처럼 카메라 한 대 들고 집에 와서 청소하는 걸 찍는데, 중간에 다시 한 번만 해달라고 주문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고지혜_ 이미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고 실제로 가야 할 곳이 있어서 가고 있는 나의 상황 자체가 다큐멘터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반복은 그걸 담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노주연_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의 촬영 방법이 궁금하긴 했다. 그 영화들도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건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놓고 찍는 건지. 그렇다고 우리의 촬영 방식이 거북하진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웃음)

고지혜_ 나는 야외 촬영이 많아서 예외적인 상황도 많이 발생했고, 촬영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그냥 빠르게 지나가던 공간들에 대해 좀 더 인식하게 됐던 것 같다.

채형식_ 1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걸려서 갔다. 그런데 나는 그게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10분을 느리게 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반복하면서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건 어땠나. 어떤 순간에 나 자신이자 그걸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하다는 건 어떤 경험인가.

유유림_ 새삼스러운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있으면 마냥 나로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니까. 반대로 대본이 있는 작품으로 연기를 할 때 나를 마냥 버리는 것도 아니다. 궤변일 수 있지만, 영상에 담긴 건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또 나인 것 같다.

장문영_ 촬영을 딱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앉았더라, 내가 핸드폰을 켜면 어떤 걸 먼저 했었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면 재미있어지고 좀 더 편안한 내가 되는 과정이었다.

고지혜_ 다큐멘터리 연극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꼈던 게 그런 지점이었다. 난 사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대사를 외우고 무대 위에 설 때 부담감도 많이 느낀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적인 연극 공연을 할 때는 되게 수월한 거다. 그전에는 나로서 온전히 무대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하더라. 이 영화도 비슷한 것 같다. 부담도 덜 되고 긴장도 덜됐다.

고지혜 ⓒ김혜미
노주연 ⓒ김혜미

후반부 장면들이 흥미롭다. 방을 닦으면서 엄마에게 말하듯이 독백하고(노주연), 어릴 적부터 쓴 일기장들이 가득 담긴 가방을 버리거나(유유림),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며(장문영), 의류 수거함 앞에서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를 건넨다(고지혜). 각자가 선택한 다양한 형태의 고민과 다짐이다.

유유림_ 이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졌던 고민의 마무리였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는데 거기에 계속 반복되는 다짐들이 있었다. 현실의 나는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걸 몇 년을 되풀이해서 반복하고 있더라. 너무 지겨워져서, 이 영화작업 안에서 영화를 빌미로 그 일기들을 버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태우자는 얘기도 했었다. (웃음) 결국엔 일기장들이 든 캐리어를 길에 버리는 걸로 했는데, 사실 그것도 가공이다. 실제로는 버리지 않았거든. (웃음) 그렇지만 영화 속의 유림이는 그걸 했으니까 조금은 해소감이 느껴졌다.

노주연_ 나는 늘 집안일이 끝나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와 통화한다. 그런 내 생활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장면을 선택했다. 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적합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채형식_ 주연 배우에게는 어머니가 중요한 인물이었다. 통화하는 걸 계속 찍었고, 또 그때는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다시 올라온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니한테 하고 싶었던 말로 시작해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길 바랐다. 유림 배우가 ‘이 영화를 빌미로’ 라고 했는데, 배우들이 이 영화를 핑계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문영_ 그 장면을 생각했을 당시에는 속상함과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까지 원하는 만큼 연기를 하기 위해서 다른 많은 일을 해야 했던 것, 또 기회가 없는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걸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정말 왜냐고 질문하고 싶었다. 난 이렇게 연기가 하고 싶은데 왜 할 수 없는 거지?

고지혜_ 집을 나서는 장면을 찍을 때 의류 수거함에 신발을 버릴 일이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렇게 한 번 등장했던 의류 수거함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찍게 된 거다. 난 이제 배우를 버릴까 말까, 이 일을 그만둬야 할까 아닐까를 늘 고민하곤 한다. 그래서 버린다는 행위에 내 감정과 상태를 연결지어보게 됐다.

 

‘보이지 않는 배우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채형식_ 일본 배우 요시 오이다의 연기론을 다룬 <보이지 않는 배우>라는 책이 있다. 영화를 만들기 훨씬 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연기를 하듯이 집중해서 살 수 있다면 인생도 잘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작업 후반부에 제목을 고민하다가 그 책이 떠올라서 인용했다. 한편으론 매체나 무대에서 활발하게 보이지 않는 배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불 꺼진 극장에 들어가야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내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고지혜_ 배우라는 건 보이는 직업이고 존재인데,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붙어서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나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배우이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니까.

노주연_ 나도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장문영 ⓒ김혜미
유유림 ⓒ김혜미

영화를 촬영하고서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 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유유림_ 새롭고 얼떨떨한 기분이다. 이제 지인이 아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이지 않나. 긴장도 좀 되고, 그런데 사람들이 안 보면 또 어떡하나 싶기도 하다.

노주연_ 신도 났다가 겁도 났다가 신기하기도 했다가 기분이 롤러코스터다. 오늘 오면서도 ‘우리가 무슨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니’ 했다.

고지혜_ 나도 너무 믿기지 않았고 너무 놀랐다.

유유림_ 거의 칸영화제에 간 것처럼. (웃음)

고지혜_ 정말 너무 좋았다. 이 영화가 내게 개인적으로 주는 의미도 크고, 상영이 된다니까 기분이 너무 좋고 신나더라.

장문영_ 나도 그렇다.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긴 거니까, 내 인생에. 영화가 맘에 안 드는 사람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그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많이 있었던 일이다. (웃음)

채형식_ 음... 다행이다. (웃음) 이걸 상영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듣고 하는 것 또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 각자 세워둔 계획이 있을 텐데.

채형식_ 계속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똑같다. 요즘에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고 있는데, 거기 젠더 수행성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수행성이라는 게 영어 단어로 ‘performativity’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젠더도 수행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면,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연기하는 대로 바로 그 사람이 된다는 내 아이디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주제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아직은 좀 더 기다리는 중이고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노주연_ 나는 내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 연기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어도 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공동창작을 하느라 대본을 가지고 하는 연기를 안 한 지가 오래 됐다. 그러다 얼마 전에 동기와 함께 대본을 보고 연습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다시 흥미가 좀 생겨서 뭐가 됐든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을 지피고 있는 중이다.

고지혜_ 개인적으로 2018년도가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많이 극복해나가고 있다. 요즘은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작업도 많이 해보고 싶다.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는데 그것도 열심히 하고 싶고, 나에게 2019년은 이것저것 많이 잘해나가고 싶은 해이다.

유유림_ 우리가 같이하는 극단에서 여기저기 지원 사업에 접수했다. 자본의 힘을 빌려서 공연을 하고 싶기 때문에. (웃음) 4월 전에는 결정이 날 것이고, 만약 잘 안 되면 또 한 푼 두 푼 모아서 공연을 하지 않을까.

장문영_ 나는 연기를 가르치면서 수입을 얻는다. 연기를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든 거다. 그런데 이번에 수업계획서를 쓰면서, 아이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소개하고 가르치려면 내가 더 철저하게 고민해야 함을 절감했다.

채형식_ 우리 영화 회의는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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