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상(歪像) 그리고 맹점(盲點)
SIDOF 2019 <모스크바 닭도리탕>
정경담/ 인디다큐 관객모니터단 / Ground / 2019-03-16

오재형 감독은 하나의 경향으로 도출해내기 어려운 작업을 지속해왔다. 강정 해군기지 사태를 다룬 <강정 오이군>이나 세월호 관련 이미지들을 로코스토핑 기법으로 재구성한 <블라인드 필름>, 공황장애 환우들과의 담론장을 꾸리기 위해 제작한 모큐멘터리 <덩어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음악, 미술, 영상, 애니메이션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다. 주제나 작업 방식에 따라 범주화하는 것이 불필요한 구분 짓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제에 출품된 단편 작품들만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하는 것 또한 부족하고 부당하다. 앞서 언급한 영화 작업뿐 아니라 그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브이로그, 피아노 연주, 영상 작업과 라이브 음악을 결합한 퍼포먼스까지 모두 고려하는 것이 작가 오재형을 아는 데 더 용이하고 합당하다. <강정 오이군>에 등장했던 작가 자신의 캐릭터 ‘오이군’이 <덩어리>에 재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을 주제에 따라 공적이거나 사적인 다큐멘터리로 구분하는 것도 말장난에 가까워 보인다. 말하자면, 오재형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이번 신작전에서 공개하는 <모스크바 닭도리탕> 역시 그의 이전 작품들을 통해서는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아주 느릿느릿하고 어눌하고 정리되지 않은 잠꼬대 같은 목소리로 뒤덮여 있다. 화자는 굳이 문장을 정제하려 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더듬거리기도 한다. 내레이션이 견인하는 서사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불가해하며, 등장인물들은 어떻게도 사용되지 않고 슬쩍 모습을 비추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설정들은 내레이션을 통해 유추할 수만 있고 이미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이미지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이 패키지 유럽 관광에서 따온 푸티지들을 불연속적으로 배치한 것임은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도 사운드도 파편화되어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두 트랙은 동시에 재생되며 간헐적인 몽타주를 이뤄낸다. 별개의 맥락을 가진 온갖 쇼트들은 이렇게 모이면서 하나의 방향성을 갖고, 하중을 갖춘다. “맨 위에서는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고조되는 오페라 교향곡의 볼륨과 급격한 줌 인, “가장 꼭대기 층”과 날아오르는 까마귀 이미지, 혹은 “그 말을 들으며 점점 위로 올라”갔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지옥도 기둥의 틸트업 이미지가 등장하는 식이다. 즉 이미지와 내레이션이 일시적으로나마 공유하는 부분은 어렴풋한 형체나 모티브, 방향, 분류 정도에 그치고, 디테일은 모두 불일치하게 되면서 결국 관객에게는 ‘어떤’ 느낌의 잔상만이 남는다. 맥락 없는 파편으로 진행되는 (비)서사, 환상에 가까운 이미지, 불가능한 인과들, 흑백의 톤 같은 꿈의 속성들이 그대로 적용된 이 영화는, 감상 후에도 어지럽고 기억나지 않는 꿈의 끝에 깨어나 꿈속을 더듬어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회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재형 감독은 <모스크바 닭도리탕>을 하루에 버스를 열 시간씩 타고 유명한 미술관과 멋진 폭포를 관광하는 북유럽 패키지여행에 다녀와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첫 도착지인 모스크바에서는 식사로 닭도리탕이 제공되었고, 코펜하겐 해변에는 등산복을 입은 한국인 관광객이 즐비하다. 이 무국적 혼란 앞에서 그는 ‘장소성이 파괴되는 생경한 이미지들’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후 일상에서도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에 휩싸이고 있음을 고백한다. <모스크바 닭도리탕>에 등장하는 푸티지들이 의미와 맥락을 알 수 없는 조악한 앤티크 풍 액자 프레임 속에서 재생된다거나 난데없는 꿈의 서사와 어지럽게 합치되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혼란한 경험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여행의 감각, 그 자체를 꿈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종반부의 푸티지에는 이전의 것보다 디지털 조작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잔뜩 흐리고 이상한 우주 비행, 유화 캔버스 표면의 모서리에서 일어나는 카메라의 급격한 왜곡, 끝을 알 수 없는 빠르고 많은 하강의 이미지들. 모호하게나마 힘겹게 이어지던 서사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아마도 거의 유일한 외부 소스인 듯한 우주 비행 푸티지는 매우 흐릿한 해상도로 조정되어 있고,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서서히 컬러 화면으로 깜빡이기 시작한다. NAS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마이크로중력은 시신경을 팽창시켜 비행사들의 망막과 안구 후부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으며, 이는 근거리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경우 손상된 안구 조직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여행 이후 “목적지를 살펴볼 때마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던 그의 말을 곱씹어본다.

 

 

모스크바 닭도리탕 

감독 오재형

작품정보 2019 | 7min 47sec | 컬러+흑백 | DCP | 자막없음

 

시놉시스

나는 꿈속에서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이다. 어딘가로 초대되었지만 마련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위층에서 국물을 튀기며 쏟아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누군가는 내게 부당한 심부름을 시킨다.

 

연출의도

부모님과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유명한 미술관을 가고 멋진 폭포를 보았지만 하루에 버스를 10시간씩 타는 일정이었다. 첫 도착지인 모스크바에서는 식탁 위에 닭도리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펜하겐 해변에서는 등산복을 입은 한국인들이 가득했다. 이동하고 이동했다. 잠시 머물렀던 곳에서는 장소성이 파괴되는 생경한 이미지들만 눈에 밟혔다. 요즘 나는 별일 없이 작업하며 살고 있지만 문득, 자꾸,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살펴볼 때마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

 

2019.03.23(토) 20:30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 GV

2019.03.25(월) 15:30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 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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