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바탕의 시대극이라 하기엔 희귀하고도 괴이쩍다. 영화가 시작하면 여왕의 사적 공간이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는 불손하면서도 위엄있게 코믹하면서도 잔혹하게 권력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공적 역사를 가시화하는 대신 이를 알레고리화 한 군주의 사생활을 기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클로즈업한다. 고관대작이 즐비한 엄숙한 공간보다 호색적이면서도 동물적 본능이 가득한 공간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합리적 이해로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 본성과 행동의 상관성을 그려온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최신작은 역사물의 전형을 깬 과감한 연출과 호사스러운 볼거리로 관객의 기대를 한껏 높인다.
여왕의 침실을 차지한 자가 권력을 얻는다.<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권력을 둘러싼 왕실풍 퀴어 잔혹극으로 전개된다. 비만과 통풍을 수반한 육체와 우울증이 만성화된 정신의 소유자인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 실세인 멀버리 공작부인(레이첼 와이즈), 공작부인의 먼 친척이자 노골적으로 신분 상승을 탐하는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등 개성과 욕망이 뚜렷한 세 여성이 형성하는 권력 무게추의 이동이 사뭇 흥미롭다. 광각렌즈 및 어안렌즈의 활용, 극도의 슬로우 모션, 복합적 디졸브를 동반한 카메라워킹은 가까이서 본 권력의 외설성을 과잉된 양식으로 왜곡시킨다.
인물을 담은 화면은 미묘한 각도의 주관적 앙각 쇼트로 불안과 긴장을 한껏 조성시킨다. 온통 과거(앤이 기르는 17마리의 토끼는 사산되거나 죽은 그녀의 아이들을 상징한다)에 둘러싸인 여왕뿐 아니라 오리 경주에 열광하는 바보 같은 고관대작을 관통하는 동물적 상상력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전작의 특징과도 맞닿아있다.
해외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막장 유머로 가득한 고약하고 매혹적인 영화라는 평으로 압축된다. 무엇보다 주역을 맡은 세 여성의 열띤 연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앤 여왕을 맡은 올리비아 콜먼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를 위시로 하여 2019년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에 이르기까지 11개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아름다움과 생의 약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병든 군주의 히스테리를 극적 과장 없이 전달한 콜먼의 연기는 상찬받아 마땅하다. 신랄하고 냉담한 여왕의 연인 멀버리 공작부인 역의 레이첼 와이즈는 마키아벨리적 대리 군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만, 신분 상승에 목마른 시녀 역의 엠마 스톤은 예상 가능하고 평이하게 디자인된 캐릭터 탓인지 연기에서도 신선감이 떨어진다.
동시대 그리스의 ‘기괴한 뉴웨이브’의 대표주자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번 영화로 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선 음담패설과 비속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분변, 토사물, 체액은 기존의 왕실 이미지를 위생학적으로 전복시킨다. 왕/아버지/가부장을 정점으로 한 프로이트적 욕망의 삼각형은 히스테리의 주체이자 레즈비언인 여왕을 정점으로 하여 재해석된다. 기호놀이와 젠더적 전복 구도는 사뭇 흥미롭지만, 영화 표층에서의 과잉과 장난이 심오한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기 만족적 비주얼과 냉소에 머물고만 인상이다. 각본, 미술, 촬영 등 제작진의 면모를 살펴볼 때 란티모스의 작가주의적 산물이기보다 영미권 사극의 괴이한 돌연변이에 가까워 보인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각본 데보라 데이비스, 토니 맥나마라 출연 올리비아 콜먼,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19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