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집> 또한 라스 폰 트리에의 전작들처럼 영화를 둘러싼 스캔들이 먼저 들려왔다. 2011년 <멜랑콜리아>를 들고 칸영화제를 찾았을 때 라스 폰 트리에는 기자회견 중 히틀러를 이해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고, 결국‘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돼 영화제에서 퇴출됐다. 2017년에 터져 나온 비욕의 미투(#MeToo) 폭로는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위악적인 캐릭터로 라스 폰 트리에를 변호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당혹감을 안겼으며, 이는 그의 감독 이력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는 라스 폰 트리에였다. 2018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은 관객에게 또다시 끔찍한 혐오를 선사했고, 그는 관객의 야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살인마 잭의 집>의 구성은 감독의 전작 <님포매니악>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이다. 연쇄살인마 잭은 ‘버지(Verge)’라는 남자를 따라 지옥의 맨 밑으로 내려가는데, 그동안 잭은 버지에게 자신이 12년 간 저지른 살인 중 결정적인 다섯 개의 사건을 들려준다. 영화는 잭이 얘기하는 다섯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그 사이 잭과 버지의 논쟁이 끼어든다.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지옥으로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영어로 Virgil)를 노골적으로 참조하는 이 ‘버지’라는 인물은 자신의 살인 행위를 끊임없이 예술가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잭의 이야기에 이성과 도덕의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님포매니악>에서 조가 색정광으로서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주석을 덧붙이던 셀리그먼을 비웃었듯이, 잭 또한 버지의 의문과 해석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간다.


블랙 코미디가 가미된 호러 무비와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 에세이 영화를 오가며, <살인마 잭의 집>은 잭의 염세적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사악한 지구의 종말과 그로 인한 죽음을 기다리는 듯이 보였던 <멜랑콜리아>의 저스틴처럼, 잭 역시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별 미련이 없다. 그에게는 죽음이야말로 영원의 계기이며, 예술의 출구다. 예술가의 자의식으로 완벽한 작품으로서의 집을 지으려고 시도하는 잭은 감독 본인이 강하게 투영된 캐릭터다. 이전에 자신이 연출한 영화 장면을 의도적으로 삽입하는데서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시체를 냉동실에 보관하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시체를 조작하는 설정 또한 감독으로서의 그의 배우 연출, 그리고 그에 따른 배우들과의 갈등과 관련된 일화들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영화가 묘사하는 행위들의 수위 자체보다 관객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 지점으로 보인다.
이전 영화들에서 이미 그는 염세적 세계관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안티크라이스트> 이후에는 남성-그리스도-이성의 세계가 지닌 위선과 허점을 지독한 위악적 제스처와 함께 여성을 적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내세우며 파헤쳐 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잭의 말을 빌어 직접적으로 영혼-천국-이성의 반대편에 육체-지옥-온갖 위험한 것들을 대립시키는데, 아이콘과 함께 예술을 바로 이 ‘온갖 위험한 것들’에 위치시킨다. 그런데 나치 독일 공군의 아이콘이었던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를 완벽한 예술로 찬양하면서, 동시에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학살의 주범들을 바로 이 아이콘으로서의 예술을 만드는 자들이자 영혼-천국-이성의 세계에 의해 배척당하는 자들로 포함하는 지점에 이르면 아득해진다. 어디까지가 위악적 제스처로서의 도발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술 앞에서 판단은 중지된다.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네 번째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에피소드를 구성할 때 감독은 여성으로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여성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일부러 불편한 장면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게 히틀러 관련 발언으로 자신을 쫓아냈던 칸영화제와 비욕의 미투 폭로에 대한 감독의 응답일까. 감독의 이 거대한 농담은 과연 성공한 것일까. 물론 이 영화에서 잭은 결국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살인마 잭의 집 The House That Jack Built 제작 젠트로파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맷 딜런, 브루노 강쯔, 우마 서먼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18년 상영시간 152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9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