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떠돌다가 이따끔 마주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손시내 / Choice / 2019-02-19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현대 도쿄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다. 여기엔 도쿄의 물질적 풍경과 정신적 풍경이 함께 드러난다. 수많은 색으로 형형히 빛나는 도시는 화려하고 분주하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군데군데 보이는 공사장들도 이미 이 풍경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고 시끄러우며 늘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도쿄에서의 삶은 사실 고독하고 허무한 것이다.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은 어렵고, 병원과 공사장, 옆집과 전철역에선 일상처럼 사람들이 죽어간다. 늘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어느 것도 특별한 사건이 되진 않는 곳, 의미 없는 말들만이 넘쳐나는 이곳에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와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있다.

미카는 낮엔 병원에서, 밤엔 술집에서 일한다. 일터와 기숙사를 오가는 그녀의 일상은 무료하게 흘러간다. 가끔 미팅을 나가기도 하지만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같은 것을 그녀는 믿지 않는다. 사랑은 지금까지 세상의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고, 어차피 우리는 또 언젠가 서로를 버리고 버려지기를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 신지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밤엔 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홀로 책을 읽는다. 사소하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불안을 견디는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이다. 이들은 도시의 속도와 삶의 양식에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지만, 그것에 적응조차 하지 못한 채 도시를 떠날만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저 사라지지 않는 불안한 예감을 품고 도쿄의 푸른 달 아래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그들이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게 되고, 가끔 함께 걷고, 이런 세상에서 과연 사랑이란 가능한 것인지 질문한다. 미카와 신지 주변의 사람들도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채 떠돌다가 이따금 마주친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보다 일상적인 모습과 대화들, 도시의 불빛들을 하나씩 펼쳐놓고 또 겹쳐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시를 사랑하게 된 순간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야”, “네가 어딘가에 있고 심장이 뛰고 있어 그것만으로 모두 잘 있다고 안심하게 돼 잘 지내십니까? 살아 있습니까?”와 같이 미카의 목소리로 읊어지는 시구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슨하게 연결하며 때로 안부를 묻는다. 혹은 도쿄에서의 삶은 모두 똑같지만, 그래도 힘을 내라는 가사의 노래가 어느 무명 가수에 의해 길거리에서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기도 한다. 또한 애니메이션이나 분할화면,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신지의 시점 쇼트와 같은 영화의 형식은, 영화가 원작으로 삼고 있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와 지금 시대의 도쿄에 대한 감각을 영화로 옮기기 위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이나 도시에서의 익명적 삶은 물론 일반적인 현대의 풍경이겠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구체적인 세상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이후 끊임없이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염세적인 전망만이 흘러넘치는 일본 사회다. 술집에서 파편적으로 들려오는 대화들은, 이제 일본은 다 끝났다거나 다음 지진은 또 언제 올까를 두고 하는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것들이다. 인물들이 공유하는 불안한 예감은 각자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울리는 지진속보가 되어 불현듯 찾아온다. 이처럼 불안하고 허무한 세상에서 사랑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가능한 사랑의 방식은 무엇일까. 신지의 말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기에 터무니없이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어도 괜찮은 것일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여기에 곧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지는 않지만, 그처럼 불안정하고 쉽게 불행해지는 삶의 조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행복한 사전>(2013)과 <이별까지 7일>(2014)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이시이 유야의 신작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夜空はいつでも最高密度の青色だ 감독 이시이 유야 출연 이케마츠 소스케, 이시바시 시즈카, 마츠다 류헤이 수입·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17년 상영시간 108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19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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