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무의미, 끝없는 진자 운동
<얼굴들> 이강현 감독
글 김선명 사진 소동성 / Interview / 2019-01-30

당신은 오늘 어떤 택배를 받았나?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의 가장 큰 행복이 된 시대. 택배 기사를 통해 배달되는 상품들은 우리 각자의 삶에 배치되어 생활의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다. 여기, 택배 기사의 ‘진짜 삶’을 취재하려는 인물이 있다.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이었던 기선(박종환)은 대기업의 사보 담당자가 되어 택배 일을 하는 현수(백수장)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기선과 헤어지고 회사를 그만 둔 혜진(김새벽)은 엄마의 식당을 리모델링하여 운영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기선이 행정실 직원이던 때 마음을 쏟았던 축구부 학생 진수(윤종석)가 있다. 택배와 라디오 같이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미디어(매개) 앞에서, 누군가는 경악하고 당황하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구체성으로 단단히 맞서며 영화 속에서 서로 뒤섞인다. 전작 <파산의 기술記述>(2006)과 <보라>(2010)를 통해서 사람들의 삶이 파국에 이르지 않고 계속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유지해 온 이강현 감독이 신작 <얼굴들>로 우리를 찾아왔다.

 

 

이전 작업들과 달리 극영화다. 어떤 계기로 이 아이템은 픽션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나. 혹은 프로덕션 단계의 어느 즈음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건가.

특별히 어떤 아이템이 있었고, 극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전에 했던 작업과는 다른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큐가 싫거나 다큐랑 다른 걸 하고 싶어서는 아니고. 기존 작업이나 방식에 대해 내 안의 어떤 염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로고 라인이 떠올랐다. 출석부엔 이름이 적혀 있는데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한 학생을 선생이, 혹은 학교의 누군가가 갑자기 문득 케어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기선의 직업이 선생님이었지만, 박종환 배우와 이야기하면서 행정실 직원으로 바꿨다. 나머지는 이후에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덧붙여진 것 같다.

 

배우 캐스팅처럼 지금까지는 해오지 않았던 과정들을 겪었을 텐데, 이전과 다른 방식의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차이점을 느꼈는지 말해달라. 

어떤 걸 새롭게 감수하거나 하는 부분이 나한테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나는 작업을 할 때, 언제나 그 작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였다. 나는 복수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건 오로지 이것밖에 할 수 없는 거였다. 난 복수의 프로젝트를 돌리지도 못하고 하나의 시기에 하나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하나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던 것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의 고민 같은 건 아예 개입되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배우 캐스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 않나? 기존 작업들이 인물을 따라가는 다큐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어쨌든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 제목처럼 그 인물들에 맞는 배역의 ‘얼굴들’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을 텐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그 얼굴들을 선택했나?

주연배우들을 얘기하자면, 내가 평소에 사실 많은 영화를 보는 편은 아니어서 배우 풀에 대한 정보가 없는 편이었다. 섭외하기 위해 배우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저 사람이면 좋겠다는 느낌이 든 분들을 그냥 쭉 섭외했던 것 같다. 다만 실제 배우의 얼굴이 아닌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이미지라면, 택배 기사 경우에는 원하는 이미지가 있긴 했다. 편안한 표정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말이다. 영화 속에서 어떤 인물은 무언가에 안달이 나 있는데 그것의 이유를 못 찾아 스스로 납득이 안 가는 표정이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는 마찬가지로 안달이 나 있지만 마치 미션을 한 단계 한 단계 클리어 해 나가듯이 자기 리듬이 있는 느낌이거나 뭐 이런 것들이었는데, 그거에 비해서 택배 기사 현수의 이미지는 그냥 마치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듯한 편안한 표정이길 원했다. 도통했다는 의미의 초월이 아니다. 어떤 이야기를 보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그런 인물들이 있지 않나. 

 

다른 인터뷰에서 '우주선을 타고 내려왔다 떠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는데.

맞다, 비슷한 표현인 거 같다.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얼굴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얼굴에 대한 내용을 대사로 표현하는 건 세 부분 정도다. 초반에 학생들 졸업 사진을 보면서 기선이 아이들이 불량해 보인다고 말하자 사진가가 이 학교 아이들은 이게 표준이다, 신기하게 동네마다 골격까지 비슷하다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중간에 일기장에서 비롯된 에피소드에서 한 여자가 우리가 본 그녀의 남편의 얼굴과 전혀 달라 보이는 현상수배범의 사진을 보고 남편과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후반부에 진수가 자기는 얼굴을 보면 다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 맞출 수 있다고 말하는 대사. 이 말들을 통해서 떠올려졌던 얼굴이라는 건, 일종의 ‘유형화된 얼굴’, ‘카테고리화된 얼굴’, 즉 어떤 것을 대표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 영화 전체는 바로 이 ‘유형화된 얼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을 하는 것 같다.

‘유형화된 얼굴’이라 표현했는데 그건 결국 ‘유형화된 얼굴’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이런 것들일 것이다. 사람은 일반적이고 지배적인 관념으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많은 정념들, 감정적인 움직임들은 어쩔 수 없이 유형화되고 지배적인 관념들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움직임이나 정념 같은 것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를테면 기선이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실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유형화된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잘못된 거야, 본질을 봐, 이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여기 나쁜 게 있고 저기 좋은 게 있으니 나쁜 거 대신 좋은 것으로 가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진동 같은 것들이 중요하고 그게 나한테는 끌리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유형화된 얼굴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얘기도 영화에 포함이 된 것이 맞긴 한데, 그것은 어쨌든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거다. 예를 들면, 영화 초반에서 같은 지역 아이들의 유사한 얼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유형화된 얼굴에 대한 폭력적인 견해이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역별로 사람들의 계급적 차이에 의해 외관상의 차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일말의 사실들을 기반으로 한 말이지만 그것들이 지닌 폭력성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기선의 행위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저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특히 조연들 중에 나이 많은 경비원 역할의 배우(홍석연)나, 현수의 부모님을 연기한 배우들(이영석, 최청자)이 지금까지 맡아 왔던 비슷한 배역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상황의 제약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하지만, 그런 배우들이 그 인물로 등장했을 때, 농담처럼도 느껴졌다. 앞서 들려준 견해처럼, 유형화의 폭력에 문제제기해야 하지만, 또 그걸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삶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농담처럼 보여주는 캐스팅이었던 것 같아서 재밌게 느꼈다.

사실 아주 큰 영화들이 아닌 경우에는, 주연배우들 말고 조연배우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했는데 그 최선을 다한 부분이 모든 것이 의도대로 꿰맞춰진 건 아니었고 특별히 그 부분은, 조연의 캐스팅의 기준이 특별히 있었던 건 아니다.

 

기선은 유형화된 얼굴들에 대한 편견이나 지배적인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얼굴들의 이면을 알고 싶은, 혹은 그것에 개입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보인다. 계속 수업에 안 들어오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축구부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고. 불우한 환경 때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이를 돕는다는 흔한 서사. 기선의 욕망은 이런 서사에 의해 추동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서사 또한 유형화된 얼굴들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기선의 의도와 실패, 그를 둘러싼 상황들에 대해서 좀 더 부연 설명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본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기선은 자기가 구원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 구원의 내용은 다른 게 아니라 일생을 지나는 과정에서 의미라는 것이 부여되는 순간일 거라 생각한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이 의미 있으면 좋겠고, 그것에 어떤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기선에게는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있을 텐데, 예를 들면 혜진과 같이 동거까지 했다가 헤어진 이후라는 부분, 또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 학교는 선생이란 존재가 학생이라는 존재를 키우고 가르치고 보호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뭐 이런 존재가 되는 곳 아닌가. 그런데 행정실 직원이라는 기선의 입장과 위치는, 똑같이 어른이고 아이를 대하지만 선생이 행하는 그런 역할을 행하는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똑같이 아이를 보면서 또는 행정실 직원이라는 위치상 결함이 있을 수 있는 아이를 접하면서, 선생이 할 법한 것과 유사한 모방이나 꿈들을 꿀 수 있었을 거 같다. 선생이 하는 행위들이 의미로 충만한 것으로 보였을 수 있고, 그래서 그 의미로 충만한 행위를 모방함으로써 자기의 시간과 삶이, 매일 반복되는 학교 행정실 직원이라는 것이 의미로 채워지는 꿈을 꿨을 것 같다. 영화는 그래서 결국 기선의 의도가 실패하는 과정으로 나아갔는데, 마지막에 기선이 다시 진수를 찾아가게 되는 것은, 그건 기선의 의지가 아닌 거다. 나는 이 부분이 사실은 영화에서 제일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걸 추동하는 건 영화에서는 큰 회사, 대기업이나 대자본이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그런 식의 사보를 만드는 건 대부분 큰 회사니까, 여기서는 어떤 시스템이라고 표현을 해보자. 그 시스템에 의해서 다시 그것을 하게 되는 거다. 오히려 그 자는 포기를 했는데, 시스템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인생을 취재하고 이런 걸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추동하는 거다. 그러니까 지금 사회에서, 지배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의미까지도 부여해 주는 거다. 이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여기는 그런 롤들을, 사실은 시스템이 계속 던져주고 있는 거다. “너의 삶을 이런 것들로 채워봐, 이렇게 하면 더 아름다워지거나 가치, 의미가 있을 거야.” 하면서 말이다.

시스템이라고 표현한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은 전작들에서도 계속 나타났던 거 같다. <파산의 기술記述>에선, 신파가 의미화의 주된 방식이지 않나.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의미화의 주된 시나리오 중 하나가 신파일 텐데, 그걸 직접적으로 다루었던 게 <파산의 기술記述>이었던 것 같다. 그 관심사들이 이번 영화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 그런 측면의 예들이 이번 영화에서도 많이 보인다. 아까 잠시 언급했던 일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 같은 경우도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사연으로 읽히고. 라디오의 사연이야말로 우리 각자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전형적인 노력이지 않나. 이런 맥락에서 화성 행궁과 서울 성곽 길 같이 과거 문화재 복원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화성 행궁이 2002년에 복원됐다는 표지판을 읽고 “월드컵 때 복원한 거네.”라고 말하는 학생도 그렇고, 서울 성곽 길을 걸으며 “이 벽, 이거 페인트칠이라도 하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라고 말하는 혜진도 그렇고. 과거의 문화재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복원할 때 어떤 문제점을 생각했던 지점이 있었나?

특별히 과거 문화재 복원에 대해서 생각이 있던 건 아니다. 그건 과거의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지금 사람들이 살아갈 때 접하게 되는 여러 지표들이 있지 않나. 자기 삶의 공간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들, 사건들. 이런 것들이 갖고 있는 어떤, 되게 멀쩡해 보이지만 부박한,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그냥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고 멀쩡해 보이지만 이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그래서 그 허약한 것들로 우리 삶이 채워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여러 광고들, 예쁘고 아름답다고 얘기되는 많은 것들. 예를 들면 언젠가부터 계속 힙한 것들이 각광을 받지 않나? 카페 거리들이나 그런 데서 꾸며지는 많은 것들이 단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정말 의미로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지 않나. 그런데 사실 이게 “정말 내 삶의 구멍들이 저것들로 채워지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허약한 것이기도 하고. 그런 것의 일환인데, 그런 것들 중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몇 가지가 선택되었던 것 같다.

 

CCTV를 두고 기선과 혜진의 행동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선이라는 인물은 어떤 시도와 좌절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혜진은 오히려 이런 것들을 즐기며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인물처럼 보여서 흥미로웠다. 

맞다, 두 인물에 차이가 있다. 기선은 그렇게 누군가가 추동하는 힘에 의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언가를 다시 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냥 거기서 계속 경악할 뿐이다.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시스템이 부여하거나 추동하는 힘 앞에서 “아, 이것이 이렇게 어떤 힘들에 의한 것이고, 그것에 의해서 사람들의 모습이나 삶이 포획되어 있구나.” 라는 것 앞에서 당황하는 존재일 뿐이다. 반대로 혜진은 CCTV를 보고 손을 흔드는데, 그 순간 CCTV로 그 상황을 보는 시스템이라는 주체가 당황했을 것 같다. 나는 그게 기선과 다르게 혜진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긍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자기만의 리듬으로 어쨌든 받아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오히려 그 표정이, 그 얼굴이,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들이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선크림 바르는 행위나, 신발 끈 얘기나, 행궁과 성곽 등이 유사하게 반복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화면을 보고 있는데 지나간 것들이 같이 떠올려지는, 플래시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장면에 많은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어떤 인터뷰에서 “모든 장면들이 현재의 순간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데. 

동일한 것이 다른 순간이나 인물들에게서 변주되는 장면들은, 다른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동일률이 적용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동일률이 적용될 때, 그것들을 주체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선크림 관련해서도 혜진이나 진수는 “그래, 그냥 바르지 뭐.” 하는데 기선은 당황해 한다. 그건 선크림이라는 어떤 임시적이고 일회적인 차악 앞에서의 본질적인 당황스러움일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혜진이나 진수라는 주체는 그런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방편들, 차악들을 “그냥 하지, 뭐.”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동일률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차이에 있어 변주가 발생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한 번 등장하긴 하는데, 그것이 현재를 직접적으로 꾸며주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동일하지만 미세한 변화 같은 것들 안에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동일한 것 같은데 어쨌든, 플래시백 속에서의 혜진과 현재의 혜진은 엄연히 다르다. 뭔가 더 나아갔고 다른 걸 하려고 하고. 과거 장면에서 기선과 같이 살 때의 늘어지고 따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공기가 현재의 감각에 동일하게 있을 수 있다. 그건 동일하게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걸 극복했다고 말하는 건 영화가 할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미세한 변화가 분명히 있다.

박종환 배우는 처음에 이 인물의 전사가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다가 “어, 플래시백 장면이 나오네, 혜진과의 과거가 나오네.” 해서 뭔가가 더 나오겠다고 기대하고 대본을 봤는데 아니었다고 하더라. 그 말이 방금 말한 플래시백, 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플래시백에 기대하는, 현재를 좀 더 설명해주고 현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활용되는, 그런 기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내가 의식적으로 의도했던 것 같진 않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걸 한 거다. 영화의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아, 이런 걸 의도해야지” 라기보다는, 다음 신에서 할 수 있는 최선, 또 다음 신에서 할 수 있는 최선, 이런 느낌으로 했던 것 같다.

 

꿈의 경우도 꿈같지 않게, 현재 장면처럼 찍은 게 신기하더라.

꿈이라고 하면 어떤 장면을 말하는 건가?

 

인물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 직전에 나오는.

그게, 명백한 꿈을 찍은 건 없다. 말한 것처럼 다만 꿈을 꿨다가 일어나는 장면들이 들어갔다.

 

명백히 꿈이라고, 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중간 상태의.

꿈같을 수는 있는.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꿈과 현실의 관계, 꿈에 대해서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나?

꿈을 넣어야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씬을 찍고 나서 이렇게 씬과 씬을 붙였을 때 그게 마치 꿈같을 수밖에 없겠다는 정도의 의식은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택배 기사 현수가 누군가의 일기 같은 걸 읽게 되고, 그 이야기 속에 나온 색소폰 연주자의 연주가 길게 나오고, 택배 기사가 일어나고. 이런 흐름은 사실상 영화 속에 삽입된 괄호 쳐진 무엇이다. 애초에 택배 기사의 꿈으로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영화의 구조 속에서 그렇게 이해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건 특별히 꿈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화된 관념들이 나한테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영화의 구조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

방금 얘기한 그 장면이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현수의 꿈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몇 개의 씬들이 지나간 다음에 갑자기 기선과 현수가 지하 합주실에서 대화할 때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방식들이, 꿈과 현실의 층위라고 할까, 그게 완전히 구분된 게 아니라 느슨한 연결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상황이 던져졌을 때, 그 안의 부수적인 무언가가 오히려 그 다음 상황을 전개시키는 끈이 되는 거다. 이 전 상황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사건을 기반으로 다음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런 아주 강한 플롯의 영화, 즉 여기서 가장 주된 무언가가 다음을 결정하는 방식의 영화는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부수적일지라도 어떤 부스러기 같은 게 하나 던져졌을 때, 거기서 가능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다음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영화 속에서 전사가 밝혀진 인물들은 거의 없다. 현수는 특히 미스테리한 존재다. 현수는 택배로 라디오를 받은 것 같은데, 그건 누가 보낸 건가? 

2000년대 들어 택배를 비롯한 유통업이 우리 삶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사람들은 택배 받는 시간을 가장 행복해 한다. 택배 기사 현수의 트럭 안에 실린 온갖 상자 더미들은 사람들의 삶을 구성하게 될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면, 아까 얘기한 ‘삶의 의미’라는 것들이 그런 물건, 상품들로 매개되는 상황이다. 그중에서 특히 라디오는 앞에서 몇 번 등장했듯이, 평균적이고 동일률처럼 적용되는 이야기나 의미 자체를 담지하고 있는 물건이다. 누가 누군가한테 보낸 물건이라기 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공기처럼 혹은 비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지하 합주실 장면, 현수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즉 현수가 1층으로 올라가고 혼자 남겨진 기선이 보이다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그 합주실 장면은 어떤 느낌으로 배치한 건가?

주택가에 가면 ‘OOO 색소폰 연습실’ 이런 게 많이 있다. 혹은 ‘드럼 연습실’. 그런 간판을 볼 때마다 그걸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보편 속에서 꿈을 꾸고 삶을 사는 누군가가 말이다. 그래서 일단 색소폰 연주자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그가 연습할 공간이 있을 것이고, 그곳을 택배기사 현수와 기선이 만나는 공간으로 정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현수는 물건을 어디든 전달하는 자이고, 그래서 그곳이 물건을 전달하러 간 곳일 수 있고. 사보 담당자가 된 기선은 회사로부터 “진짜 사람들의 삶을 담아” 보라는 요청을 받는데 흔히 말하는 ‘진짜 사람들의 삶’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길 원하거나, 혹은 앞서 말한 시스템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아가도록 가리키는 그런 되게 스테레오타입의 무언가일 수 있다. 그 스테레오타입의 무언가들은 얘기했던 것처럼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 속 사람들의 삶일 수 있고. 그래서 기선은 취재를 위해 색소폰 연습실을 찾아갔을 것이다. 동시에 연습실이라는 공간은 대부분 지하에 있고, 답답한 이미지가 있잖나. 사방이 막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뻥 뚫린 것도 아닌. 현수가 떠났을 때 혼자 남겨진 기선의 마음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적절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현재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가제로만 알려져 있는 차기작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영화에서도 지도 얘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 일상을 이루는 많은 의미들 중에서, 우리가 어느 시간에 어느 위치에 있다는 정보가 어느 순간 우리를 말해주게 된 부분들도 많은 것 같다. 특히 SNS에 내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었다는 걸 많이 올리기도 하고. 지금까지 말해준 것과 일맥상통하게, 위치정보에 기반한 SNS 같은 것들도 삶을 의미화하고자 하는 시도들과 흐름들 중 하나로 보고자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관련해서, 차기작에서 지도를 어떻게 다루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

<얼굴들>에서 지도는, 아까 얘기한 여러 가지 맥락들, 뭐 시스템, 맵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들, 맵 속에서만 존재하는 존재들, 맵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런 것들과 당연히 연관되어 있다. 그건 내 생각엔 되게 명징한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거에 관심이 많다. 당대의 삶의 모습이나 이런 것들은 당대의 사회적 시스템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기술 수준, 테크놀로지에 의해 좌우되고 결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재밌어 하는데, 특히 그 중에서 지금 시점에서는 개체의 위치정보라는 게 너무 재밌는 주제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다음 작업에서 그걸 어떻게 다룰지는, 지금도 디벨롭 중이고 고민 중이기 때문에 딱 정해진 건 아니다. 하나 확실한 건, 단지 지도만 얘기하진 않을 것 같고, 당대의 테크놀로지, 기술들이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거나 보여주는 여러 가지 측면들, 그리고 그것들이 당대의 모습을 규정하지만, 당대와 무관하게 시간을 초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존재에 대해 갖고 있는 질문들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즉 당대적인 것이지만 당대적이지 않은 질문들과 맞닿아 있는 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굳이 얘기하자면 다큐멘터리인데,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일지 그건 모르겠다.

ⓒ소동성
Interview
그 이름 부르기까지
<양양> 양주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10-24
Interview
기어이 돌아올
<3670> 조유현·김현목(with 박준호)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9-05
Interview
호기 대왕 vs 집요 마녀
<THE 자연인><3학년 2학기> 이란희·신운섭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9-02
Interview
무거운 봄, 보이는 밤
<봄밤> 강미자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