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에 그들이
SIFF 2018 <졸업> 박주환 감독
글 김선명 사진 소동성 / Festival / 2018-12-06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주환 감독의 <졸업>은 지난 10여년에 걸친 상지대 투쟁을 다룬다.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학교는 사학 비리 종합 선물세트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는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993년 각종 비리로 구속되어 퇴출된 김문기 이사장의 복귀 시도가 수면 위로 떠올랐던 2009년부터, 그가 총장으로 돌아온 2014년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새로 선임한 임시 이사진이 김문기 총장 선임을 취소하고 상지대가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박주환 감독은 2009년 지역 방송에 7분짜리 단편 영상을 송출한 것을 계기로 이 기간 동안 상지대 총학생회의 중심에서 투쟁을 함께 했다.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자신이 바로 옆에서 촬영하며 지켜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울부짖던 당시 예체대 학생회장 이승현의 영상을 우연히 접하고 죄책감에 힘들어 했던 박주환 감독은 2014년에도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윤명식의 얼굴이 너무 힘들어보여서 함께 있어줘야겠다는 마음에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투쟁을 함께 할 수 있던 동력은 바로 이 사람들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사학 정상화, 혹은 학내 민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2009년에 상지대 투쟁을 다룬 영상을 지역 방송국에 송출하면서 10년간의 투쟁에 첫 발을 디뎠다. 그 영상을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나는 전공이 영상이나 언론 쪽이 아니고 행정학과였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웨딩 촬영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편집을 배워오면 돈을 더 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배울 곳을 수소문하다가, 원주미디어센터에서 ‘열혈시민 제작단’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수강했다. 그 때 강사님이 이번 영화 프로듀서를 맡아주신 김성환 감독님이신데, 뭘 찍을지 몰라 고민하던 내게 너의 이야기나 주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처음부터 학생회랑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니라서 2주 정도는 천막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친해지고 난 뒤에야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걸려 영상을 완성 했다. 그 때 들은 수업이 퍼블릭 액세스 과정이어서 지역 방송국에 시민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으로 완성된 영상을 송출할 수 있었다.

 

송출된 영상과 더불어 총학생회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이승현의 영상이었다.

그렇다. 영화에서도 나온 것처럼 국토종단을 하던 중에 우연히 스마트폰의 유튜브 영상으로 승현이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그 영상을 찾아본 것도 아니었고 다른 친구가 나한테 이거 너희 학교 아니냐면서 영상을 보여준 거였다. 그 현장에 내가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굉장히 크게 들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왜 들었는지 잘 몰랐다. 아마 승현이가 동갑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영상을 보면 승현이가 되게 처절하게 울부짖지 않나. 그래서 더 그 애의 감정이 나한테 전달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억울한 마음에 떼를 쓰면서 울부짖기만 하던 승현이 1년 뒤에는 다른 학생들을 위로하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싸움이 있다고 말하면서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승현이가 1인 시위 하는 장면을 지금도 보면 웃기다. 그리고 다음 집회할 때 발언하는 것도 재밌지 않나? 그런데 그러면서 걔가 영화 속에서 계속 코믹한 캐릭터로만 구축되는 것 같은 거다. 2011년 당시 상지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학교들이 여럿 있었고, 그래서 연대 투쟁을 진짜 많이 다녔다. 승현이가 발언하는 장면도 상지대랑 상관없는 상황이었는데, 사분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명분 하나로 연대 투쟁을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상지대 내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있었다. 우리 작년에 투쟁할 때 쟤네들은 도와주지 않지 않았냐 하면 할 말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학생들을 이끌어야 했던 승현이의 마음, 그리고 우리는 집회 준비를 2009년부터 많이 해왔기 때문에 다른 학교들에서 우리에게 의지했던 게 많았다.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승현이가 그런 상황을 거치며 성장하는 모습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않았나 싶어서 나도 그 장면을 되게 좋아한다.

승현과 학생회 활동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2012년에는 직접 총학생회장도 하다가 2014년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학교로 돌아온다. 언제부터 이 촬영 장면들을 한 편의 영화로 완성할 계획을 세운 건가?

2012년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다가 9월쯤 자전거 사고가 나서 팔이랑 고관절 부상을 심하게 당했다. 1년이 지나서야 쇠를 뺐다. 그 때까지는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몸이 좋아지고 나서는 영상을 더 배우고 싶어서 서울로 와서 영상 과정을 배우다가, 페이스북에서 명식이가 뺨을 맞고 부총장한테 욕을 먹는 장면(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을 보면서 정말 열이 받아서 카메라를 들고 하루 내려온 거였다. 그게 명식이 삭발하는 날이었는데, 영화 보면서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애가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하니까, 내가 좀 여기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촬영을 계속 하면서도 내가 영화 관련된 걸 배운 사람이 아니니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2013년에 세종대 투쟁을 기록했던 전상진 감독의 <주님의 학교>를 봤다. 2011년에 승현이랑 연대투쟁 다니면서 친해진 형인데, 내 영화에도 한 컷 나온다. 나랑 상진이 형만 알 수 있게, 일부러 넣고 싶어서 넣었다. 그 형이 자기도 처음부터 계획해서 촬영한 게 아니라 촬영한 소스들을 정리한 거라고 말하면서 힘을 많이 줬다.

 

영화를 구성하면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자 싶었나.

10년 동안 만난 학생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언론은 이런 얘기를 디테일하게 담지 않는다. 그냥 집회를 했다, 기자회견을 했다, 무슨 주장을 했는지만 담을 뿐이다. 그 학생들이 안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걸 다 견디면서도 왜 10년 동안 싸워왔는지, 그런 걸 담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를 구성했고, 김문기나 상지대 투쟁 관련 사실 관계들은 최대한 빼려고 했다. 조금 불친절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보시는 관객 분들께서 궁금함을 느껴서 직접 검색해 보시면 다 나오니까. 오히려 그런 방향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의 현재 모습을 담은 기준이 있었나? 확실히 초반의 승현과 달리 뒤에 나오는 명식과 종완의 경우는 힘들게 투쟁하고 그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외로움, 고립감 등이 강조되는 것 같더라. 그게 에필로그의 현재 모습까지 이어지는 느낌이었고.

영화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 졸업했지 않았나. 저렇게 열심히 싸운 사람들한테 남은 게 뭘까, 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젊었을 때, 대학생 시절에, 살면서 이렇게 타인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걸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웠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지 않을까 했다. 에필로그를 찍을 당시 종완이는 복학을 못하고 알바를 하면서 등록금을 벌고 있었다. 촬영이 1월이었는데, 그 해 3월에 복학을 했다. 그 장면을 보신 관객들이 여러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다.학교에서도 한 번 상영을 했는데, 교수님들이 그 장면에서 되게 많이 우시더라. 모든 걸 걸고 싸웠던 앤데. 학교는 되게 좋아졌어. 교수들도 좋아지고, 교직원들도 좋아졌어. 학생들도 좋아졌어. 그런데 정말 그 중심에 섰던 사람들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런데 우린 뭔가를 바라고 싸운 게 아니었다. 기성세대는 행동을 하는 거에 있어서 그게 어떤 의미가, 이득이 되는지 묻지 않나. 그런데 그거 없이 그냥 내가 생각할 때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어떤 이유가 있다면 가장 큰 건 학생들과의 관계, 책임감들이었다. 선출직이지 않나. 선거 운동하면서, 내가 총학생회장이 되면 학교 민주화 만들고 정상화 하겠다 그런 얘기 되게 많이 한다. 2주 동안 그 얘기만 하고 다니니까. 학교의 현안이니까. 그런데 실제로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그런 책임감이 있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학생회장을 지냈던 감독님의 상황이 영화 속 주요 인물들에 대한 공감으로 드러났던 것 같다. 그들의 고민, 외로움, 고독 이런 점들에 대해서.

수업거부 중지 의결할 때, 당시 명식이나 종완이, 승룡이는 어차피 나 무기정학 된 거 제적되어도 좋으니까 학생들만 원하면 더 밀어 붙이겠다고 했다. 이게 36일간 수업거부 하는 동안 많은 집중을 받기도 했고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거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실제 다른 학생들이 느꼈던 감정은 달랐다. 그걸 다 이해하기 때문에 종완이도 대표자회의를 열어서 결정했지만, 그래도 그 결정 자체는 되게 아쉬워했다. 투쟁을 이끄는 회장단으로서 가장 두려운 건 탄압보다는 고립이다. 실제 2011년에 상지대랑 같이 투쟁했던 다른 학교들이 2012년, 13년, 14년 지나면서 다 투쟁이 멈췄는데, 그게 학생들을 학교가 회유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상지대는 회유보다는 탄압을 더 심하게 해서 투쟁을 그나마 더 오래 지속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교가 학생들을 회유하고 거기로 점점 학생들이 돌아서게 되면 투쟁을 이끄는 이로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아무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고립감에 확 무너지거든. 그래서 내가 더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다시 에필로그 얘기로 돌아가면, 승현과 다른 두 명의 현재 모습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종완이가 새벽 4시부터 인천에서 일을 했다. 내가 원주에서 인천까지 새벽 4시에 가려면 너무 힘드니까, 안산에 사는 승현이네서 전날 자고 인천으로 가기로 했다. 승현이네서 지내는 동안에 걔가 와이프랑 산책을 간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따라갔다. 카메라 테스트하고 있다가 우연히 찍힌 장면인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애기가 처음엔 안 보이다가 승현이가 뒤돌아볼 때 보이지 않나. 그렇게 억울함에 처절하게 울부짖던 애가 애도 낳고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포착된 것 같아 좋아하는 장면이다. 종완이나 명식이가 지내는 현재 모습을 관객들이 보시면 조금 씁쓸해 지실 거 같긴 하다. 근데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우리 학교 투쟁이 많은 부분 해결된 상태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 알지 않나. 그런데 그 이후 우리 삶이 바뀌는 건 뭘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상지대 투쟁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거기에 큰 변곡점이 되었던 게 2016년 말과 2017년 초의 촛불정국이다. 촛불집회 시퀀스를 영화 안에 넣고자 할 때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그런 얘기도 한다. 애들이 저렇게 까지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상황이 바뀐 건 정권이 교체되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런데 사람들이 잊고 있는 지점이 뭐냐면, 앞에 같이 투쟁했던 비리재단 복귀 학교들이 많았는데 왜 문재인이 상지대에 왔을까 하는 지점이다. 10년 동안 싸웠기 때문에 온 거다. 정말 열심히 했고 그 때까지 싸운 유일한 학교가 여기기 때문에 온 거다.

 

아마 엔딩의 씁쓸한 기분이 더해져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원래 처음 편집본에는 촛불집회 장면이 없었다. 우상호가 온 장면에서 바로 문재인 오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게 원래 학교에서만 카메라 들고 찍었던 기존 맥락에는 더 맞는 거다. 그런데 그게 너무 씁쓸했다. 정치인이 와서 다 바꾸는구나. 문재인이 영웅처럼 와서 바꾸는구나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촛불집회 장면 중에 내가 발언하는 장면 있지 않나. 그걸 찾았다. 지역사회에서 시민사회운동 계속 하는 중에 발언했던 내용을 찾아서 그걸 중간에 넣으면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해서.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다른 이들의 현재는 보여주는데 함께 투쟁의 중심에 있던 감독님의 현재는 안 담았더라. 다음 영화 계획은 어떻게 되나?

영화에서 내 역할은 10년간의 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인물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이고 싶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은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더 드러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다음 영화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기획을 하고 작업을 한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고, 나아가서 그렇게 작업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있다. 이 사람이랑 친해져야 하는데, 그런데 그 목적이 이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면서 친해져야 하는 부분이 있을 거 아닌가. 그게 나한테는 되게 불편한 지점이 많다. 그나마 지금 프로듀서랑 얘기한 건, 지역에서 청년운동, 청년활동하면서 느낀 걸 담아내고 싶긴 하다. 한국사회에서 청년문제에 대한 여러 원인분석과 정책들이 많지만 하나도 해결이 안 되고 있지 않나. 보수적인 기성세대는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라고 하고 진보적인 기성세대는 너희가 단합해서 세상을 바꾸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답답하다. 자라오면서 그렇게 자라오지 않은 세대들이 한 번에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 되게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한테 그걸 요구한다는 게 답답하다. 조금씩 찍어두고 있기 한데,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잡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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