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장률의 ‘공간-이미지’ 변화에 대한 몇 가지 단상 ①
변성찬 / Critique / 2018-11-25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의 도입부 그러니까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군산에 도착해서 민박집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관광 안내도 앞에서 시작된 공간 이동은, 일본강점기 가옥의 모습과 (근처에 ‘미군기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비행기 소리가 함께 보이고 들리는 길, 한 눈에도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식당(‘칼국수 명궁’), 터널, 폐가가 보이는 골목을 거쳐 마침내 (일본 강점기 가옥을 개조한 것임이 나중에 드러나는) 민박집에 이른다. 특히 민박집 장면에서 장률은 그의 영화에서는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 편집 리듬(비교적 짧은 쇼트들의 몽타주)을 보여주는데, 거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집의 안쪽 공간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을 잡은 쇼트다(이하에서는, 편의상 그냥 ‘집의 시점 쇼트’라고 부르겠다). 영화가 시작된 후 윤영이 민박집의 자기 방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은 총 17개의 쇼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민박집 장면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8개의 쇼트이고, 그중 집의 시점 쇼트가 6개다. 이 부분에서 장률은 왜 이런 (자신의 영화로서는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몽타주의 방법을 선택했을까?

물론 그 쇼트들은 좁은 통로들(담과 건물 사이의 통로와 복도)을 통과해야만 방까지 들어갈 수 있는 그 민박집의 특이한 구조를 보여주기(관객이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선택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롱테이크로 찍으려면 촬영감독이 좁은 통로를 후진하면서 촬영하는 곡예를 해야 했을 터인데, 그런 스타일 과시는 장률 영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선택이다. 인물들을 뒤따라가면서 찍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윤영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장률에게 이 집의 시점 쇼트 몽타주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윤영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어떤 내적인 상태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던 것 같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군산>에서 윤영은 단순히 군산에 온 여행객이 아니라 군산(더 엄밀하게는 그 민박집)의 힘에 이끌려 그곳에 오게 된 인물처럼 보인다. (시간상으로 앞선 영화의 2부를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어떤 속셈을 품고 군산을 찾아왔지만, 정작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그 속셈을 잊고 일종의 ‘몽유(夢遊)’ 상태에 빠져든다. 군산에 함께 온 송현은 여러 번 윤영을 바라보면서 그의 속셈이 진심인지 여부를 확인하려 하는데, 정작 윤영은 그녀와 시선을 받아주지 않고 계속 딴 짓을 하거나 엉뚱한 대답만 한다. 물론 터널을 지나면서 (술에 취해서) 한 번, 방에 들어서서 (먼저 방의 사진에 홀린 후) 또 한 번 송현에게 노골적인 수작을 부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건성의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은근히 다가가는 순간에는 딴청을 부리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해보는 그 수작들을 송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는, 군산에 오자마자 드러나는 둘 사이의 감정 상태의 엇박자를 감지한 송현에게, 윤영은 다시 시작해 볼 것을 꿈꿔볼 만한 상대가 아니다(이런 점에서 둘 사이의 군산 이야기는 윤영이 송현에게 차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윤영이 자기도 모르게 송현을 밀어내는 과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송현이 처음 본 민박집 주인(정진영)에게 급격히 호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윤영의 속내를 확인하기 위한 마지막 제스처이지 않았을까?)

결국, <군산> 도입부에서 나타나는 이 장률답지 않은 편집 리듬은, 이 영화가 공간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시간에 관한 영화임을 드러내는 강한 징후다. 이 영화에서 민박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심층의 알레고리다. 그 시간의 심층에 들어서기 위해서 윤영은 여러 계기와 단계를 통과한다. 무엇보다 칼국수 집 주인 백화(문숙)는 그 시간의 심층으로 이끄는 일종의 ‘영매’에 가까운 존재이고, 중간의 터널을 통과해서 도달한 그 민박집은 마치 두 남녀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민박집 장면은, 민박집 CCTV로 문밖의 두 남녀를 지켜보는 첫 번째 집 안 시점 쇼트로 시작한다).

장률 영화에서 터널과 집 안 시점 쇼트가 일종의 시간 이행의 표지임을 드러내는 장면이 <군산>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주>(2014)에서 나타났던 ‘찻집 시점 쇼트’가 그런 경우이고, <춘몽>(2016)에서의 터널 통과 쇼트도 그런 경우다. 하지만 <춘몽>에서의 터널 쇼트가 과거에서 현재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군산>의 그것은 현재에서 과거로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춘몽>이 과거의 공간(옛날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수색)에서 바라 본 현재의 공간(최신의 미디어 시티가 들어선 상암동)에 대한 이야기라면, <군산>은 현재의 공간(서울 또는 군산의 관광 안내도 앞)에서 바라본 과거의 공간(군산 또는 민박집)에 대한 이야기다. <춘몽>이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영화라면, <군산>은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의 인력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집 안 시점 쇼트는 이미 <경주>에서 나타났지만, 그것은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난 후, 그것도 한순간의 비약처럼 등장한다. <경주>에서 최현(박해일)의 경주 여행은 필요(지인의 죽음에 따른 문상)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의 과거 여행에는 7년 전 방문 때 본 ‘찻집 벽의 춘화’에 대한 추억이라는 계기가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군산>에서 윤영은 군산을 처음 와봤고, 자신의 방문 계기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군산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차례의 점진적인 이행 단계를 거쳐 과거(민박집)로 끌려 들어간다.

<춘몽>
<경주>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는 장률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이자, 특정 지명이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된 5번째 영화다. 사실, 장률의 영화에서 특정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했는지 안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의 모든 영화는 특정 공간에 대한 체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장률의 영화 만들기는, 특정 공간이 품고 있는 정서를 이야기로 번역하고 풀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장률 영화만 어떤 공간의 체험에서 시작되는 영화인 것도 아니고, 장률만이 특정 공간의 분위기가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감독인 것도 아니다. 홍상수의 영화가 그렇고, 봉준호의 영화가 그렇다. 아니, 대부분 영화에서 인물(캐스팅)만큼이나 배경(헌팅)은 중요하다. 영화는 ‘흔들리는 나뭇잎’을 담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예술이다. “장률 영화에서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말은 하나 마나 한 소리에 가깝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률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군산>은 장률이 한국의 공간에서 찍은 6번째 영화이고, 한국에서 살면서 찍은 5번째 영화이다. <풍경>(2013), <경주>(2014), <필름시대사랑>(2015), <춘몽>(2016), 그리고 <군산>이 장률의 한국 시절 만든 5편의 영화이고, 여기에 2008년에 만든 <이리>를 더하면 그의 한국 배경 영화의 목록이 완성된다. 장률은 한국 시절 (그의 중국 시절 영화에서 나타나는 강한 스타일상의 일관성과 비교해 보면) 작품마다 공통점마다 차이점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 중 <경주>, <춘몽>, <군산>은 (특히, 시간 여행의 모티브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연작’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공통점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차이 또한 많은 영화들이다. 이 급격한 문체적 변화, 또는 한 가지 모티브의 반복되는 변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글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 글이다. 이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 충분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의 우회로를 거쳐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장률의 영화세계(더 정확하게는, 그 바탕을 이루는 장률의 영화적 화두와 그 화두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의 문체적 변화) 전반에 대한 검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률의 특이성을 좀 더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영화들, 즉 장률 영화에서만큼이나 공간적 배경과 분위기가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영화들과의 비교 분석이다(특히, 홍상수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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