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인 낙빈왕의 대표 시 「영아」(咏鹅)에서 시작됐다. 한국어로 풀어쓰면 ‘거위를 노래하다’이다. 그 앞에 ‘군산’이라는 지역명이 붙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다면, 이 제목이 그저 주제와 부제로 나뉘는 게 아니었으며 ‘군산=영아’라고 생각될 만큼 붙어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하나가 된 군산과 영아를 향한 송가(頌歌)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군산은 어떤 곳인가. 한때 시를 썼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정확히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어쩌면 백수, 엉뚱한 윤영(박해일)이 있다. 그에게 군산은 고아로 자라 지금은 세상에 없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이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다. 그는 우연히 재회한, 그리고 마음이 가는 송현(문소리)과 함께 군산으로 향한다. 송현 역시 군산은 초행이다. 한쪽에는 적산가옥과 폐가가, 다른 쪽에는 정비된 관광지의 면모가 설핏 보이는 군산으로의 여정이다. 군산에서 윤영과 송현은 아내와 사별한 남자와 어머니를 잃은 소녀, 꽤 사연이 많아 보이는 여인과 만날 것이다. 영화는 군산에서의 이들의 만남을 영화의 앞쪽에 배치하고 한참 뒤에 가서야 군산으로 가기 전 서울에서의 윤영과 송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앞에 있는 누군가를 한참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누군가의 지난 시간을, 과거를 알게 되듯이 영화도 그렇게 진행되는 게 맞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시 <영아>는 무엇인가. 때론 누군가를 부르는 말이며, 또 때론 낭송되는 시이기도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향한 기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군산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존재, 지우고자 해도 지울 수 없는 기억과 마주치는 공간이며 <영아>는 그 기억의 소리이자 울림이다.
장률 감독은 초기작 <당시>(2004), <망종>(2005)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족성과 국적성, 경계인과 이방인, 접경과 월경에 관한 관심을 이어오며 때론 강렬하게 때론 뭉근하게 강약 조절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 자신이 한국에서 완전하게 찍은 만큼 한국영화에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는 <경주>(2013) 이후부터는 그런 오랜 관심사를 더 너른 이야기의 장 안으로 스며들게 하며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여기서 한 번 더 고개를 들고 우리가 필연이라고 여겨온 견고한 경계 너머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곳에는 실은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무수한 우연들이 있으며 그 설명 불가능하고 불가피한 우연성이야말로 애처로운 삶의 원류이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장률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죽음, 바로 전작인 <춘몽>에서는 실질적이고 몽환적인 죽음의 그림자가 큼지막하게 어른댔으나 이번에는 기억과 연민의 형태로 삶 속에 유유히 흐른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우연히 만났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들 덕분에, 말을 섞지 않아도 어딘지 자신과 닮아 있는 듯한 누군가 때문에 죽음의 기운은 잦아들고 있는 듯하다.
불현듯 낙빈왕의 시 「영아」(咏鹅)가 떠올랐고 그게 영화의 시작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윤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도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요. 극 중 술에 취한 윤영이 이 시를 읊으며 춤을 추기도 하고요. 왜 「영아」였을까요.
깊은 뜻은 전혀 없고요, 황당한 이유입니다. 박해일과 <경주>를 찍으며 아주 친해져 이따금 같이 술도 마시는 사이가 됐는데요. <경주>에서 중국말을 할 줄 아는 베이징대 교수 최현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내 경우만 놓고 보면 배우와 감독의 관계는 특히 다음 작품을 같이 할 때는 전작의 캐릭터로부터 연계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실생활의 박해일과 <경주>의 최현이 혼돈될 때가 있어요. <군산>의 시나리오가 전혀 없을 때였는데 혼자 상상을 해봤지요. 「영아」는 중국에서 유치원만 들어가면 누구나 다 아는 시입니다. 박해일이 술에 취해서 그 시를 읊으면 되게 황당할 것 같았어요. 영화와 상관없이 떠올랐습니다. 그 얘길 박해일에게 했더니 “자신을 망신 주려고 그러느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시작됐어요. 윤영이 연희동에 사니까 그곳은 또 화교가 많으니 윤영이 화교 학교에 2년 다녔다고 설정하면 무조건 그 시를 알 겁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그 시를 읊을 때는 가만히 서서 읊지 않아요. 뛰어다니거나 별 동작을 다 하지요. 그래서 윤영은 춤을 추면서 해봤지요. 박해일 망신 주자는 목적도 성사되고요, 영화와도 맞고요. (웃음) 윤영은 애 같은 면이 있잖아요. 이 시대와 다른 리듬을 갖고 있는 친구라고 봤고요. 어릴 적 외운 시나 노래는 잊어버리려고 해도 못 잊어요. 그 리듬은 어느 때 가서 꼭 작동합니다. 윤영은 엉뚱하고 자기 리듬으로 사는 사람인데, 중국집 장면에서 그게 작동하지 않았겠는가. 한 번 폭발하듯 그렇게 나오는데, 그게 또 아름답게 폭발하지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영아」와 윤영이 아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거위를 노래하다>만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투자, 배급사에서 말하길 그러면 관객이 들지 않는다, 책 제목 같다며 몇 개의 제목을 줬는데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었지요. 마지막에 <군산>이 나왔습니다. 그나마 나를 설득한 게 <경주>처럼 지역의 이름으로 영화 찍어온 감독이니까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선에서는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그럼 관객이 더 드느냐? 그건 모르겠습니다. (웃음)
한국에서 머물며 만든 영화 중 <중경>(2007)과 하나의 작품으로 묶이는 <이리>(2008)와 다큐멘터리 <풍경>(2013)을 제외하면, <경주>, <필름시대사랑>(2015), <군사: 거위를 노래하다> 모두 박해일 배우와 작업했습니다. 이번 영화는 박해일 배우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유머와 여유가 더없이 잘 살아난 경우인 것 같은데요. 박해일과 최현, 박해일과 윤영, 혹은 최현과 윤영 사이에 비슷한 인상이나 이어지는 지점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최현과 윤영. 한 사람은 북경대 교수고, 한 사람은 10년 전에 시를 쓰던 사람인데 지금은 백수이고. 나는 사람을 볼 때, 특히 마음으로 볼 때는 직업으로 그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독특한 냄새, 그 사람의 리듬을 봅니다. 요즘은 자기 냄새가 다 없어졌어요. 시대의 냄새만 남아 있고 모두가 같은 냄새만을 추구합니다. 최현은 동북아 정치의 권위 있는 석학인데도 자기가 하는 학문이 똥 같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자기 리듬에 사는 사람이에요. 똥이라는 말이 자기 일에 책임지지 않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제일 책임지는 말입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더 책임 있다고 보니까요. 윤영도 엉뚱하지만 실제로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것 같고요, 그런 유의 사람에게 제가 더 눈길이 갑니다.
애초에는 군산이 아닌 목포에서 촬영하려다가 염두에 둔 공간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촬영지를 옮겼습니다. 군산은 처음 가보셨나요.
목포는 예전에 특강으로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공간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은 목포가 여의치 않아 처음 찾아갔는데 마음에 들었습니다.
군산을 둘러본 뒤, 시나리오 초고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을 텐데요. 이야기 윤곽은 언제쯤 완성이 됐나요.
지난해 5월부터 6월 사이에 (총 20회차로) 찍었는데요, 촬영 한 달 전쯤 이야기 전체 윤곽이 거의 나왔어요. 그 전에 목포를 두고 쓴 초고는 있었지만 박해일과 이야기할 때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고요.

1995년에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선배들과 경주를 방문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다시 찾은 경주를 두고 <경주>를 찍으셨던 거로 압니다. 감독님이 거주하며 익숙했을 수색동 일대가 <춘몽>에, 이따금 찾아가 익숙해졌다고 말한 후쿠오카가 차기작 <후쿠오카>의 주요 공간입니다. 그간의 작품 속 공간은 감독님이 머물렀거나 가본 적 있는 눈에 익은 공간입니다. 가본 적 없는, 경험 없는 군산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감각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군산에서 거의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윤영과 송현 모두 처음 군산에 가보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특히 윤영은 어머니의 고향이 군산인데 처음 갔다고 한다면 그 인상이 더 이상할 겁니다. 그런 질감을 찾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1995년에 내가 처음 한국에 왔는데요, 그 전에 한국을 얼마나 많이 상상했겠습니까. 막상 한국에 오니 ‘뭐지?’ 했던 그런 느낌이랄까요. <군산>을 찍을 때도 그런 생각을 계속했어요. 이들은 처음 여기에 왔다, 내가 여기 처음 오면 공간에 관한 정서가 어떻겠는가. 윤영이 혼자 폐가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지요. 촬영하다가 보니 문이 잠긴 집이 있어서 뭔가 하고 보니 폐가에요. 그럼 뭐, 들어가서 찍자! 담을 넘어가서 찍었어요. 지금은 없어지고 카페가 됐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계속 찾으며 찍은 것 같습니다.
‘부드러웠다’는 말로 군산에 관한 인상을 표현하신 걸 들었습니다. 부드러움이 사랑과 연애의 이야기로도 이어지지 않겠느냐고도 말씀하셨고요. '부드러움'에 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목포와 비교해 그런 것 같습니다. 목포로 가면 왠지 대판 싸우든지, 이별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군산은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공간이 주는 질감도 목포보다 훨씬 부드러워요. 원래 초고에는 윤영과 송현이 대판 싸우는 게 있었는데 군산으로 옮기고 보니 싸워서 뭐하나 싶고. 목포의 적산가옥이 군산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낡고 폐가 같은 인상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죽은 것 같다 해야 하나. 군산 쪽은 죽은 것도 있고, 산 것도 있어요. 군산을 잘못 찍으면 아름다운 것 밖에 나오지 않아요. 처음부터 목포의 거친 질감을 염두에 뒀기에 군산에서 폐가를 찍으면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군산>의 민박집 구조 덕분에 만들어진 장면도 꽤 많습니다. 일본 가옥 특유의 긴 복도, 송현과 민박집 주인(정진영)이 국수를 서서 먹는 좁은 간이 주방, 옆집 적산가옥이 내다보이는 옥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CCTV를 보는 방이나 암실로 설정된 공간도 애초 그 집에 있던 것인가요.
맞습니다. 그 구조가 없으면 나올 수가 없는 장면입니다. 하나의 집이지만 최대한 미로처럼 보이길 원했습니다. CCTV 방은 낡은 병원의 빈방 하나를 빌려서 진행했고요, 암실은 그 집에 있던 공간입니다. 아, 윤영이 다섯 장의 흑백 사진을 보던 방은 동국사의 방 한 칸을 빌려서 찍었습니다.
흑백 사진들이 신기합니다. 윤영이 민박집에 오기 전에 봤던 공간이 찍혀 있거나 앞으로 보게 될 것들을 예지하듯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사진 속엔 사람은 없는 공간이나 풍광이, 홀로 있는 거위가 담겼습니다. 언제 어떻게 찍은 사진들인지요.
촬영 전 박병덕 스틸 작가에게 공간마다 빈 곳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진들을 어떻게 쓸지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다만, 어차피 민박집 주인의 취미가 사진 찍기이니 그 사진과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꼭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윤영이 갔던 공간도 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윤영이 갈 공간도 거기 다 있지 않습니까.

감독님의 영화에서 사진이나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눈여겨볼 부분 같습니다. <이리>의 진서(윤진서)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윤영처럼 현재 그들이 있는 곳에서 과거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을 기록한 사진을 봅니다.<중경>의 쑤이(궈커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민박집 주인(정진영)처럼 의도적으로 사람의 어깨너머 풍경을 찍기도 하고요.
황당한 이유 중 하나는 저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어요. 나는 왜 저렇게 열심히 못 사는가. 사진을 찍을 때면 나와 그 공간과 어떤 정서 아래서 찍을 텐데요. 세월이 지나 사진을 보면 그때의 정서가 생각나고 지금의 정서와 또 같이 혼합되고요. 나이가 좀 들면 가족끼리도 옛날 사진을 보곤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걸 싫어하는데, 싫어하면 좋아한다는 건가요. (웃음) 평소에 못 하는 일을 영화에서, 누군가를 통해 대신 하게 합니다. 또 하나 이유는 그간 살아오면서 만난 공간들이 제가 그 공간을 찾아가서가 아니라 그 공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 사람이 그 공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느낌이지요. 아, 어떤 공간이 나를 기다리겠구나, 또는 그런 공간과 만나면 좋겠다 싶을 때 정말 그런 공간이 나타나기도 해요. 우리가 공간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공간이 우리를 훨씬 더 잘 압니다. 어릴 적 살던 집을 가보면 그 공간이 나를 더 잘 알지 내가 아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윤영이 보던 그 사진들도 앞으로 윤영이 갈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엉뚱한 평소 생각입니다.
윤영과 주은(박소담)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있습니다. 윤영이 머물던 민박집 방에 걸려 있던 사진 속 공간과 같은 공간으로 가는 듯합니다. 또 거친 물살과 출렁임이 있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다는 점에서 감독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던 이미지입니다.
이 둘이 어디로 가겠는가. 왠지 고립된 곳으로 가지 않겠는가. 누구의 상상이든, 누구의 꿈이든 그게 무엇이든 사람 많은 곳으로는 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군산 근처를 다녀보면 섬들이 보입니다. 저기는 뭘까 싶지요. 또 군산은 항구니까요. 영화 찍다 보면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배 한 번쯤 타보고 싶어집니다. (웃음) 그래서 타봤는데 좋던데요. 거기에 카메라를 대니 이 사람들의 감정과도 관계되고요. 원하는 그림이 나와서 저는 촬영을 마치고 낚시까지 해 광어도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피디가 오더니 이제는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하는 겁니다. 둘러보니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뱃멀미로 배 위에 누워 있더군요.
그 배가 향한 곳이 섬인가요, 어떤 섬인가요.
찍을 때는 그게 섬은 아니었습니다. 변산반도 공원인데 이쪽에서 보면 섬 같지요. 그 배가 거기 간 게 아니라 그 바다에서만 찍은 거예요. 그래서 그 섬은 허구의 섬이에요. 아직 못 갔습니다.
어머니의 상실로 주은은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주은은 윤영과 송현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찾아왔을 때 특히 윤영을 보고 이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점에서도 기질이나 행동에서도 윤영과 주은은 꽤 닮아 보입니다.
민박집 갈 때의 동작을 보면 송현은 당당하잖아요. 윤영은 자꾸 멈추지요. 주은은 아예 집 안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요. 윤영도 항상 어딘가로 들어가도 숨을 준비부터 하는 사람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끌릴 때는 어딘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너도 어머니가 안 계시네, 너도 막내네 같은 거죠. 설명되지 않아도 느낌이 오는 겁니다. 그런 쪽을 제가 더 좋아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감독님과 박해일 배우 사이에는 어떤 비슷한 점이 있을까요. 무엇이 두 분을 끌리게 해 친구가 되게 했을까요.
나는 완전히 ‘정상’이고요, 그쪽은 완전히 ‘정상’이 아닙니다. 박해일이 평소에 내게 그래요. “감독님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럼 내가 또 그러죠. “네가 더 이상한 사람이다.” (웃음)

대사 중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묻는 말들도 어떻게 보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 호감을 표하며 꺼내는 말처럼도 들립니다.
윤영이나 극 중 캐릭터들이 엉뚱한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건 밖에서 보니까 그렇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엉뚱해지자고 하는 말은 아니잖아요.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건 일상에서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에요. 어디서 본 것 같지만 그 사람한테 내가 관심이 없으면 말을 걸지 않겠죠. 군산에서 취한 윤영이 후권(猴拳)하는 남자에게도 그렇게 말을 겁니다. 동지 같아서 친근감의 표시로요. 또 하나는 정말 솔직히 말해서 우리 다 어디서 봤잖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이건 좀 내가 너무 한 말인가요? (웃음) 다 본 것 같고 그런데 우리 못 본 척하는 것 같아요. 어디서 봤다고 생각하면 소통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노천에 앉아 있는데 또래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어요. 서로 살짝 웃었지요. 근데 그 사람이 내게 와서 악수를 청하는 거예요. “혹시 친구가 저랑 닮았어요? 아닐 거예요.”라고 하면서요. 그 사람은 용감하게 와서 손을 내밀고 저랑 소통한 겁니다. 늙어서인지 일상적으로 그런 일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감독님도 그렇게 한 적이 있으세요.
저는 거의 못 해요. 그래서 영화에서 박해일에게 시키는 거예요. 그분이 내게 와서 악수하고 그런 얘기한 게 기분이 좋았고 계속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 우리 친구는 아니지만 어디서 봤겠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송현은 감독님의 전작들에 등장했던 여성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자기 기운이 센 여성입니다. 무력하거나 어린아이 같은 남성들을 보듬고 챙기며 인내하거나, 남성의 착취와 폭력 앞에 던져졌던 앞선 작품의 쑤이나 순희들과는 확연히 다르며 근작인 <경주>의 윤희(신민아), <춘몽>의 예리(한예리)보다도 훨씬 더 주도적으로 남성들을 대합니다.
전작의 여성 캐릭터들처럼 계속 그러면 이 세상이 너무 암담하지 않겠습니까. 작품 안에서도, 우리 삶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으니까요. 문소리가 들어와서 그런 송현의 면모가 더 강화된 것도 있고요. 또 내가 살다 보니 송현처럼 명료하고 적극적인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윤영이 그 시기에 송현을 만났다는 게 그래도 위로가 좀 될 것도 같고요. 당연히 사람은 크게 바뀌진 않겠지만 윤영이 송현의 적극적인 기운을 받지 않겠는가. 송현은 실제로는 상처가 많은 사람인데 당당하잖아요.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문소리 배우의 활기가 송현의 기운을 만들어낸 게 큰 것 같습니다.
처음에 문소리는 송현이 좋은 여자 같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또 송현이 민박집 주인에게 끌려야 하는 이유에도 동의하지 않았고요. 그러다 어느 날 문소리가 깨달은 것 같아요. 중국집 장면을 찍을 때였는데요. 송현이 108배를 하고, 윤영이 미친놈처럼 춤추고, 송현의 전 남편(윤제문)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걸 종일 찍었습니다. 실제로 술도 많이 마시고 찍었는데 배우들은 역시 집중하면 딱 그 인물이 돼버리더군요. 문소리가 그 촬영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에 깼는데 이 남자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민박집 주인이 나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그때 온 겁니다.

촬영은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요.
서울에서 다 찍고, 군산에서 다 찍었어요. 지금 말한 중국집 장면은 촬영 시작한 지 4분의 1 정도 됐을 때였고요. 그날 문소리가 실생활에서 윤영 같은 모호하고 답답한 사람이 있으면 못 견디겠다고 하더군요.
<경주>의 ‘경주의 여신’ 윤희나 <춘몽>에서 남자들이 모두 사랑해 마지 않던 ‘예리’는 남자들의 추파와 관심의 대상인 면이 컸습니다. 두 여성 모두 그런 남자들의 태도를 알면서 받아주거나 달래거나 슬며시 밀어냅니다. 송현은 그보다는 좀 더 강렬하게 자기감정을 표출하고 자기를 어필하기도 하며 관계에 선을 명확히 긋기도 합니다. 이 변화에 관해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계기는 전혀 없어요. 이전에는 <경주>의 윤희, <춘몽>의 예리 같은 캐릭터가 눈에 더 들어왔다면 <춘몽> 찍은 후에 좀 더 진취적인 여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송현은 남자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차버리죠. 그녀의 힘이 더 느껴져요. 실제로는 다 상처 있는 사람들일 텐데 송현의 그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부럽기도 하고요. 윤영이도 그래서 더 끌리지 않겠는가. 자신은 못 하는 일을 송현은 하니까요. 나이가 드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을 여자들한테 맡겨야 하겠구나. (웃음)
<중경>의 쑤이, <춘몽>의 예리처럼 노쇠한 아버지를 돌보는 딸들은 있었지만, 치매를 앓는 아버지(동방우)를 대하는 아들 윤영처럼 부자 관계는 색다릅니다. 특히 윤영이 수박과 참외를 사서 아버지가 있는 해병대 전우회를 방문하고 부자가 서로 농을 치는 등의 장면이 이 영화의 '부드러움'에 일조한 것 같습니다.
실생활에서도 남자들 사이는 어딘지 모르게 권력과 폭력이 더 들어가 있어요. 효자라고 해도 부자지간에는 미묘한 게 있지요. 그런 관계가 변할 때는 보통 아버지에게 치매와 같은 큰 병이 올 때입니다. 치매 오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변해요. 권력, 폭력에서 좀 벗어나요. 연민이 많아지고요. 극 중 아버지가 조선족에게 욕을 하잖아요. 그걸 본 윤영이 어이없어서 웃고 동네 할아버지한테 자기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관계에 있어 더 힘이 있던 쪽이 쇠락하면 불쌍해 보이는 게 있어요.
촬영하는 방식, 편집의 과정에 관해 좀 더 들려주세요.
현장 상황을 많이 반영하다 보니 시나리오는 인물이 어디로 간다고 하는 정도의 지도 역할만 합니다. 또 웬만하면 콘티를 짜지 않습니다. 현장에 가서 뭔가를 찍겠다고 하면 일단 저 혼자 그 공간에 가서 한동안 생각을 합니다. 이후에 촬영감독과 조감독이 들어오고 이렇게 찍자고 제가 생각한 바를 전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뭘 하는지 모르죠. 저도 잘 모르고요. 찾아가는 거예요. 일상에서 내가 어떤 사물을 보는 순서 같습니다. 정신없이 보는 것은 싫고 천천히 순서를 두고 보는 걸 선호해요. 그러면서 캐릭터와 공간이 합쳐지고 카메라가 어떻게 가는지 순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오히려 콘티를 짜고 그대로 하는 분들이 대단해 보이고 신기합니다. 저걸 어떻게 사전에 다 아는가. 편집의 경우는 현장 편집 기사와 마지막 편집 기사가 같아요. 예산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현장에서 일단 붙여두고요, 이후 순서를 바꿔봅니다.
문소리 배우가 홀로 군산의 칼국숫집으로 향할 때 바람이 갑자기 강하게 붑니다. 그날 송현의 처지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영화는 바람이 부는 날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무조건 찍어야 합니다. 그날 마음속으로 ‘바람이 좀 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안 불더라고요. 그래서 문소리한테 “기도를 좀 해보라”고 했더니 진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금세 바람이 불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대사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배우는 가끔 신기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해일 배우를 두고도 신기가 어린 듯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아직 박해일에게 기도해 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다음에 박해일과 같이 작업을 하게 되면 기도를 해보라고 해야겠어요. 그러면 아마도 앞산이 폭발하지 않겠는가. 그 정도입니다. (웃음)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작에서도 누구의 시선인가를 묻게 만드는 카메라의 의식적인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군산의 빈집에서 보여주는 카메라 무빙이 유독 눈에 띕니다. 윤영이 어디로 가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카메라가 먼저 가서 윤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찍을 때 조영직 촬영감독도 나한테 질문했어요. 누군가 윤영을 보고 있고, 누군가가 윤영을 기다린다, 그러니 빨리 찍으라고 했지요. 다 찍은 다음에는 좋아하더라고요. 실제로 윤영의 엄마 고향이잖아요. 윤영이 그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나 여기 와본 것 같은데”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머니 고향이면 그곳이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어디선가 누군가 보고 있고 그래서 기다리는 카메라라는 게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누구의 시선이든지 리듬만 맞으면 다 됩니다.
그 리듬은 무엇인가요.
일상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돌변하면 뭔가 문제가 일어나지요. 리듬이 변하는 거죠. 말로는 내가 어쨌다며 자기변명도 할 수 있고 속일 수도 있지만, 리듬은 변명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어요. 영화가 깨져도 리듬이 깨진 것이고, 사람이 깨져도 리듬이 깨진 겁니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우리말이 풍부하다면 다 이어 맞춰서 자기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지금 하듯이. 근데 리듬이 깨지면 다 무너지는 거예요. 리듬이 일관성 있고 설득력이 있으면 영화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아요. 그게 제일 어렵지요. 리듬이라는 단어밖에는 설명할 단어가 없네요. 나이 들면 노골적으로 자기 이름 자랑을 하게 되나 봅니다. 제 이름이 ‘율’(律)이지 않습니까. 법률의 율, 율동의 율, 리듬이지요. 제가 점점 더 교만해지지요? (웃음) 영화의 리듬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순서와 거리입니다. 촬영부터 편집 때까지 계속 그것을 생각합니다.
주은, 윤영, 송현이 민박집 옥상에 있는 의자에 각각 다른 시간대에 홀로 앉은 장면에서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가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 거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같은 거리감이지요. 카메라와 사람과의 관계를 찍을 때 거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두 인물이 같은 정서이고 둘이 끌린다고 하면 같은 거리에서 찍지요. 그게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전해질 겁니다. 그런 거리를 생각지 않으면 영화의 리듬이 다 깨지니까요.
영화 시작 후 1시간 17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영화의 제목이 뜹니다. 군산에서 윤영과 송현이 보낸 시간과 이후 홀로 서울로 돌아온 윤영이 맞이한 시간이 흐른 뒤인데요. 이후는 앞서 일어난 일들, 그러니까 서울에서의 윤영과 송현이 보낸 시간입니다. 애초 시나리오를 구상했을 때부터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셨나요, 편집 과정에서 내린 결정이었을까요.
편집할 때였습니다. 아이 낳기 전에 이름 짓는 사람, 출산 후에 짓는 사람, 태어난 지 한참 뒤에 이름 짓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같습니다. 리듬 상 그 위치에 제목이 있으면 딱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적과 민족의 경계, 그리고 접경과 월경이라는 오랜 영화적 관심이 이번에는 ‘우연’이라는 말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송현은 술자리에서 어쩌면 자신도 조선족이 됐을지 모른다면서 우연을 언급합니다. 인간의 의지를 벗어나 있고 예측 불가능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우연이 영화 곳곳에서 쓸쓸하고 애상 어린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나이 들면서 많이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연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요. 우연을 무시해서 편견이 생기고 서로 싸우지 않습니까. 자기 사는 것, 자기 위치가 모두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주장을 하니까 울타리며 국경이 생기고 지역감정도 생기지요. 크게 보면 우연 속에 사는데요. 우연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떤 정서가 흐르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면 어떨까요. 편하고 부드럽게 우연을 더 생각하고 그 안에서 우리 정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우연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미처 그런 우연을 생각지 못하면 우연들과 마주했을 때 슬퍼지는 것이죠.
이 영화에는 <영아>와 함께 윤동주 시인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이 등장하기도 하고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용정에서 온 편지부터 시인이 마지막을 맞은 후쿠오카에서 온 민박집 주인의 사연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면 <필름시대사랑>(2015)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윤영이 시인이 되자고 했던 사람이잖습니까. 한국에 와보니 확실히 윤동주 시인이 ‘국민 시인’이 맞던데요. 연세대학교에서 6년간 강의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시 낭송회가 많이 열리는 걸 봤습니다. 내가 또 등산한다고 윤동주 문학관도 자주 오갔고요. 영화에 나오는 치과가 실제로 촬영 당시 내가 치료받던 곳인데요. 거기서 보면 문학관 쪽이 다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극 중 윤영이 치통을 앓는데요, 해일이 촬영하면서 진짜 이가 아프다고 했어요. 배우의 집중력이라는 건 무서운 거예요. 또 내 고향이 그쪽이다 보니까 용정 명동촌을 많이 갔지요. 실제로 윤동주 시인의 후손들이 많이 살아요. 생각해보면 윤동주 시인이 한국에선 국민 시인이지만 거기 살았다면 조선족이고 많은 사람이 그렇듯 평범한 농부가 됐을 수도 있었겠죠. 물론 그분의 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중국 고전 시를 많이 보는데 한국 시를 봤다고 하면 윤동주 시인의 시를 봤지요.
<군산>에서 일본어가 등장할 때가 좀 독특합니다. 민박집 주인은 아내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일어로 말해 송현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다만 그 감정만은 전해진 듯 보이고요. 칼국숫집 주인(문숙)도 주은에게 일어로 말을 하며 주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문을 열었을 때도 역시 일어를 씁니다.
연결해서 찍어야지 생각하진 않았어요. 민박집 주인과 송현의 대화는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그런 느낌이 들 때 있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남자의 독백인데요. 언어적으로는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 정서와 느낌은 있으니까요. 주은은 어머니 고향이 군산이지만 일본에서 온 재일교포 2세니까 한국말을 거의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칼국숫집 여인은 신비로운 사람이잖아요. 또 주은과는 통하는 사람일 것 같았고요.

감독님께서 계속해서 끌리는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이리>, <필름시대사랑>, <춘몽>에 이어 이번에도 터널, 지하 통로가 등장합니다. 그 통로는 다른 세계로 가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통로 안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이 튀어나옵니다.
이번에는 순전히 우연 때문인데요, 민박집 바로 옆에 터널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도 터널 지날 때면 현실을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항상 납니다. 저쪽 지나면 새로운 것 같은데 또 일상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런 느낌이 있긴 있을 겁니다. 근데 터널을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니라 촬영장 옆에 있어서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다른 터널들도 그럼 다 우연인가요.
그렇죠. 공간을 많이 찾아서 찍는 게 아니에요. 어디서 찍을지 거의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합니다. 그냥 여기서 찍자고 하면 찍어요. 다음에는 옆에 터널이 있어도 찍지 않을 겁니다. (웃음)
노래방과 점집은요? (웃음)
노래방 섭외할 때는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돈을 받지 않거나, 돈을 적게 내도 되면 거기서 무조건 찍습니다. 제 영화에서 노래방이 자주 나와요. 근데 저는 평소에 노래방에 가지 않아요. 노래를 못 부릅니다.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요. 나도 저런 재능이 있다면 하겠는데 그런 쪽으로는 영. 모르니 신비해 보입니다. 누가 <경주>의 노래방 신을 두고 한국영화에서 노래방 나온 장면 중 제일 잘 찍었다고 하더군요. (웃음) 다른 사람들은 제가 밤낮으로 노래방 가는가 해요. 점집도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한 번도 점을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또 점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은 믿는데 나는 왜 못 믿는가. 이번에는 점집을 찍을 생각이 없었는데 군산에 가보니 ‘동서남북’이라는 점집이 있는 거예요. 너무 재밌어서 또 찍었지요. 다음 영화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박해일 배우가 중국집에서 「영아」를 읊으며 춤을 춥니다.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셨는지요, 아니면 배우에게 전적으로 맡긴 것인지요.
춤은 해일에게 맡겼습니다. 해일이 “감독님이 시범 한 번 보여 달라”고 해서 내가 양손을 어깨높이로 한 번 올렸다가 그대로 놨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 시는 거위의 동작으로 이뤄졌으니 그걸 좀 나타내달라고만 했고요. 360도를 돌며 춤을 춘 건 완전히 해일의 창작입니다. 참 좋은 배우다 싶었지요. 그렇게 돌던 윤영이 마침 실내로 들어오는 송현의 전 남편과 눈이 딱 마주치는 겁니다. 우연이 맞을 때 모든 게 맞는 거예요.

올해 8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 북경으로 거주지를 옮기셨습니다. 생활공간이 달라지니 삶의 방식, 작업의 방식도 달라지고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간 학교 강의를 병행하는 문제 때문에 짧은 시간 내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이야기와 작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북경입니다. 어떤 변화를 예상하시나요.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우연에 맡길 겁니다. 매달 나오던 월급이 없어져 상당히 아쉽네요. 학교 강의는 6년을 했고요. 그러면 됐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왜 나가려고 하느냐 물었는데요. 강의와 제작 양쪽 모두 어중간해질 수 있겠더라고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려우니까요. 더 영화를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에서도 찍고 중국에서도 찍고. 여기서 강의하면 중국에서 찍기가 어렵지요. 물론 잘못하면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한 편도 못 찍을 수 있겠지만요.
공간이 달라지면 굉장히 날카로운 내가 또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고 금방 후회했습니다. 벌써 늙었는데요.
오늘도 나이 듦과 부드러움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죠. 젊었을 땐 확 소리치고 분노했고 또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어요. 근데 나이 들어서 소리치면 꼰대고 이상한 느낌만 듭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 거예요. 가다가 소리칠 수도, 조용히 입 다물 수도 있겠지만요. 봐야겠지요.
차기작 <후쿠오카>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촬영했고 현재 편집 중입니다.
윤제문, 권해효, 박소담이 나옵니다. 후쿠오카라는 말이 ‘행복의 언덕’인데요, 그 뜻이 참 좋잖아요. 근데 영화에는 행복은 별로 보이지 않고 언덕만 보입니다. 완전히 멜로영화입니다. 윤제문과 권해효기 나오니 관객들이 모두 멜로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박해일과도 멜로를 못 찍었으니, 그 두 배우와는 찍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 우연히 어느 때에 개봉해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