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한테 다 있으니
인디그라운드 X 독립영화전용관 기획전 <폐허, 숨을 쉬다> 이승준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1-10-18

이승준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는 호흡이다. 인터뷰 말미,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살아가는 동력이 뭔지 묻자 그는 “특별한 동력이 있어야 숨 쉬는 건 아니”라며 죽을 때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라고 했다. 결혼 후 넉넉지 못한 생활에도 이 길을 의심한 적 없고, 막연히 다른 일을 떠올려본 적도 없다. 이성규 감독과 공동연출로 완성한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2000)를 시작으로, 그는 숨 쉬듯 쉼 없이 결과물을 내놨다. 네팔에서 마주한 생과 사의 풍경을 <신의 아이들>(2008)에 담았고, 시청각 장애와 척추 장애를 가진 커플과 같이 <달팽이의 별>(2012)을 그렸으며, 시청각 중복 장애를 가진 아이와 엄마의 일상을 <달에 부는 바람>(2014)에 새겼다. 다큐멘터리란 매체와 플랫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름이어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 땐 방송국에서 ‘휴먼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갈증을 달랬다는 이승준 감독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 주제와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크로싱 비욘드>(2018), <부재의 기억>(2018), <그림자꽃>(2019) 등 최근작 역시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돌아오는 영화다. <폐허, 숨을 쉬다>(2002)는 그런 그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재개발 지구의 벌거벗은 땅에서 거대한 텃밭을 가꾸는 노인이 있다. 재빠른 손놀림과 구성진 노래, 노인은 무럭무럭 자라는 작물을 보며 기뻐한다. <폐허, 숨을 쉬다>는 무언가 주장하는 대신, 눈앞의 풍경을 일단 함께 보자고 권한다. 이승준 감독을 만나 더불어 살았던 '그때 그 사람'에 관해 차근차근 물었다.

 

 

그간 제작 주체와 분량이 각기 다른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지금 돌이켜보는 <폐허, 숨을 쉬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미학적인 면이나 만듦새보다 기록의 측면에서 주로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다. 황학동 한쪽, 청계고가 너머에 삼일 아파트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을 거다. 그런데 그 뒤에 잠시나마 어떤 풍경이 있었는지 아는 분들은 거의 없을 테고, 그걸 기록한 사람도 아마 없을 거로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진 그곳이 누군가에겐 굉장히 신나고 즐거운 공간이었다는 걸 담은 영화니까, 작은 기록이긴 해도 “잘했네.” 싶다. (웃음)

 

첫 번째 단독 연출작인데, 만들 당시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었나.

다큐멘터리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를 다니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옛것들과 풍경,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사진가들과 일했고, 영상 작업은 나 혼자였다. 그러다 보니 지시를 받아 일하기보다는 사진가들을 통해 작업의 방향성이나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을 많이 배웠다. 그런 와중에 계속 개인 작업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지금 와이프인 당시 여자 친구를 통해 황학동 풍경을 접하게 됐다. 그 친구가 사진을 전공했거든. 희한한 동네가 있다기에 갔다가 텃밭 가꾸는 할머니를 만났고, 자연스레 인연으로 이어졌다. 

<폐허, 숨을 쉬다> ⓒ벨루가
<폐허, 숨을 쉬다> ⓒ벨루가

재개발 지역을 촬영한다고 하면, 비극적인 투쟁 현장처럼 으레 떠올릴법한 그림이 있다. <폐허, 숨을 쉬다>는 무너져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텃밭을 가꾸는 하오용 님의 일상과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한창 어렸을 때고, 고민이 그리 깊진 않았다. 할머니가 그곳에서 굉장히 행복해하셨는데, 그 순간을 잘 포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순간을 카메라 안에 잘 담아내는 게 어떤 메시지보다 중요했다. 보고 있으면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죽은 공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마법.

 

마법, 무척 적절한 표현이다. 한편으론 동화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웃음) 되게 기묘했다. 사실 ‘폐허와 대비되는 특정한 풍경’이란 구도는 전형적이잖나. 슬럼가의 희망이나, 전쟁 속의 아름다움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텃밭은 그전에는 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던 새로운 풍경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자연스레 끌렸던 게 아닐까.

 

서울대학교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기 전부터 이미 다큐멘터리 연출자를 꿈꿨다고 들었다. 청소년기에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뭐였나.

당시 접할 수 있던 다큐멘터리는 거의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들인데, 그렇게 본 휴먼 다큐멘터리를 참 좋아했다. 실재하는 것이 주는 전율과 감동이 있었다고 할까. ‘저건 실재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실제로 고통스러워하고 기뻐하고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묘하게 전율이 일었다. 어렸을 때부터 현실에 관심이 많았다. 현실이란 때로는 너무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 좋기도 하잖나. 그런 복합적인 측면에 자연스럽게 주목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그 현실을 담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고, 플랫폼이며, 장르라고 생각했고.

<폐허, 숨을 쉬다> ⓒ벨루가
<신의 아이들>

역사 공부 역시 연결되는 이야기 같다.

역사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환경 다큐나 동물 다큐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니까. 사람을 탐구하는 여러 분야 중에서 선택한 거다.

 

왜 굳이 ‘사람’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

글쎄, 말했듯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형성된 관심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어린 맘에, 세상은 되게 두렵고, 어쩔 땐 너무 무서웠다. 그런 세상 속의 사람 이야기가 나한테는 그저 자연스러웠다. 제일 아름다운 것도 사람, 제일 잔인한 것도 사람 같다. 사람한테 다 있으니까, 거기서 이야기를 찾는 거다.

 

학교 졸업하고 곧장 카메라를 든 건 아니다.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PC통신으로 이성규 감독을 만난 게 계기가 돼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를 공동 연출하며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고.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하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시험도 봤다. 잘 안 됐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분과 일을 시작했다. 광고, 미디어 디자인을 하는 곳이었고 거기서 영상 관련 활동과 사회부 취재 기자 일을 했다. 한편으론 다큐멘터리에 대한 갈증 때문에 PC통신을 통해 방송 동호회를 들락날락했다. 거기 이성규 감독님이 만든, 6mm 게릴라 작업을 지향하는 소모임이 있었다. 당시는 직장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소니 VX1000 캠코더를 사서 그냥 찍어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찍은 걸 이성규 선배가 봐줬고, 편집 프로그램도 사용하게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갑자기 인도를 가야겠다고 하더라. 나 역시 회사에서 나올 시기가 됐다고 판단해서 일을 그만두고 같이 갔다.

이승준 ⓒ이영진

영화 만들고는 어땠나. 어떻게 보면 꿈을 이룬 순간인데,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는 걸 실감했나.

애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를 영화로 여기고 시작하지 않았다. 이성규 선배는 당시 방송 10년 차 중견 PD였다. 공장에서 물건 찍듯이 프로그램 만드는 게 지겹다며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형식과 배급 방식에 관해서는 전부 열어뒀다. 그러다 이성규 선배 지인을 통해 서울독립영화제의 전신인 한국독립단편영화제를 알게 돼 응모하게 됐다. 아마 26회였을 거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냥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꿈이었지. 관객과의 대화도 했는데,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웃음) 인도에서의 경험만 기억에 잔뜩 남아있다. 그다음에도 나한테는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드는 게 제일 중요했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었다. 2002년에 결혼한 후에는 시민방송 RTV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한동안 휴먼 다큐멘터리를 원 없이 했다.

 

옛 기억을 꺼낼 때 카메라는 늘 흥미로운 주제더라.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VX1000을 아마 98년에 샀을 거다. 방송 쪽에서는 베타캠을 쓰던 시기였고, 비디오 저널리스트라는 용어가 막 나왔을 때다. 6mm 캠코더로 혼자 뭔가를 찍는다는 게 생소하던 시절이다. 캠코더 매뉴얼엔 영어도 없었다. 전부 일본어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엔 좀 더 좋은 기종이 나오기 시작했다. <폐허, 숨을 쉬다>는 소니 PD100을 사서 찍었던 거로 기억한다. PD100이나 PD150은 독립다큐 쪽에서도 많이 썼을 거다. 이성규 선배가 베타캠이랑 차이가 거의 없다고 했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아주 좋아진 모델이었다. 막 개인 작업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시기였지. 물론 편집은 여전히 어려웠다. 에러도 많이 났고, 데이터를 전부 날리는 일도 많았다. (웃음)

 

<폐허, 숨을 쉬다> 역시 캠코더 하나 들고 찍은 단출한 영화다.

기획하고, 돈을 마련하고, 스태프를 구성하는 과정 없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시작한 작업이다. 카메라가 있으니 들고 가면 되는 거고, 찍으면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열망을 쭉 가지고 있었으니, 뭔가 발견하면 곧바로 진행됐다.

<달팽이의 별>
<달에 부는 바람>

주인공이 카메라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더라. 대상과의 관계를 만들고 촬영하는 과정은 어땠나.

출판사에서 1년 반 작업하면서 대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많이 배웠다. 사진가랑 둘이 시골에 촬영 가곤 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워낙 마음을 잘 여신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찍는다니까, “그래 찍어라.” 하시는 거지. (웃음) 그러면서 나도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만 고스란히 담아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배웠다. 텃밭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만든 <달팽이의 별>이나 <달에 부는 바람> 같은 영화도 <폐허, 숨을 쉬다>처럼 대상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관찰자의 자리를 지킨다. 연출자의 조건을 계속 생각하고 되뇌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건 형식이 다른 <부재의 기억>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유한 태도다. 이런 자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을 전부 알고 이해하는 게 아니니까, 당연하다. 그럼 내가 느낀 것을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는데, 그게 되게 조심스럽다. 영화로 보여주려는 게 지금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들 아닌가. 그들을 존중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단 차분하게 접근하고 차분하게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그런 태도가 가진 힘을 믿는다. 관객 손을 붙잡고 모델하우스 돌아다니듯이 여기선 뭘 보고, 저기선 뭘 보라고 말하는 대신, 관객 혼자 가만히 보고 자세히 보면서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식의 힘 말이다. 그러면 충분히 마음으로 동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 성격이 좀 그렇다. (웃음) 나서는 거 안 좋아하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 없고. 세상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주장하고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데 너무 익숙한 것 같다. 그걸 상대방이 소화할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호흡부터 달라져야 하는 거고.

 

평소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로 안다. <폐허, 숨을 쉬다>엔 힙합 리듬의 흥겨운 음악이 사용됐는데, 주인공이 텃밭 가꾸며 느끼는 재미가 화면 밖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음악 만든 사람이 디자인 회사 다닐 때 만났던 디자이너다. 우리나라 1세대 테크노 광인데, 이전에 앨범도 냈다. 새로 작곡할 여유는 안 되고 그걸 가져다 썼다. 그가 나중에 <달팽이의 별> 음악을 작곡한 민성기 음악감독이다. 난 그런 시도들이 좋더라. 전형적이지 않되, 일부러 낯설게 만들지도 않는 음악을 써보는 거 말이다. <폐허, 숨을 쉬다> 음악은 여러모로 잘 맞았다. 서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파편화된 풍경이 중요한 영화였으니까. 음악이 그걸 드러내는 효과적인 역할을 해줬다.

<크로싱 비욘드>
<그림자꽃>

<폐허, 숨을 쉬다>를 만들고 무엇을 얻었나.

내가 이전부터 주목했던 일상성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편으론 촬영부터 편집까지 오롯이 혼자 만들었기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도 초청됐고, 공식적이진 않지만 감독들끼리 선정해서 주는 상도 받았다. 재개발 지역을 다루는 전형성을 깨는 다큐멘터리로 소개됐던 게 기억난다. 2000년대 들어 달라진 풍경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계속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힘을 얻었다.

 

해외 관객을 대상으로 세월호 사건을 알린 <부재의 기억>과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다큐멘터리 <크로싱 비욘드>를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다. 개봉을 앞둔 <그림자꽃>은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평양시민 김련희 씨가 주인공이다. 여전히 사람 이야기를 하지만, 최근작들은 그들이 사는 토대, 이를테면 국가와 관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변화를 느끼나.

휴먼 다큐멘터리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품으로 넘어간 차원까지는 아니다. 다만 이야기가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림자꽃> 주인공을 처음 알게 된 게 2015년인데, 그분을 만나는 데 남북문제는 별다른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만나고, 여전히 인물 중심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까, 다 타이밍의 문제 같다. 아마 앞으로는 사회적인 이슈가 좀 들어 있는 작품을 꽤 하게 될 거 같다. 이제는 휴먼이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랜만의 개봉이다. 어떤 마음인가.

영화제에서 상영할 땐 불편해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개봉하면 또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다. 분단 이후에 우리는 남북의 서로 다른 점에 대해서만 말해오지 않았나. 이제는 비슷한 점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본다. “저 사람들도 밥이랑 김치랑 먹네.” 이런 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걸 봐야 그다음에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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