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의 드라마
<그대 너머에> 오민애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9-08

<그대 너머에> 개봉을 앞둔 오민애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신데렐라가 떠올랐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소녀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비쳤을까? 마침내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왔을 때, 소녀는 어쩜 그리 위풍당당하게 궁전으로 들어가 춤을 췄을까?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어깨를 펴고 망설임 없이 미소 짓는 소녀와 오민애는 닮았다. 젊은 시절에 오민애는 자주 자문했다. “난 사회 부적응자인가?” 돈도 ‘빽’도 없으면서 심지는 누구보다 곧은 여자, 그에게 세상은 번번이 가혹했다. 어릴 적부터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괴롭히는 사람이 득실댔다. 옳은 말을 하면 욕이 돌아왔고,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못 본 체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래도 끝내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힐 마음은 들지 않았다. 가득 떠안은 생채기가 무거웠던 어느 날, 인도로 떠나려고 여행사를 찾았다. 직원은 오민애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배우 맞죠? 아니에요? 연극 하면 되게 잘할 것 같은데.”  

연극이 무엇인지, 대학로가 어디인지도 몰랐던 오민애는 그 말에 솔깃해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기대와 달리, 연기는 늘지 않고 무명 생활은 길게 이어졌다. 십 년쯤 지나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무대에서 곧장 꺼내버리기엔 속에 쌓아둔 것이 너무 질겼다. 어쨌거나 오민애는 쉼 없이 움직였다. 무대에서 무대로, 연극에서 영화로 이동하며 기꺼이 작품 안으로 들어갔다. 요정 할머니가 만들어준 호박 마차는 없었지만, 오민애는 발에 딱 맞는 구두를 스스로 찾아 신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쉰다섯에 <나의 새라씨>(김덕근, 2019)로 첫 연기상을 받았을 때, 오민애는 펑펑 울며 더 열심히 배우고 성장하리라 다짐했다. “배우가 무엇으로 승부를 낼 수 있나요? 내가 지닌 향기와 질감, 스크래치를 자양분으로 삼아야 해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를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숱한 상처가 빛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은 지금, 오민애는 말한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배우가 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고.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오민애의 막이 올랐다. 높이 든 고개와 바로 세운 허리 그대로, 이제 춤을 출 시간이다.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오던데요?

<불모지>(이탁, 2021)가 대구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초록밤>(윤서진, 2021)을 다가오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됐어요. <초록밤>은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난 거기서 아주 못된 막내 역을 맡았죠. 돈 좀 있다고 언니들한테 안하무인으로 구는 거예요.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찍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는데, 은근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웃음) 액션영화나 다름없어요. 관객 분들도 재밌게 보실 거예요. 손석구 배우가 연출하고 임성재, 변중희 배우와 함께 찍은 <재방송>도 곧 공개될 예정이에요. 작업하면서 손석구 배우에게 감동했잖아요. 위기 대처 능력도 뛰어나고, 사람 자체가 참 건강하고 매력적이에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에 <그대 너머에> 개봉 소식을 알리며 “지금의 오민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라고 썼어요.

철학적인 영화를 좋아해요. 인간 존재에 관해 고민하는 영화요. <그대 너머에> 시나리오를 읽는데, 되게 복잡하게 느껴졌어요. 어떤 작품이라고 딱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 작품에 참여하면, 느끼고 배우는 게 많겠구나 싶었죠. 

 

감독의 자의식이 깊게 투영된 작품인데요. 인숙이라는 인물을 배우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 짐작해요. 

인숙은 알츠하이머 환자예요. 제 입장에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진정성을 갖고 연기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겁이 났어요.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이 제일 무섭거든요. 일단 나부터 인숙을 낯설어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색함 없이 표현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짙은 안갯속에 놓인 듯했어요.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는 거죠. 디렉션을 주는 감독님의 목소리를 의지하며 조금씩 나아갔던 거예요. 초반에는 막막하고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자’고 마음먹었어요. 인숙과 내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겠더라고요. 인숙도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중인지 모르잖아요.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사람이니, 자기 존재가 분해된다고 느낄 것 같더라고요.  

<그대 너머에>
<그대 너머에> 촬영 현장 

공백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채워야 할 게 아주 많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부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돌고 돌아서 내린 결론은 ‘다 필요 없다’였어요. 그냥 여기에 들어가면 된다, 그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와 인숙을 일치해버린 거예요. 다른 작품을 할 때도 그런 편이에요. 가령 아픈 인물을 맡으면, 작품을 준비하고 연기하는 동안 진짜로 앓아요. 내가 그 시나리오를 품으니까요. 결국 연기에서는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이 많고,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연기하는 과정을 꽤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들었어요. 놀이터 신을 찍을 때는 “제발, 이거 오케이 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면서요.

감정을 쏟는 과정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김병정 촬영 감독님이 걱정스러워서 그랬어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놀이터를 전체적으로 훑고, 다음에는 뒷걸음질로 다시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는 동선이거든요. 카메라가 좀 무겁나요. 그걸 들고 중심 잡아야지, 구도도 생각해야지,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란 말이에요. 사전에 배우들끼리 그랬어요. 되도록이면 NG 내지 말자고. 카메라 감독님이 실수하는 건 몰라도, 우리 때문에 다시 가는 일은 최대한 줄이자고요. 실은 그때 김권후 배우가 NG를 냈어요. 초조한 마음에 혼잣말을 했는데, 하필 그 말이 녹음되는 바람에 감독님이 들은 거예요. (웃음)  

 

길게 호흡을 주고받는 장면이 많지만, 딱히 어려워하지는 않았을 듯해요. 오랜 시간 연극에서 경험한 바가 있으니까요. 

맞아요, 어려운 건 하나도 없었고 너무 재밌었어요. 놀이터나 방처럼 영화에 나오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 거죠. 카메라 위치에 따라서 움직여야 했어요. 이쪽 방에 누워서 자는 척하다가 카메라가 다른 배우 쪽으로 돌아가면, 다음 장면을 위해 얼른 반대편으로 기어가는 식이었죠. 동선뿐만 아니라, 감정과 호흡도 재빨리  바꿔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카메라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같이 움직이니까요. ‘이 카메라가 감정을 느끼는구나’ 싶으니 나도 카메라를 향해 감정을 주게 되더라고요. 참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죠. 그래서 이 작품에 유난히 애정이 가나 봐요. 

ⓒ이영진

치매에 걸린 인숙을 연기한다는 건, 1인 2역을 소화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지연과 경호 앞에서 사용하는 말투와 표정도 조금씩 달라져요.

예전에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치매에 걸린 분을 실제로 본 적 있어요.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끔찍하거나 힘겹지만은 않아요.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느낌에 가깝죠. 인숙은 경호를 사랑했던 20년 전을 떠올리는 거잖아요. 아주 젊은 시절이죠.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때는 더 풋풋하고요.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말투를 썼는데, 솔직히 나는 들으면서 ‘어휴, 닭살이야’ 그랬어요. (웃음) 게다가 걸걸한 건 애써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거기서 좀 더 해맑고 소녀다운 모습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후반부에 부감 쇼트로 동네 전경을 촬영한 장면이 나와요. 스크린에서 인숙은 아주 조그맣게 보이지만, 골목을 헤매며 “지연아!” 하고 하염없이 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숨소리, 걸음 소리 등이 생생하게 들려요. 이때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해요.

나는 지금 영화를 봐도 내가 어딨는지 못 찾아요. (웃음) 와이어리스 마이크 달고 찍었어요. 어차피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으니까. <프랑스 여자>(김희정, 2020)를 만든 김희정 감독님은 어떻게 그 많은 “지연아!”를 전부 다르게 소화했냐고 하더라고요. 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공간에도 생명력이 있다고 봐요. 골목과 건물도 숨을 쉬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갔던 거예요. 

 

돌이켜보면 <그대 너머에>를 포함해서 그간 ‘이상한 엄마’를 자주 연기했어요. 때로는 우울하면서 신경질적이었고, 때로는 똑똑하고 자유로웠어요. 엄마와 모성을 그려온 전형성에서 탈피한 경우가 많았는데, 일부러 그런 작품을 골랐나요? 아니면 배우 스스로 독특한 뉘앙스를 불어넣은 것일까요?

요즘 감독님들의 성향인 것 같아요. 전형적인 캐릭터에는 대부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게다가 중년 여성의 삶에 얼마나 다양한 경험이 쌓여요. 그런 점에 흥미를 갖고 파고드는 감독이 많아졌어요. 감사하게도 내가 그 시기를 만난 것 같고요. 욕심으로는 “오민애 배우가 이 작품을 했기에 캐릭터가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그대 너머에>
<그대 너머에>

감독도 감사하게 생각할 거예요. 감독이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상상할 때, 그런 욕구를 받아 안아서 멋지게 표현해줄 배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어느 현장에 가든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다른 데는 미련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저 여러 캐릭터를 만나고,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그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나요.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행복을 지킬 수 있도록 ‘건강 관리에 신경 쓰자!’ 정도예요. (웃음) 

 

현재 독립영화 신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중 한 분이에요. 좋은 기회가 많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연기를 좋아하고 즐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내가 공부를 되게 좋아하나 봐요. 독립영화에는 젊은 감독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어요. 현재 자신이 가장 고민하는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이 드러나죠. 나는 연기를 통해 그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고 서서히 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작업 덕분에 지금 세계를 이끌어가는 젊은 세대의 마인드를 흡수할 기회를 얻는 거예요.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그건 성장이거든요. 젊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건, 내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원래 나는 요만한 존재인데, 작품을 거치면서 조금씩 커지는 거죠. 발전과 성장, 난 그거에 목말라 하는 인간인 것 같아요. 열등감인가? 글쎄요, 옛날엔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요새는 그저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에요.

 

열등감보다는 자기애가 느껴지는데요.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그런 마음이 들지 않나요.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를 더 넓은 곳으로 데려가고 싶다. 

맞아요, 나는 정말 날 사랑해요. (웃음) 그러다 보니 자꾸 도전 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당장은 낯설고 힘들어도, 나중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이미 경험한 바가 있으니, 다른 매체에 가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겠죠. 그러고 보면 단편영화는 얼마나 좋은 훈련장이에요. 주변에서는 작품을 잘 고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안 골라요. 시나리오가 아무리 엉터리라고 해도, 기획 의도가 좋으면 수락해요. 그러기로 결심했어요. 

ⓒ이영진

계기가 있나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나의 새라씨>로 상을 받을 때, 수상소감을 준비했어요. “쉰다섯 살 무명 배우에게 첫 연기상을 안겨준 김덕근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냥 이렇게만, 쿨하게 말하고 내려올 생각이었어요. 근데 마이크를 잡고 “쉰다섯 살” 하는 순간, 눈물이 확 나오는 거예요. (웃음) 진정하려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는데, 김덕근 감독님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덩치도 크고, 현장에서도 아주 무뚝뚝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내 마음에 공감해주면서 아이처럼 우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니까 진짜 못 참겠더라고요. 신인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으로 온 기성 감독이며 관객까지 다들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줬어요. 다 같이 울다가 웃다가 그랬죠.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삼십 년 넘게 연기하면서 받은 상처, 내 안에 쌓인 서러움이 그날 그곳에서 싹 사라졌어요. 그리고 다짐했어요. ‘이제 영화를 시작한 친구들한테 좋은 어른, 좋은 선배가 되겠다. 작품 고르지 말자.’ 단편영화도 그렇잖아요. 제작지원을 받은 작품, 한국예술종합학교나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작하는 작품, 이미 인정받은 감독의 작품… 안정적으로 보이는 선택이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어떤 시나리오에 좀 더 마음이 가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괜한 질문이었네요. (웃음)

요즘은 영화를 찍는 과정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요. 프리 단계에서 거듭 논의하거든요. 감독들도 적극적이에요. 중년 여성의 세상에 관해 본인이 아는 바가 적다는 걸 인정하고, 배우에게 의견을 구해요. 서로 가진 걸 나누려고 하는 거죠. 그렇게 시나리오의 빈 곳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조금씩 시너지가 생겨요. 나는 선순환하는 에너지의 힘을 믿어요. 현장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감독과 스태프도 기운을 얻을 거예요. 그럼 나한테도 좋은 에너지가 분명히 돌아와요.

 

보통 신인에게 묻는 질문이지만, 혹시 롤모델이 있는지 궁금해요. 30여 년 연기를 해온 입장에서 지표로 삼는 인물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메릴 스트립 좋아해요. 참 훌륭한 가치관을 가진 배우이구나 싶어요.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당당하고요. 건강한 사회를 위해 공적인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멋져 보여요. 사실 배우는 여러 면에서 수동적인 존재이기에 그런 사람을 볼 때면 늘 부럽죠. 나도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한국 영화계도 그렇게 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나의 새라씨>
<비밀의 정원>

배우로 데뷔한 과정이 재밌어요. 스물일곱에 인도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방문한 여행사에서 극단을 소개받았다고요. 20대의 오민애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때는 폐쇄적으로 살았어요. 어릴 적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고, 엄마의 고통이 나한테 그대로 내려왔어요. 누구한테 말도 못한 채 혼자 앓으며 자랐는데, 성격은 또 너무 정의로운 거예요.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찌감치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겼어요. 미성년자이고 저학력인 데다, 여성이잖아요. 온갖 폭력에 시달리면서 계속 떠돌아다녔어요. 신문 돌리기부터 시작해서 레스토랑 서빙, 관광회사 사무직, 에어로빅 강사 등 웬만한 일은 다 해봤어요. 근데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상처 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실망이 컸어요. 총대도 많이 맸거든요. 꼭 나를 겨냥한 게 아니더라도 누군가 잘못했다는 판단이 서면, 앞에 나가서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나한테 모든 비난이 쏟아지는 거예요. 내가 감싸주려고 했던 사람조차 도망가버리고요. 그럼 내 탓을 하게 돼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문제가 있나 보다’ 혹은 ‘나는 어쩔 수 없는 부적응자인가 보다’ 하는 거예요. 아주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으로 변해갔죠. 

 

그러다 인도로 갈 결심을 했군요.

그때 인도 여행이 유행이었어요. 다 때려치우고 떠나자는 마음이었는데, 거기서 뜻밖에 일이 일어난 거죠. 연극배우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더니, 연극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거예요. 솔깃했어요. 내가 호기심이 참 많거든요. 이전까지 미성년자 혹은 저학력자가 할 수 있는 노동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을 향한 궁금증도 늘 갖고 있었어요. 게다가 어느 곳에 가든 꽤 쉽게 흡수했어요. ‘내가 똘똘하긴 하구나’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없었죠. 무슨 일을 시작하든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느낌이었지만, 실망을 거듭하다 보니 배짱이 생긴 것 같아요. ‘여기도 별로면 그만두자. 다른 데 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달려들었어요. 겁도 없이. (웃음) 

 

연극도 여러 사람과 부대끼는 작업이잖아요. 

처음에는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은 빨리 익히다 보니, 연출가 선생님이 예뻐하셨죠. 나한테 연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연출할 능력이 있으니 배우 말고 연출가가 되라고요. (웃음) 진짜 아무것도 몰랐던 때죠. 조연출을 맡았는데, 몸매가 드러나는 멋진 원피스에 하이힐 신고 갔어요. 선배님들 앉혀 두고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 그랬죠. 연출가 선생님이 “조연출은 연출이 부재할 때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서 대행하는 역할”이라고 가르쳤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선배들 눈에는 ‘뭘 모르니 저러는구나’ 싶어서 귀여웠대요. 일부러 무례하게 굴었던 건 아니니까요.  

ⓒ이영진

처음 연기한 무대를 어떻게 기억하세요?

연기 정말 못했어요. 대학로에 갔을 때, 다들 기대했어요. 쟤 누구냐면서 윤석화, 김지숙의 뒤를 이어서 새 트로이카 시대를 여는 배우가 될 거라고 그랬죠. 첫 공연을 마치고 친한 후배를 만났는데, 걔가 딱 한 마디 했어요. “선배님 연기 더럽게 못하네요” 밥도 먹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연극판에 다녔어요. 시작하는 단계니까 못 하는 건 당연하다고, 이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십 년쯤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상처가 너무 크다 보니, 나를 드러내기가 무서웠던 거예요. 즐겁고 일상적인 감정은 괜찮아요. 근데 연기하다 보면, 내 깊은 속내를 꺼내 보여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때는 도망가는 거죠.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참 거칠게 통과했어요. 일단 몸부터 부딪히고, 그러다 보니 자꾸 깨지고. 힘든 세월이었네요.

 

특히 뭐가 힘들었나요.

당시 연극에서는 발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더구나 나는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서 더 고생했죠.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진성만 쓰라는 거예요. 하루 종일 “컵, 컵, 컵, 컵” 그렇게 컵이라는 한 글자만 반복했어요. 그러다 다음 공연에서 다른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분은 “네가 성우야? 왜 목소리를 그렇게 내?”라며 화를 내더라고요. 몇 해 동안 그런 상황을 반복하다가 결국 뛰쳐나왔어요. 내가 저항했거든요. 이것도 내 목소리이고 저것도 내 목소리인데, 왜 한 가지 목소리만 내야 하냐고. 입에 담지 못할 별별 욕을 다 들었죠. 속으로 ‘당신 고집이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할 거야!’ 했어요. 그때부터 소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소리가 뭐지? 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훈련했어요. 그다음 두 번째 질문이 시작되죠. 소리는 무엇에 영향을 받지? 그럼 호흡을 연구하는 거예요. 소리에서 호흡, 호흡에서 마음, 그런 식으로 계속 파고들었어요.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답네요. 

그래서 <그대 너머에>처럼 철학적인 영화를 좋아하나 봐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능성에 관해 계속 질문하는 거죠. 오감을 통제하는 것은 감각기관이 아니라 뇌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뇌를 공부했어요. 요즘에는 양자 물리학에 빠졌고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네요. 물론 이 모든 배움은 연기에 도움을 줘요. 어떤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머릿속에 저장한 이론을 응용할 수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연기하기도 했고, 나는 워낙 다작을 하잖아요. 빨리 들어갔다가 빨리 빠져나와야 하죠. 기동성이 필요하다 보니, 자연스레 순발력을 기르게 된 셈이에요.

<잊혀진 겨울>
<형태>

다작에서 오는 피로감은 없나요?

왜 없어요, 있죠. 근데 적응해야 해요.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에요. 나는 나한테 말해요. ‘왜 여기서 네가 피곤하다는 소리를 해? 너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난 작품과 작품, 영화와 일상을 오가는 걸 ‘차원 이동’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연기하면서 때마다 변모하는 시공간을 받아들이잖아요.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나가서 두어 시간 산책해요. 숲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거예요. 어떤 기분인지, 중심은 잘 잡고 있는지 살펴봐요. 꾸준히 걸으면 정말 좋아요. 건강해지고, 살도 빠지고, 무엇보다 우울감이 사라졌어요. ‘차원 이동’에서 오는 피로감, 말하자면 여독이죠. 그걸 다루기가 만만치 않은데, 산책하면서 나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거예요. 

 

무기력과 우울을 관리하는 것은 배우에게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일 같아요. 

맞아요, 번아웃이라는 게 진짜 무서워요. 사람이 지치면 해석이 달라져요. 같은 상황에서도 갑자기 미움이 생겨나요. 머리도, 마음도 평소처럼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배우들은 캐릭터의 호흡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몰입하지 못하면 진정성 있게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요.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아픔과 갈등을 마주하는 환경에 놓이고, 함께 일하는 감독과 배우에게도 신경을 써야 하죠. 그러다 보면 정작 나를 놓칠 때가 많아요.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음악을 듣는다든지, 조용히 걷는다든지. 그렇게 나한테 위안을 줄 방법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거예요. 무엇보다 예술가들은 서로 안아줄 사람이 꼭 필요해요. 좋은 친구를 두세 명 정도는 곁에 두고서 함께 충전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망가져요.

 

후배 여성 배우들이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많이 언급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오민애 배우는 어때요. 작품에서 만났으면 하는 배우가 있어요?

난 그런 거 없어요. 나랑 인연이 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귀하게 여길 거예요.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함께하는 동안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만나고 싶다든지, 어떤 역할을 맡고 싶다는 욕심도 전부 비웠어요. 그냥 겸손하게, 조화롭게 연기해야죠.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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